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메이지 시기 근대화·서구화의 소용돌이 속 종교를 둘러싼 충돌과 논쟁,
그 가운데 구성된 근대 종교 개념의 역사성!
일본 기독교, 불교계 중심인물을 통해 고찰한 계보학적 연구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메이지 시기 일본, 서양의 학문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개념과 용어가 유입되고 생성되었다. ‘종교’ 또한 그중 하나다. 신도, 불교 등 일본 고유의 종교 전통은 이미 있어왔지만, 근대적 종교 개념이 구성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초기에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종교’가 채택되면서다. 특히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기존 종교 전통들은 스스로를 변증하기 위해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종교 개념 자체를 고찰해야 했다.『만들어진 종교』는 이처럼 종교 개념의 정립 필요성이 촉발된 메이지 초기에서부터 종교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 메이지 후기를 대상으로 하여 그 역사성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해낸 연구서다. 자칫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쉬운 ‘종교’ 개념을 그 역사성에 주목하여 검토하면서,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종교’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나갔는지를 탐구한다.
목차
서론
제1장 종교 개념의 역사성이라는 관점
제1절 서론: 종교 개념을 역사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
제2절 종교 개념과 관련 연구
제3절 결론: 종교 개념을 다시 이해한다는 것
제1부 문명으로서의 종교
제2장 개화·종교·기독교
제1절 서론: ‘문명의 종교’를 다시 생각한다
제2절 제시된 기독교와 종교
제3절 수용된 기독교와 종교
제4절 결론: 동태로서의 제시와 수용
제3장 ‘이학’과 ‘종교’: 메이지 10년대의 학문과 종교의 위상
제1절 서론: 학문과 종교의 조화라는 주장
제2절 다카하시 고로와 『육학잡지』
제3절 다카하시 고로의 ‘종교’와 ‘이학’: 「종교와 이학의 관섭 및 그 긴요함을 논함」(1880)을 중심으로
제4절 결론: 학문과 종교의 조화와 그 귀결
제4장 불교를 연설하다: 메이지 10년대 중반의 ‘불교 연설’의 위상
제1절 서론: 왜 ‘불교’를 ‘연설’하는가
제2절 ‘불교 연설’의 위상- ‘연설’‘설교’‘불교 연설’
제3절 ‘불교 연설’에 보이는 불교·기독교
제4절 결론: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제2부 문명에서 종교로
제5장 고자키 히로미치의 기독교·종교 이해의 구성
제1절 서론: 고자키 히로미치의 『종교요론』과 『정교신론』
제2절 『종교요론』
제3절 『정교신론』
제4절 결론: 종교와 기타 종교들
제6장 나카니시 우시오의 종교론
제1절 서론: 불교변증론에서 바람직한 종교
제2절 메이지 중기까지의 개관
제3절 이노우에 엔료
제4절 나카니시 우시오
제5절 결론: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제7장 문명에서 종교로: 메이지 10~20년대에 걸친 우에무라 마사히사 종교론의 변천
제1절 서론: 기독교와 여타 종교의 단절과 연속
제2절 메이지 10년대 - 문명과 진화론
제3절 전환점 - 서양 인식과 기독교 이해의 전환
제4절 메이지 20년대 - 종교라는 영역
제5절 결론: 문명에서 종교로
제3부 종교와 도덕의 재배치
제8장 도덕과 종교의 위상
제1절 서론: 도덕과 종교라는 문제
제2절 교육칙어와 우치무라 간조의 불경 사건 - 도덕과 종교 1
제3절 이노우에 데쓰지로 『교육과 종교의 충돌』을 둘러싸고 - 도덕과 종교 2
제4절 결론: 기독교와 국민 도덕의 재배치
제9장 나카니시 우시오 『교육과 종교의 충돌에 대한 단안』에 대해: 기독교 재해석과 바람직한 종교라는 관점에서
제1절 서론: 나카니시 우시오의 종교·일본·기독교
제2절 『교육과 종교의 충돌에 대한 단안』 집필 이전의 나카니시 우시오와 유니테리언
제3절 나카니시 우시오 『교육과 종교의 충돌에 대한 단안』
제4절 결론: 종교 배치의 이중성
제10장 『종교 및 문예』로 본 메이지 말기 기독교의 한 측면
제1절 서론: 『종교 및 문예』와 시대
제2절 우에무라 마사히사와 『종교 및 문예』
제3절 메이지 말기와 기독교
제4절 『종교 및 문예』
제5절 결론: 종교의 학문적 탐구의 행방
결론: 종교 개념과 종교의 영역을 둘러싸고
미주
참고문헌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호시노 세이지
출판사리뷰
문명, 개화, 학문으로서의 기독교
메이지 시기 종교가 새롭게 제시되고 수용된 국면은 기독교와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보편성, 진리 등에 대한 질문이 촉발되었고 종교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초기 선교사들은 서양의 선진 지식, 특히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 지식을 기독교 전도의 수단으로 삼았다. 과학적 법칙성과 자연의 질서를 제시하고 그것을 신의 존재와 연결 지어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성을 변증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종교를 문명, 개화, 학문과 결부시켜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일본 사회가 기독교를 선진문명이라고 하여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일본기독교회의 지도자적 인물인 우에무라 마사히사는 서양에서 온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독교를 수용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신문명으로서가 아니라 문명과 조화를 이루는, 올바른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강조했다. 다카하시 고로는 종교와 이학(학문)을 나란히 두고, 진리 탐구의 행위와 신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보편적 도덕률을 명확하게 한다고 보았다. 한편 메이지 전기의 계몽사상가인 나카무라 마사나오는 유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독교 재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자연신학에서 주장하는 자연의 질서를 유교의 리(理), 천(天) 등에 호응시키면서 기독교의 합리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때 신과 인간을 잇는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다소 소거된 형태로, 나카무라의 독자적인 기독교 이해가 구축되었다.
