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리웠다, 이 분위기!
B급 감성과 지적 재미로 중무장한 독서 중독자들의 화려한 귀환
‘B급 감성 사이로 고고히 흐르는 지적 인문주의의 대향연’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책 읽기의 매력을 강렬하게 선사한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5년 만에 돌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되며 SNS 추천도서, 도서관 인기대출도서로 자리 잡은 이 책은 독서인들에게는 열렬한 지지와 공감을 안겨주고, 비독서인들에게는 책 읽기에 대한 진입 장벽을 없애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이창현(글), 유희(그림) 작가가 연재가 아닌, 단행본 작업만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인 두 번째 권은 흑백 라인으로 작업해 그림의 밀도를 높이고, 좀 더 친절하고 보편적인 내용으로 대중성을 확보했다. 사회 부적응의 아우라가 다소 느껴지는 ‘독서 클럽’은 몇몇 회원이 교체된 뒤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존 회원 사자, 고슬링, 슈, 로렌스와 다시 나오게 된 경찰 그리고 독서 모임에 합류한 신입 회원 사서에 사스콰치까지…. 회원들의 독서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집착, 허세는 여전하다. B급 감성과 지적 재미로 독서인과 비독서인 모두를 사로잡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과 함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독서 클럽의 회원이 되어 모임의 분위기를 만끽해보자.
목차
01 중생대는 문외한이라
02 검은 백조 이론
03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04 흑맥주와 제텔카스텐
05 도란도란
06 거장처럼 써라
07 핏빛 조류
08 사자 우리
09 If You Meet Mr. Good
10 길 잃고 저주받은 자들
11 히말라야 갈 수 없네
12 나만 재밌는 거 아니지?
13 사서는 전자책을 꿈꾸는가
14 Frei Aber Einsam
15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작가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작가 주석
독서 중독자들의 독서 리스트
저자
이창현 (지은이), 유희 (그림)
출판사리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돌아왔다
2018년 12월에 나와 ‘책 읽기’와 독서인에 관한 B급 감성과 지적 인문주의 교양으로 큰 사랑을 받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두 번째 권으로 돌아왔다. “자기개발은 자위행위일 뿐 자기파괴만이 정답”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독서 클럽의 독서 모임이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회원들의 구성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다. 문화센터에서 공연한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예티’ 자리에는 영장류 내지는 신비동물학 영역에 속하는 ‘사스콰치’가 앉아 있다. ‘선생’은 정체가 드러나 다시 병원에 감금되었고, ‘경찰’은 위장 잠복근무를 마치고 시골 마을로 전근을 간 상태. 기존 회원인 축구 광팬 ‘사자’와 카페를 운영하며 기타를 연주하는 ‘고슬링’, 스파이로 활약하다 퇴사 후 비망록을 쓰고 있는 ‘슈’, 그리고 회원들의 냉소에도 굴하지 않고 모임에서 신작 소설을 발표하는 ‘로렌스’가 뿜어내는 책에 대한 과한 사랑과 집착은 여전하다. 여기에 책에 관한 애정이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 신입 회원이 등장한다. 클럽에서는 ‘다크 섹시’로 통하는 도서관 사서 백설기이다.
그리웠다 이 분위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권은 강유원 작가의 『책과 세계』로 시작한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라는 문장에 독자 모두가 공감했고, 독서 클럽의 회원들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사회 부적응의 아우라를 풍기며 책과 관련한 자신들의 확고한 취향을 보여준 바 있다. 2권은 일종의 독서 중독 자가 테스트로 시작한다.
_______은/는 처음부터 책만 파고드는 아이였다. (…) 결과적으로 _____은/는 지적이지만 소심하고 성미가 급하고 예민한 사람, 생각과 고민이 많으며 어휘력이 풍부하지만 누구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지금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면 당신은 독서 중독자입니다. (3쪽)
이언 샌섬의 『도서관 책 도난 사건』에서 가져온 이 문장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박장대소하며 반길 것이다. 2권에서는 도서관과 사서가 독서 중독자들의 세계와 연결된다. 1권에서도 도서관은 독서 중독자들이 애정하는 공간으로 등장한 바 있다. 책으로만 접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범인 검거라는 결정적인 순간에 도서관 연체 안내 문자를 받고 ‘도서관 우수 회원에게 연체란 없다’란 없다며 범인 뒤를 쫓는 대신 바로 도서관으로 향한다거나, ‘근처에 도서관이 없다면 사람 살 곳이 아니라며 이사를 가라’는 유명한 밈을 생성하기도 했다. 이번엔 그런 공간에서 일하는 사서의 일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집안에서 혼자 책을 좋아했다. 독서에 재미를 못 붙인 집에 책이 늘어날 까닭이 없으니 별수 없이 같은 책을 반복해 읽었다. 어느 날 집 근처 도서관의 존재를 알게 된 뒤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8-9쪽)
책과 도서관을 인생 주제어로 생각하고, 학생 때는 집-학교-집, 사서가 되어서는 집-도서관-집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며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백설기는 책이 좋아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하지만 사서의 업무란 ‘사서 고생’ 그 자체임을 실감하며 지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난도의 업무는 바로 포스터 디자인. 도서관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고민하던 그에게 동료 사서가 가져다준 문화센터 ‘독서 클럽’ 회원 모집 전단지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냥 도서관을 이용하던 시절이 좋았지. 지금은 책에 둘러싸여 있지만 근무 시간에 읽을 순 없고…
퇴근하면 쓰러지고. 도서관이 직장이 되고부터 독서량이 줄었어. 책이 좋아 사서가 됐는데… (21쪽)
사서, 작가, 편집자, 서점인 등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백설기의 고민.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지원한 적은 많아도 직접 독서 모임에 참여해본 적 없는 그는 급기야 독서 클럽의 회원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문화센터 독서 모임방 문을 여는 순간 독자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장면이 새롭게 재생된다.
