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늙어감의 불가피한 인간 실존과 운명을 사유
『늙어감에 대하여―저항과 체념 사이에서』는 늙어감의 불가피한 인간 실존과 운명을 도저하게 사유한다. 이 책이 질문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6쪽) 다시 말해 늙어감이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아낸 주관적 현실’의 차원에서 다룬다.
저자 장 아메리는 철학과 문학 텍스트에서 길어올린 사유를 씨줄과 날줄 삼아 늙어감의 진실에 한치의 타협도 없이 접근한다. 『늙어감에 대하여』는 늙어감의 현실에 직면하기 시작한 중장년층에게는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남아 있는 생을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젊은 독자에게는 그들 앞에 놓인 삶의 소중함과 존엄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목차
초판 서문―저항과 체념의 모순을 탐색하는 여정
4판 서문―늙어감, 그 지속의 현상
살아 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절없이 흘러버린 세월
시간, 그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허무
측량할 길 없는 시간의 상대성
우리는 늙어가며 시간을 발견한다
시간의 무게와 죽음
다시는 오지 않으리
시간 속에서 나는 홀로 있다
낯설어 보이는 자기 자신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나
노화, 세계의 상실 또는 감옥이 된 몸
나는 누구이며, 내가 아닌 나는 또 누구인가
낮과 밤이 여명 속에서 맞물리듯이
타인의 시선
사회적 연령, 타인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나
소유냐 존재냐
저항과 체념의 모순에 직면하기
더는 알 수 없는 세상
세상으로부터의 소외
문화적 노화
세상 이해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그 모순에 저항하기
죽어가며 살아가기
죽어감조차 평등하지 않다
죽음의 기이한 불가사의
죽음의 부조리,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보다 죽어간다는 게 두렵다
죽음과의 타협
위로가 아닌 진실을
옮긴이의 말―존엄으로 빛나는 삶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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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 아메리 (지은이), 김희상 (옮긴이)
출판사리뷰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즉물적 시선과 타성을 거부하는 사유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저자 장 아메리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서, 프리모 레비와 더불어 독일 나치스의 유대인 절멸에 대해 알린 대표적인 증언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은 추상적인 이론이나 사상에 의존하지 않고,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한 독자적인 사유를 도저한 수준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에세이즘의 한 경지에 다다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메리는 독일의 집단적 학살을 글자 그대로 ‘몸’으로 경험한다. 고문과 폭력을 ‘피부 표면’에서 경험하고, 무수한 살해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고 각인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이론과 사상의 프레임을 우선적으로 전제하지 않고 한치의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즉물적 시선과 타성을 거부하는 사유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았던, 숨 쉬는 게 외줄타기와 같았던, 동료들의 “쌓인 시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밟고 넘어가”(192쪽)야 했던,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체험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아메리는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에서 살아남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더 이상 ‘고향’이 될 수 없는 세상이었고, 젊음이 상실된 채 남아 있는 한줌의 시간이었다. 이 세상으로부터 고향을 상실하고 청춘을 강탈당한 자는 그저 늙어가야 했다.
늙어가는 이의 인생은 시간의 층이자 무게이다
첫 번째 에세이 「살아 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에서는 늙어가는 인간은 새삼스럽게 시간을 발견한다는 논지를 펼치면서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아메리에 따르면 젊은이는 세계를 ‘공간’으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외화’(外化)하지만, 늙어가는 사람은 지나버린 ‘시간’을 인생으로 ‘기억’하고 ‘내화’(內化)한다. 늙어감은 그의 안에 시간의 층이 점점 두꺼워짐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인 자신은 바로 ‘시간’이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한탄하는 것은, 늙어가는 이에게 더 이상 세계와 공간이 허락되지 않고, 대신 그 안에 쌓이는 시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몸의 발견, 낯섦과 소외를 경험하는 나
늙어가면서 새삼스럽게 발견되는 것은 시간과 더불어 우리의 ‘몸’이다. 아메리는 고통과 아픔을 호소하는 자아를 ‘새로운 자아’ 또는 ‘진정한 자아’라고 명명한다. 이 자아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자신의 것”이고 “세계의 것이 아닌 오로지 나의 자아”(86쪽)이다. 몸의 고통은 나의 진실이지만,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누리던 세계의 상실을 의미한다. 조금씩 변해가는 나를 바라보는 나는 나로부터 낯섦과 소외감을 느끼고, 더불어 본래적 자아를 새롭게 발견했음에도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인다.
타인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나
―“도대체 나는 언제 진짜 사는 것처럼 살까?”
우리가 ‘나이’라고 하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사회의 관습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아메리는 이를 ‘사회적 연령’이라고 칭한다. “사회적 연령이란 타인의 시선이 우리에게 측정해주는 것이다.”(99쪽) 사회적 요구에 따라 그 나이에 부합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결국 인생은 “그가 어제까지 시도해왔고 포기한 일의 총량”(101쪽)이 된다. 사회에 순응한다는 것은 ‘소유’와 ‘존재’의 삶에서 ‘소유’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의 시선 아래에서 사회적 연령에 부합하는 삶을 살다가 늙어가는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하며 인생을 살았는지 생각해본 일도, 어떤 게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 도전해본 일도 없다”는(102쪽) 걸 깨닫는다.
문화적 노화―세상 이해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그 모순에 저항하기
아메리가 늙어감을 육체와 사회적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문화적 범주까지 확장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아메리가 이 책을 집필한 1960년대는 20세기 유럽 지성사의 격변기였다. 문학과 철학 등의 인문 지성도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아메리는 이를 ‘표시 체계’의 변화라고 말하는데, 문화적 노화란 이 표시 체계를 해독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빠르게 변모하는 현대사회에서 “현재의 문화적 현상을 자신의 시대였던 과거라는 관계 지점에 따라 해석하려 시도하는” 늙어가는 사람은 점점 세상으로부터 소외된다.(139쪽) 문화적 노화는 현대인이면 피할 수 없는 늙어감의 한 현상이다. 아메리는 이에 대해서 다소 모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