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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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사계절
원산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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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는 우크라이나전쟁과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2022년 2월에 시작된 이상한 전쟁, ‘우크라이나전쟁’의 원인, 경과 그리고 해법을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는 “푸틴 치매설” “러시아군 키예프 대패설” 등 이 전쟁에 대해서는 한쪽(이른바 서방 1세계)으로 치우친 해석/보도에 관하여 “과연 사실이 그러한가?”라고 질문한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전쟁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브레히트의 연극처럼 이 전쟁을 바라보는 독자의 관점을 낯선 방향으로 뒤집고, 이 전쟁의 드러나지 않은 혹은 의도적으로 가려진 국면으로 독자를 잡아당긴다.

지은이는 전쟁과 평화는 천당과 지옥처럼 그 어떤 방법을 써도 절대로 이을 수 없는 사건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의 해석이라고 말한다.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라 상호의 이익과 전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들리지 않던 우크라이나전쟁의 다른 국면을 가리킨다. 전쟁이 정치라는 선으로 평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전쟁의 해석을 통해 해법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바로 그 순간 평화를 상상하고 실행할 교두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지정학적 변화를 인식하고 미래로 나아갈 교두보를 찾고자 한다. 나아가 그로부터 이어질 미래 한국의 삶을 상상한다.  

목차

머리말

1장. 들어가며

정답 없는 전쟁을 바라보며
보론: 전쟁과 시민사회 1
보론: 전쟁과 시민사회 2
보론: 전쟁과 시민사회 3

2장. 전쟁의 성격과 원인

1 대리전쟁으로서의 우크라이나전쟁
─나토 동진과 러시아의 ‘실존 위협론’
─나토 동진과 러시아의 대응
─우크라이나전쟁은 제2의 아프가니스탄전쟁인가?
2 ‘내전의 계속’으로서 우크라이나전쟁
─2014년 마이단: 존엄혁명 아니면 ‘뻔뻔한 쿠데타’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3 루소포비아의 정치학

3장. 2022년 전쟁의 전개

1 전쟁은 언제 시작되었나?
2 전쟁의 1단계: 러시아의 패배인가 거대한 기만인가?
3 전쟁 2단계의 전개와 특성
─전쟁의 전개 양상: 작전과 전투
─아조프연대와 마리우폴 전투
─탈산업화 시대의 물량전
4 하이브리드전쟁
─경제전쟁으로서 대러 제재: EU의 자해인가 러시아의 고립인가?
─프레스티튜트와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언론(정보)전쟁
5 전쟁의 3단계: 돈바스를 넘어 노보로시야?

4장.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1 지정학적 대전환과 신냉전: 단극에서 다극으로
─다극 체제로의 평화적 이행은 가능한가?: 지정학의 귀환과 중러 전략협력 체제
─미국의 대전략: 글로벌 나토와 동맹 궁핍화
─다극 체제와 글로벌사우스
2 달러 헤게모니의 위기: 새로운 준비통화의 출현
3 산업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 글로벌 경제의 종말?
4 정의로운 신세계질서?

5장. 한국의 ‘지정치경제적’ 대위기?

1 한국의 지정학적 정체성과 오리엔탈리즘
2 한국의 대전략: 다극 체제와 포스트 한반도평화프로세스

6장. 클라우제비츠와 함께 칸트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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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해영 (지은이)

출판사리뷰

우크라이나전쟁의 진실게임: 평화를 위한 전쟁은 가능한가?

진실은 언제나 흑과 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들을 모두 포함할 때 우리는 사건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에 관해서 한국에는 오직 흑과 백만 존재한다. 제국주의 러시아와 파시스트 푸틴은 이 전쟁의 절대 악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국민들과 영웅 젤렌스키는 이 전쟁의 숭고한 피해자이자 절대로 승리해야 하는 선이다. 민주주의와 세계의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숭고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와 연대하고, 그들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나아가 용기 있는 자들은 의용군으로 직접 참전하여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 선이며 곧 이 세계의 정의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기만 할까? 포화에 스러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맞은편에 또한 전쟁에 희생되는 러시아 국민들이 있지 않나? 푸틴이 자국 병사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죽음을 맞게 하는 독재자라면, 역시 자국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젤렌스키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세계는 과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미국과 나토가 지원한 수십만 발의 포탄과 수십 대의 탱크가 정말로 ‘평화’의 수단인가? 그렇게 구축하려는 평화에 러시아는 포함되는가, 배제당하는가?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이 전쟁을 숭고한 선과 절대 악의 대결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렇다. 아마도 이 전쟁 또한, 무수한 전쟁들이 그러했듯이, 국제정치의 한 과정이자 현 시점의 지정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어떤 지정학 전략과 또 다른 지정학 전략의 충돌이다. 이를 인식하고 전쟁을 선과 악으로 가르지 않기로 했다면 이제 할 일은 이번 전쟁의 과거와 미래를, 그 배경에 있는 많은 관계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흩어져 있던 사건과 인물들을 한 줄로 세우고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주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전략과 손익을 한데 모아서 보면 우크라이나전쟁의 회색 지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은 언제 시작되었나?

