1. 만들어진 공간의 이미지
-우리는 언제부터 국토를 ‘공통의 역사적 공간’으로 인식했을까?
우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라도 그곳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매체가 보여주는 시각 정보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 들은 이야기, 노래 가사, 평양냉면과 전주비빔밥 같은 지역 이름이 붙은 음식 등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런데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가 아닌 ‘찬란한 백제 얼이 살아 숨 쉬는 ○○시,’ ‘다산의 얼이 깃든 실학의 고장 ○○시’ 같이 역사와 장소를 접목해 의도적으로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입하는 사례도 있다. 이 책은 이런 특정 공간에 대한 개념 혹은 이미지는 누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만들었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공통의 역사적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국토’라는 공간과 그 이미지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것을 밝히기 위해 영국사가 설혜심 교수는 16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토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영국에서 유럽 최초로 근대 국민국가의 원형이 탄생한 시점과 일치한다. 16세기 초 영국은 로마 교황청과 단절하고 국교회를 수립, 수도원을 해산하는 등 전례 없는 변화 속에 놓여 있었다. 영국 국왕과 정치 엘리트 집단은 유럽대륙의 휴머니즘을 적극 받아들이며 자국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사람들을 통합할 새로운 대상으로 ‘국민’과 ‘국토’라는 개념을 만들어갔다.
이 책에서는 근대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관련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국토’라는 개념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지도’가 수행한 중요한 역할에 주목한다.
국민통합을 다룬 한 연구는 국민을 문화적으로 통합하는 전제와 요소로 다양한 국민적 상징, 국가, 국기, 역(曆), 국어, 역사 편찬 등과 더불어 지리지 편찬을 꼽고 있다. 즉, 국민을 만드는 과정에 서는 시간, 습속, 신체, 언어와 사고의 국민화에 선행하는 공간의 국민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국가는 국경선으로 구별된 영토, 즉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 공간으로 사람을 회수함으로써 과거의 백성을 새로운 국민으로 만든다. 이 맥락에서 지리지는 국토라는 공간에 사람을 연결시켜 국민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작업을 맡는다. -〈들어가며〉 중에서(20쪽)
‘국토’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역사지지서 와 지도였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영향 속에서 고대 지지서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이것이 연대기적 전통과 결합하여 역사지지서라는 독특한 장르가 발달하게 되었다. 지도의 발달 또한 르네상스적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여기서 지도는 실제 공간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기보다 국토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는 매개체로, 의도를 투영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지지서와 지도를 통해 인식하게 된 국토는 철저히 관념적인 산물이다. 영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장소’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영국성은 ‘국토’라는 장소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가며〉 중에서(252, 253쪽)
2. 근대국가 기획에 앞장선 ‘지도를 만든 사람들’
-읽고, 보고, 듣는 지도로 살펴본 역사, 국토, 정체성의 형성 과정
이 책은 〈읽는 지도〉, 〈보는 지도〉, 〈듣는 지도〉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에서는 역사지지서를 쓴 지식인들, 국토를 지도로 그려낸 지도제작자들, 영국 정체성의 담론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내세운다. 이 책의 제목인 ‘지도 만드는 사람’으로 통칭한 이들은 국경 안의 사람들을 동질적인 문화권으로 편입하려는 근대국가의 기획에 앞장선 사람들이었다.
〈읽는 지도〉에서는 근대 초 영국에서 국가라는 공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킨 기초적인 작업으로 ‘역사지지서’와 그 저자들에 주목한다. 가장 먼저 헨리 8세의 명을 받아 전국을 돌며 상세한 기록을 남긴 존 릴런드가 국토에 어떻게 역사를 접목했는지 살펴본다. 또 유럽대륙의 휴머니즘의 영향 아래 윌리엄 해리슨, 존 스토, 윌리엄 캠든 등 영국 지식인들이 어떻게 국가를 인식하고 자국사를 강화하며, 역사지지 분야와 지도 제작을 함께 발전시켜 갔는지, 그들의 대표 저서를 통해 톺아본다.
〈보는 지도〉의 중심인물은 최초로 ‘영국 전도’를 제작한 크리스토퍼 색스턴이다. 지도를 국가기밀로 취급했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국에서 지도는 인쇄와 출판을 통해 국민에게 보급되었다. 색스턴의 지도를 포함해 강력한 왕권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지도들을 살펴보며, 지도가 어떻게 바람직한 국민의 상을 만들고, 국토를 시각화해 보여주었으며, 바깥 다른 세계에 대한 개념과 이미지를 전달했는지 분석한다.
〈듣는 지도〉는 영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들려주는 영국 인상을 통해 영국의 국가·국민 정체성 형성 과정을 살핀다. 국가나 국민 정체성은 보통 18세기 이후 근대국가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러 외국인의 여행기를 통해 16세기 집단 정체성의 조형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점은 외국인들이 남긴 인상 상당 부분이 영국의 역사지지서, 곧 영국인 스스로 생산한 담론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영국 정체성의 형성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호한 타자와 주체와의 관계를 밝히고, 그 역학관계와 담론의 진화를 추적한다.