독서 덕후들의 확고하고 복잡한 책 이야기
알코올중독 치유 모임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처럼 직업이나 이름은 모른 채 운영되는 독서 모임의 특성상 백설기는 자신의 예명을 ‘다크 섹시’로 정하고, 회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진행자 사자는 책의 한 대목을 낭독하는 것으로 신입 회원을 환영한다.
책은 인간과는 달리, 마음을 짓누르거나 수다를 떨거나 떼어 버리기 어렵지가 않다. 책은 불러내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이 책이나 저 책을 집어 들 수 있다. 책은 넘쳐나지만, 모두가 읽지는 않는다. (…) (35쪽,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독서 중독자들 모두가 감동하는 중에 사서 백설기는 혼자 초조해하며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청구 기호를 매기고 서가 위치까지 추정해보는 등 강박에 가까운 직업병 증상을 보인다. 이때쯤이면 독자들은 사서 역시 사회 부적응의 아우라를 풍기는 독서 중독자임을 확인하고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사서는 사스콰치가 추천한 로렌스의 “욕망의 동토”를 도서관 자료실 공간 확보를 위해 이용 빈도가 낮거나 오래된 책을 보관하는 ‘보존서고’로 옮겨 버리기도 한다.
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존 르카레의 별세 소식으로 상심에 빠져 있지만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과몰입 상태로 변하기도 하고 독서 클럽 회원들과 “복잡하고 확고하고 제각각인” 독서 취향을 내세우며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바이커 갱단 잠입 수사를 맡으면서 다시 독서 모임에 나오게 된 경찰은 관련 책을 찾으려고 도서관을 찾았다가 “클럽에선 다크 섹시로 통한다”는 사서의 인사를 받게 된다.
‘완독할 필요 없다, 독서 중독자들은 베스트셀러에 냉담하다’ 등 독서 중독자들이 알려주는 책 읽기에 관한 유용한 팁은 2권에서도 이어진다. 재출간되는 책은 실패 확률이 적다거나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는다, 책에 메모하는 방법 같은. 전문가 인터뷰 영상에서 배경으로 책장이 나오면 무슨 책이 꽂혀 있나 보느라고 인터뷰 내용은 신경도 안 쓰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책을 읽거나 책을 정리하는 등 책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독서 중독자들이 가짜뉴스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이유 등 독서 중독자들의 생활 습관도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글 쓰기 비법과 창작의 고통
2권에서는 책을 읽는 경험을 넘어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담아냈다. ‘아구탕과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며 파티시에이자 쇼콜라티에로 일하는 슈는 스파이 일을 접고 비망록을 쓰기로 결심한다. 고급스러운 ‘오로라’ 만년필로 제목 쓰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자꾸 딴생각에 빠지거나 참고할 만한 책을 읽다가 그 책에 완전 몰입해 몇 달째 제목만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창작자의 고통과 기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는 로렌스다. “냉동과 해동 사이 Blau”로 신인문학상을 받은 이후 작품 활동을 못 하고 있는 그는 작법서에 나와 있는 위대한 작가들의 조언을 열심히 따르지만 ‘그분’은 좀처럼 오지를 않는다.
그래. 의외로 많은 소설가들이 플롯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어. 인물을 만들고 그들이 뛰어놀 무대만 마련해 주면 나머지는 인물이 알아서 펼쳐 나갈 거라고.
흠, 내가 설정한 인물은…
좋아. 이제 전차 경기장이라는 무대만 세팅해 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180~183쪽)
B급 감성과 지적 재미로 즐기는 건강한 개그 만화
마지막엔 역시나 대반전이 일어난다. 로렌스는 작가로 대성공을 거두고, 갑작스러운 예티의 등장으로 사스콰치와의 관계가 드러난다. 모임을 통해 로맨스로 발전하는 회원들도 있다. 물론 단행본에서만 볼 수 있는 보너스 에피소드도 빼놓을 수 없다. 자기개발서를 읽는다는 이유로 모임에서 쫓겨나 모두의 연민을 산 ‘노마드’와 정신병원에 감금된 ‘선생’은 짧은 등장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작가 주석’은 작품의 이해에 깊이를 더해주고, ‘독서 중독자들의 독서 리스트’ 역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회원들의 책장을 엿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익명의 독서 중독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유쾌한 책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