이 전쟁은 현지 시각으로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되었다. 그날 새벽 6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무장 해제와 나치즘 제거, 동남부 지역의 주민 보호를 목표로 하는 ‘특수 군사작전’을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군은 키예프와 하르코프, 오데세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핵심 시설물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북부·남부·동부 세 방면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것이 이 전쟁의 시작에 대한 ‘공식’ 해석이다.그러나 이 해석은 서방의,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른바 진보 리버럴 네오콘이 만든 정의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이 사건을 ‘전쟁’이 아닌 ‘특수 군사작전’으로 부르며, 우크라이나를 향해 돈바스 지역의 영토 불가침과 주권을 보장한 “민스크협정”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민스크협정은 2014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이 서명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승인한 것으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러시아인 계통의 주민이 다수인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특수한 지위(분리·자치)’를 약속했다. 그리고 이를 조건으로 해당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군대가 철수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민스크협정에서 약속한 개헌과 돈바스 지역의 분리를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지역 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학대와 탄압을 지속했다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나치즘과 결합하여 공공연히 러시안 슬라브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시도했으며,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현실 정치세력이 되었다고 러시아는 규탄했다.

바이든이 국제사회를 향해 러시아의 전쟁 야욕을 한창 경고하고 있던 2022년 2월 16일에 우크라이나 군대가 돈바스 지역에 대한 대규모 포격을 개시했다. 그럼에도 서방 언론은 2월 16일부터 2월 23일까지 지속된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포격을 보도하지 않았다. 오직 2월 24일에 전쟁이 시작되었다고만 말했다. 한국의 뉴스도 마찬가지다. 또한 2021년 내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했으며 곧 전쟁이 임박했다는 뉴스를 내보내는 동안에도 우크라이나군 또한 전체의 절반 혹은 12만 5000명에 달하는 대병력을 돈바스 지역에 배치했다는 사실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언제 시작된 것인가?

이들은 한결같이 거친 도덕적 성토와 더불어 러시아의 침공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는 침략 반대 및 주권과 영토의 불가침을 규정한 국제법 최고 강행규범을 위반했다. 하지만 동일한 규범은 우크라이나 내 소수민족인 돈바스 민중의 ‘자결권’ 역시 확고하게 승인하고 보장한다. 심지어 이들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의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포로셴코(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와 젤렌스키(우크라이나 현 대통령)는 우크라이나 내 돈바스를 침략했다. _24쪽

예정된 혹은 의도된 전쟁: “나토는 단 1인치도 동진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 반대가 악으로 간주되는 대상의 절멸을 상정하고 있어도 그 편에 서야 할까? 심지어 그 대상이 악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오해와 조작 때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우크라이나전쟁의 기원을 나토의 동진과 낡은 ‘루소포비아Russophobia’(Russia와 phobia의 합성어로, ‘러시아 혐오’를 뜻한다) 지정학에서 찾는다. 1990년 2월 9일 미국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고르바초프를 만난 자리에서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동의를 구하며 “나토의 관할권이 동쪽으로 단 1인치라도 확장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같은 약속을 조지 W. H. 부시 미국 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했다. 미국과 나토는 소련을 포함하는 유럽의 새로운 평화·안보 구조를 소련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에서 소련은 붕괴해 사라졌고, 나토는 회원국을 늘리며 점점 더 동쪽으로 확장되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에 나토의 군사기지가 설치되었고, 그들의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대는 모스크바를 향해 있었다. 러시아는 여기에서 어떻게 평화가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미국과 나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팽창은 누구를 겨냥하는가?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이후 우리의 파트너들이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선언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나? 아무도 그것을 기억조차 못 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 앞에서 지금까지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상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1990년 5월 17일 브뤼셀에서 나토 사무총장 뵈르너가 한 연설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나토 군대를 독일 영역 외부에 배치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소련에게 확고한 안보보장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보장은 지금 어디로 갔습니까? _53쪽(푸틴의 2007년 뮌헨 안보회의 연설)

우리는 누군가를 도발하지 않도록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파트너에게도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청합니다. _55쪽(푸틴의 2008년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의 연설)

루소포비아, 닳고 닳은 기억의 정치

현재 미국의 집권 민주당의 주류는 시카고대학의 레오 스트라우스와 예일대학의 도널드 케이건에서 시작된 네오콘의 후예들이다. 지은이는 이 가운데에서도 국무부 차관 빅토리아 눌런드를 포함한 케이건 집안을 네오콘의 성가정Holy Family으로 지목한다. 이들의 목표는 ‘자유주의 패권의 확장’이며, 그 과정에서 소련은 반드시 제압해야 할 주적으로 설정했다. 냉전은 끝났고 소련은 지상에서 사라졌으며 푸틴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네오콘은 자신들의 계획표에 공산주의 소련의 빈자리를 민주주의 러시아로 바꾸었다.