헨리 8세의 명을 받고 이루어진 릴런드의 답사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국왕의 의지에 다름이 없다. … 더욱이 《답사기》는 국가의 공간인 영토 그 자체를 주목하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선구적 작업이었다. 또한 이 작업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지지를 동원하는 것이 아닌, 지지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심거나 되살리는 시각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릴런드의 《답사기》는 로마와의 단절 이후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야 했던 튜더 왕조의 ‘국가’와 ‘국민’ 만들기 기획의 두드러진 예가 될 수 있다. -〈1장 릴런드가 세운 초석〉 중에서(63쪽)
영국 역사에서 영국의 국민정체성 창출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지도로 크리스토퍼 색스턴의 《잉글랜드와 웨일스 주들을 망라한 대 아틀라스》(1579)가 꼽힌다. 빅터 모건은 이 지도를 “새로운 차원의 지도학적 성과이자 잉글랜드의 시각적 이미지를 결정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리처드 헬거슨은 이 지도가 인쇄를 통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던 측면을 강조하며 “영국인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물리적 왕국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고 관념화한 소유물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5장 근대 초 영국의 지도〉 중에서(178쪽)
정체성이라는 것이 대화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감안할 때, 외국인이 본 영국인의 특성은 온전히 외국인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때로는 영국인들이 주었던 인상과 정보가 외국인들에게 영국적 정체성을 인식하게 하는 기초로 작용하기도 하고, 거꾸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고하는 단계로 진입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정교하게 고찰하려면 영국인과 이방인이 어떤 방식으로 대화적 관계를 맺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8장 17세기 후반 ‘영국성’의 형성 과정〉 중에서(295, 296쪽)
3. 현실을 모방한 지도, 지도를 따라가는 현실
-지도가 ‘객관적’이라는 믿음을 뒤흔들다
이 책에서는 지도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지도가 나타내는 공간은 실제 공간과 그것을 담아내는 도면, 나아가 지도를 보는 사람과 제작하는 사람의 역학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산물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지도에 그린 국경선으로 영토가 정해지는, 현실을 모방해 만들어진 지도에 의해 거꾸로 현실이 지도를 따라가는 일이 벌어졌다. 저자는 이렇게 국가의 영토를 만들어내는 지도
덕분에 지리학이 근대 학문의 총아로 떠오르게 되었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지도 제작 사업은 국가나 국민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고, 지리 교육은 이데올로기 학습의 성격을 지니게 됨을 지적한다.
더불어 지도에 그려진 그림이나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난 지도의 사례를 파헤치며 지도가 인종, 계층, 성별 등 ‘타자’를 드러내고 자국의 이미지를 포장함으로써 더욱 경계가 분명한 ‘국가’라는 공간을 인식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50여 컷의 16~17세기에 제작된 지도들, 지도첩의 표지, 지도가 그려진 국왕의 초상화 등의 도판을 통해 지도가 말하고자 하는, 혹은 지도제작자가 지도에 담으려 했던 의미를 독자들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지도는 같은 공간에 대해서도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지며, 읽는 사람 역시 자신이 가진 세계관을 통해서 지도의 기호를 해독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지도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포착된 세계의 개념이며 상(image)일 뿐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지도나 지도학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들어가며〉 중에서(22, 23쪽)
르네상스 이후 지도는 과학적인 시선이라는 포장 속에서 더 큰 권위를 발휘하게 되었다. … 이렇게 관념화된 공간은 지리적이거나 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어떤 것이 되어 국토에 대한 정서적 감정이 배양될 수 있게 만든다. ‘아버지의 땅(fatherland)’이나 ‘모국(motherland)’과 같은 단어들이 국토에 접목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국토가 감정적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토에 대한 침범은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침해와 동일시되게 된다. 이제 영역 국가는 정서적인 차원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가며〉 중에서(353, 354쪽)
당시 인종은 신체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특성과 연관된 개념으로, 계보ㆍ문명ㆍ종교ㆍ국가나 민족과 관련되어 표상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도에 지구상의 공간을 표현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제 인종은 사회적 특성뿐만 아니라 지리적인 요소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인종의 시각화는 인종 간 구분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지도에 인종이 그려지는 것은 인종에 대한 지식이 공간화되는 것으로, 유럽인들은 이제 인종을 이해할 때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적 특성이나 얼마나 먼 곳에 살고 있는가와 같은 지리적 요소들을 고려의 대상으로 포함하게 된 것이다. -〈5장 근대 초 영국의 지도〉 중에서(213쪽)
16세기 초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지도는 국가정체성을 창출하는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도는 전쟁의 승리를 표시하는 상징물이고, 정치적 단위로서 각국의 지리적 위치를 분명히 해주며, 자국의 독립적 정체와 특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매체였다. 유럽의 많은 왕실은 다른 나라에 자국의 지도를 선물함으로써 우호적 관계를 표현하기도 했고, 거꾸로 다른 나라의 지도를 제작함으로써 그 나라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6장 지도와 국가정체성〉 중에서(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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