문명에서 종교로 ― 독자적 영역으로 발전해나가다
메이지 2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종교를 차차 문명이나 학문, 학술로부터 분리하여, 종교의 본질을 고찰하려는 논의가 일어났다. 고자키 히로미치는 J. H. 실리의 책 『길, 진리, 생명』을 번역해 소개하면서 문명과 종교, 종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교육자이기도 했던 실리는 물질적인 진보가 문명의 목적이 되는 것을 배척하고, 완전한 자유와 정의, 행복을 얻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종교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며, 종교가 문명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고자키 또한 도덕과의 관련에 초점을 맞추어 도덕을 주체적으로 행하게 하는 것으로서 종교를 이해했다. 특히 유교의 경우 정치적 군주인 왕이 권위의 원천이 되는데, 현실의 왕이 충분한 덕을 갖추고 있지 못할 때도 있다며 비판했다. 반면 기독교의 신은 초월자를 근원으로 삼고 있으며, 도덕의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도덕이 국가를 문명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나카니시 우시오는 불교도의 관점에서 이와 유사한 논의를 개진했다. 초월성과의 관련성만이 종교를 종교답게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그는 기독교보다 불교가 한층 더 고도의 종교라 주장하며 불교를 옹호했다. 이러한 불교 변증의 핵심은 불교가 자연교가 아닌 범신교이며, 기독교가 취하는 일신교 형태보다 범신교가 더 발전된 종교라는 논리였다. 이러한 나카니시의 주장은 근대적인 인간지와의 관련 속에서 종교를 파악했던 당대의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메이지 10년대에는 종교를 문명과 불가분한 것으로 이해했던 우에무라 마사히사 역시 종교와 문명을 분리하여 이해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서양 체험 및 자유주의적 기독교 이해의 일본 유입 등을 계기로 우에무라는 종교를 초월성과의 관계를 본질로 하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러면서 문명과 분리된 보편적 진리성을 주장하며, 종교를 희구하는 인간의 마음에 방점을 찍었다. 이처럼 초월성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논의가 기독교와 불교 모두에서 전개되면서 점차 종교의 영역이 명확해지고, 종교와 종교가 아닌 것의 구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도덕과 종교의 문제 ― 국체사상과의 충돌
초월성에 기반한 종교 이해는 메이지 20년대 중반~메이지 후기에 종교와 도덕의 관계에 재배치를 불러왔다. 여기서 도덕과 종교의 충돌이 극렬하게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우치무라 간조의 불경사건이다. 1890년 학생들을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민으로서 교육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교육칙어가 배부되었는데, 천황의 서명이 있는 그 신서에 기독교도인 우치무라가 배례를 하지 않고 머리를 조금 숙이는 것에 그쳐 논란이 된 사건이다. 이에 기독교가 ‘일본의 국체 본성에 맞지 않는다’, ‘나라의 안녕질서를 방해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기독교도들은 여러 관점에서 반론을 펼쳤다. 우치무라의 행동이 불경하다는 비판부터, ‘외형의 예식’과 ‘종교적 예배’를 바르게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예식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까지 다양했다. 특히 우에무라 마사히사는 “진실로 천황의 뜻에 따른다면 문명적이지 못한 습속은 폐기되어야 한다”면서 기독교도의 양심과 천황에 대한 충성이 충돌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사랑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애국이란 단순히 일본이라는 나라를 넘어 ‘인류의 개화진보’ ‘인성의 완성’ 등과 같은 보편적인 목적의 달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봤다. 이처럼 우에무라는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가 아닌, 서양을 넘어서 보편적 진리를 가진 종교임을 역설하며, 국수주의가 성립되어 가는 시대적 흐름과 호응하고자 했다.
불교의 입장에서 활동하던 나카니시 우시오도 불경 사건에 의해 발단된 기독교 비판의 국면에서 국체주의를 넘어서지 않는 새로운 기독교를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유니테리언적 기독교 이해를 참조하며, 일본에 입각한 일본의 기독교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카니시의 이러한 비교종교학적 시도는 일본과 기독교, 일본과 종교라는 동시대적 과제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는 근대 일본에서 종교를 생각하는 데 시사적 역할을 했으며, 이전에는 조화 속에서 파악되던 종교와 도덕의 관계를 새롭게 보게 했다.
풍부한 사료를 통해 분석하는 종교가들의 ‘말’
일본 근대 역사 속에서 종교 개념이 새롭게 제시되고 그 틀을 잡아 나가는 과정을 살펴봄에 있어『만들어진 종교』는 종교가들의 말, 종교가들의 담론 작업에 집중한다. 당대에 활동했던 기독교와 불교의 지도자적인 인물, 예를 들어 우에무라 마사히사, 나카니시 우시오, 다카하시 고로 등이 종교를 둘러싼 논의의 장을 어떻게 구축해나갔는지 살핀다. 이들의 저작물뿐 아니라 그 시기 발행된 잡지, 연설 기록 등 1차 자료를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종교를 둘러싼 종교가들의 발화 및 유통의 과정을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일종의 미디어 연구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만들어진 종교』는 근대 사료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며 일본인 기독교도가 기독교를 지적?반성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노력, 기독교와의 경합 속에서 스스로를 옹호하고 갱신하기 위한 불교계의 노력 등을 꼼꼼하게 분석해낸다. 종교 개념의 역사성을 추적하는 이 작업은 일본의 근대 종교 개념이 완성된 형태로 수입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문명, 도덕, 초월성의 문제를 둘러싼 종교가들의 적극적인 논쟁들 과정 속에서 구성된 결과임을 논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