실제로 2014년 이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과 질의 군사 장비와 훈련, 자문을 최대한 제공했다. 마치 서방의 자본 및 기술과 남방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하듯이 미국 및 나토의 군비와 재정, 첨단 무기, 정보 및 장비로 무장한 양질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맞상대로 육성되었다.

‘브레진스키 함정’의 요체는 이렇다. 적을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유도해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전력을 약화시킨 뒤 최종적으로 압박해 무너뜨린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베트남’이 되었고, 소련은 자국의 생산력으로 더 이상 냉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붕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목되었다. _66~67쪽

그리하여 지은이가 내린 결론은, 이 전쟁은 미국의 리버럴 혹은 진보 네오콘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바둑돌로 들고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대리전쟁proxy war’이다. 또한 “이 전쟁은 미국이 감독하고 젤렌스키가 연기한 드라마다!”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 우크라이나 내부의 경계선

외부인이 보기에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혹은 폴란드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슬라브인)으로 보이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혹은 네오나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서부가 이데올로기적 경계선(섭틀니 라인Subtelny line)에 의해 둘로 분할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 경계는 인종상의 차이(우크라이나인 대 러시아인)와 언어상의 차이(우크라이나어 대 러시아어)에 서로 다른 홀로코스트 역사가 더해진 결과이다. 홀로코스트 역사 왜곡과 백인종 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서 네오나치가 무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가 되었으며, 이제는 무장한 나치가 거리의 정치뿐 아니라 의회와 언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 세계 네오나치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한편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친러시아 노선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이른바 ‘마이단혁명’)에 네오나치 조직 스보보다당을 동원하였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미국의 전략이 우크라이나 문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꼬아버렸다.

우크라이나인들 중에는 스스로를 서구인과 동일시하면서 러시아인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마이단을 둘러싼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 ‘선진적’ 친마이단 세력이 ‘후진적’ 친러시아 세력과 공통의 언어를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이 바로 이 우월감이다. 이것이 돈바스 봉기,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대테러 작전, 러시아의 개입, 민스크평화협정과 키예프 정권의 불이행,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전쟁을 초래했다. _90쪽

미국, 최악의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로: 한반도는 냉전 2.0 시대에도 ‘냉전의 최전선’

전쟁은 어느새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병력과 자원을 우크라이나에 가두어놓고 경제 제재를 추가하여 러시아를 굴복시키려던 미국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 러시아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을 강력한 동맹으로 확보하고, 브릭스 국가 및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영향력을 넓혔다. 지은이는 이와 같은 이번 전쟁의 성격을 ‘하이브리드전쟁’으로 정의한다. 전쟁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적 충돌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게 서방the West 대 나머지the Rest의 세력 경쟁으로 확장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1년) 이래로 서구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했으나 이제 그 목표가 바뀌었다는 지은이의 분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도래할 다극 체제로의 전환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미국의 세기, 단극의 세계질서가 마침내 끝나가고 있다.

현재의 핵심은 ‘대유라시아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지정학적 방향성을 동쪽과 남쪽에서 찾고 있다. 서방과의 관계를 굳이 피하진 않겠지만, 중요한 미래는 동과 남에 있다는 말이다. 특히 동진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반동맹을 구축하여 과거 냉전 때처럼 서로를 적대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한다. …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신냉전의 대포밥’에 불과하다. 이 전쟁의 목표는 위협 제거와 억지다.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만큼의 힘만을 투사하여 다시는 러시아의 미래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_220쪽

곧 도래할 두 번째 냉전 시기에도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책의 말미에서 ‘친미’를 최핵심으로 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문화가 대륙의 지각변동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관하여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지정학적 충격을 성공적으로 흡수하거나, 흡수했지만 충격을 받고 균열이 생기거나, 혹은 충격으로 아예 분열하는 경우이다. 어떤 경우든 달러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급속히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의 정치경제는 엄청난 구조 변경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전쟁의 진짜 의미는 한국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우크라이나전쟁 너머에 있는 신세계질서를 봐야 하는 이유다.

적어도 우리에게 미국은 단지 한 나라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관계다. 국제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국내관계의 문제이다. 한국 안에서 미국은 깊은 해자로 둘러싸인 구조이자 시스템인 동시에 네트워크다. 현재까지도 미국은 강력한 구심력으로서 한국의 권력으로 정의되는 이익을 자신에게 복속시키고 있다. 봉신국에 대한 종주국의 권리인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이익이란?키신저의 말처럼?우적友敵을 초월하는 국가 목표인 반면, 우리에게는 이것이 친구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비대칭이 존재한다. _283쪽

상품필수 정보

도서명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저자/출판사
이해영 (지은이),사계절
크기/전자책용량
138*225*30mm
쪽수
336쪽
제품 구성
상품상세참조
출간일
2023-02-03
목차 또는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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