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스페인 문학계의 신성’ 안드레스 바르바가 창조한
기묘한 열대 도시 이야기 혹은 21세기판 『파리대왕』
★2017년 스페인 에랄데 소설상 수상작
★전 세계 22개 언어권 출간 화제작 · RT피처스 제작사 영상화 계약
■ 이 책은
스페인 문학계를 이끌 차세대 거장으로 주목받는 작가, 안드레스 바르바의 소설 『빛의 공화국』이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바르바는 2010년 영국 문예지 《그랜타》가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작가 22인’에 선정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계의 큰 기대 속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활발하게 발표해온 작가이다. 바르바의 최근작 『빛의 공화국』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여 도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32명의 아이들에 대해 당시의 사회복지과 공무원이 이야기하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화자인 ‘나’는 사건이 일어난 지 20년 후, 당시의 시 회의록과 신문 칼럼, 기고문 그리고 훗날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와 한 소녀의 일기 등 여러 내레이터들의 기록을 토대로 기억을 정리하여 32명의 출현과 그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분석한다. 라틴아메리카 마술적 사실주의의 신화적 상상력과 유럽 고딕 문학의 음산한 미학 그리고 서스펜스 스릴러의 분위기가 녹아 있는 소설은 ‘유년의 순수함’이라는 익숙한 개념에 의문을 던지면서 선과 악, 문명과 야생, 진실과 현실에 대한 새로운 담론들을 이끌어낸다. 2017년 『빛의 공화국』은 매년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빼어난 소설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에랄데상을 수상했다. 에랄데상의 역대 수상자로는 멕시코의 세르히오 피톨, 칠레의 로베르토 볼라뇨, 아르헨티나의 마리아나 엔리케스 등이 있다.
저자
안드레스 바르바
출판사리뷰
★2017년 스페인 에랄데 소설상 수상작
★전 세계 22개 언어권 출간 화제작 · RT피처스 제작사 영상화 계약
“그 아이들은 이미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하나하나 바꾸고 있었다” - 줄거리 소개
소설의 화자인 ‘나’는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 있는, 밀림의 도시 산크리스토발에서 벌어진 사건을 연대기순으로 술회한다.
1993년 공무원 ‘나’는 인디오 공동체 통합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내와 의붓딸을 데리고 산크리스토발로 부임한다. 거대한 밀림과 강으로 둘러싸인 (라틴아메리카 가상의) 도시 산크리스토발은 지역 경제가 호황기를 맞으면서 중산 계급이 늘고 있는 평범한 소도시였다. 이듬해 정체불명의 아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구걸하기 전까지는. 모두 아홉 살에서 열세 살 사이의 이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 그리고 밤마다 한꺼번에 어디로 사라지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범죄 집단에 납치되었던 아이들이 집단으로 탈출해 온 것이라고 주장했고, 누군가는 아이들이 강에서 솟아났다고 하는 등 추측만이 무성할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물건을 훔치고 난동을 부리면서 폭력적으로 변해가더니 급기야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는 한순간에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경찰이 32명을 찾아 밀림 수색에 나서는 사이, 도시의 ‘우리’ 아이들까지 달라지기 시작한다……
밀림의 도시에 출현한 정체불명의 아이들을 둘러싼 도덕률적 스릴러
이 소설에서 밀림의 도시를 교란하는 32명은 마치 무인도에 고립되는 바람에 질서를 잃으면서 인간의 야만적 본성을 드러내는『파리대왕』 속 아이들을 연상케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들과 공포에 빠진 도시라는 소재는 고전 호러 영화 〈저주받은 도시〉의 어린 외계 생명체들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현대사의 변화가 읽히는 가상의 도시는 『백년의 고독』 속 마콘도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장르를 변주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문학적 장치들을 통해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한다.
32명의 아이들은 도시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까지 점령해가면서 이야기의 불길한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지도자가 없는 그들의 공동체가 규칙에 지배받지 않으며 흡사 즐거운 “놀이”를 하듯이 모든 일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유혹”을 동시에 느끼고, 이로 인해 도시는 기존의 가치관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듯 도입부에서 이미 정해진 결말로 나아가기까지 향방을 알 수 없는 전개를 보이는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 의문을 품게 한다. 불쑥 나타나 도시 질서를 무너뜨리고, 일상생활에 균열을 일으킨 32명의 정체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와 ‘유년의 순수’ 신화에 경종을 울리는 사악한 우화
한편 소설의 화자는 사회복지과 ‘공무원’으로서 거리를 떠도는 32명의 아이들을 담당할 의무를 맡게 된다. 화자가 인용하는 사건 당시의 기사와 시 회의록을 보면, 아이들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언론은 그에게 비난을 쏟아내고, 의원들은 뒤늦게야 고아원 예산을 두 배로 늘리라는 등 실현 불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모든 책임을 ‘나’에게로 돌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택했던 부끄러운 행동들을 돌아보면서, 훗날 ‘나’는 회한 어린 목소리로 넌지시 “기억의 복수”라고 말한다.
필연적으로 32명과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던 ‘나’는 또한 ‘아버지’로서도 그들이 일으킨 변화에 당황하고 분노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대표한다. 소설에서 어른과 아이 두 세계가 충돌하는 모습에 대해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유년기의 낙원을 둘러싸고 우리가 집단적으로 구축한 픽션과 가능한 한 그것을 해체시킬 가능성에 관해 성찰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하다는 믿음은 어른들의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이 작품에서 32명을 통해 유년기의 낙원을 해체하며 성찰하고자 한 바는 곧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대상화한 어린 세대 및 주변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이야기의 표피 아래 다양한 함의를 품고 있는 이 소설은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여러 내레이터들의 기록을 토대로 회고하는 화자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우리의 현실이란 삶의 경험이 의식 속으로 스며들어 형성된 관념일 뿐 ‘진실’과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32명의 마지막에서 어느덧 ‘빛의 공화국’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 소설은 또 다른 모습을 띠고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어떤 것이든 일단 믿기 시작하면 그 어떤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주변의 도덕에 따라 행동한다. 그렇다면-우리가 늘 당당하게 말하듯이-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정말로 믿어도 된다는 걸까?
_215∼216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