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구 행성의 가장 깊은 기억을 찾아 나선
프리다이버와 과학자들
투명하고 푸르고 검은 바다,
그리고 그곳의 서식자들을 만나다
취재 차 방문한 그리스에서 제임스 네스터는 당혹스러운 장면을 마주친다. 장비 하나 없이 바다 한가운데 뛰어들어 심연 아래로 사라지는 사람들. 90미터 해저까지 내려갔다가 미소를 띠고 올라오는 그들은, 맨몸으로 바다와 뭍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프리다이버들이다! 네스터는 알려지지 않은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파고들며 과학의 이단아 같은 연구자들과 익스트림 스포츠에 몸을 던진 선수들 틈으로 들어가 몸을 적신다. 해수면에서부터 바다 가장 깊은 곳으로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우리는 지구의 생명과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눈뜬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엄청나게 정교한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고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확히 수직으로 헤엄치는 상어, 수심 730미터 아래에서 80분간 숨을 참으며 유영하는 바다표범, 초심해층에서 빛 한 점 없이 살아가는 심해 생물들의 신비로운 삶은,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인간 진화의 자취를 보여준다. 불가능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는 프리다이버와 바닷속 동물들이 함께하는 생명의 춤은 황홀하고, 압도적이다.
목차
해수면
수심 60피트
수심 300피트
수심 650피트
수심 800피트
수심 1000피트
수심 2500피트
수심 1만피트
수심 2만8700피트
상승│에필로그│감사의 글│주│참고문헌│찾아보기
저자
제임스 네스터
출판사리뷰
저널리스트 제임스 네스터는 우연한 기회에 단지 수영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리스 남부 칼라마타에 취재를 나가게 된다. 그때까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날의 취재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하나의 ‘사건’이 될 줄은. 세계 프리다이빙 챔피언십이 프리다이빙의 ‘프’ 자도 모르던 그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네스터는 프리다이빙 규칙과 스타 선수들을 구글링하며 하루를 보낸다. 잘 모르는 경기지만,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배드민턴이나 댄스 경연처럼 별난 취미쯤으로 여겨질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튿날, 경기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고개를 동서로 돌려보고, 남북으로 끄덕여봐도 하늘과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중해 한가운데서, 스쿠버 장비도, 산소줄도, 구명조끼도, 하다못해 오리발조차 끼지 않고 수영복 하나 달랑 걸친 선수들이 건물 30층 높이의 수심까지 잠수했다가 올라왔다. 심판이 목청껏 알리는 수심 외에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면 선수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잠하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누구 하나 억지로 물속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아주 천연덕스럽게, 마치 원래 그곳에 속했던 존재인 양. 우리 모두의 고향이 그곳이라고 웅변하는 듯.” 그로부터 나흘간 네스터는 이 경기를 취재 나온 전 세계 유일의 기자로서(프리다이빙은 지금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였다) 몇 명의 선수가 300피트 가까이 잠수를 시도하는 걸 더 지켜본다. 선수들은 코피가 흘러 피범벅이 되거나 의식을 잃거나, 심지어 심장이 마비된 채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기는 계속됐다.
선수들은 보통 사람들이(심지어 과학자들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깊이까지 잠수를 시도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전신 마비가 오거나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도전한다. 그래선지 해마다 수십에서 수백 명의 다이빙 선수가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다. 죽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스포츠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도 취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온 네스터의 머릿속은 며칠이 지나도록 프리다이빙이라는 다섯 글자로 가득했다. 그길로 그는 프리다이빙에 대해 더 알아가고, 점점 더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머리와 펜끝으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깊은 바다, 프리다이빙』은 저자가 몸소 프리다이버가 되어 전 세계 수많은 프리다이버와 과학자를 만나 바다와 그 안에 간직된 인간의 가능성을 탐사한 기록이다. 그는 무려 1년 반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 일본, 스리랑카와 온두라스 등 지구 곳곳을 떠돌며 바다가 들려주는 인간의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수심 100피트까지 잠수해서 식인 상어 등지느러미에 위성 수신기를 부착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제 잠수정을 타고 수천 피트 물속으로 내려가 야광 해파리들과 교감을 나누고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온갖 바다 생물과 조우했다. 돌고래들에게 말을 걸고, 고래의 말도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포식자와 눈을 마주 보며 헤엄도 쳤다. 지구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수중 벙커에서 해양과학자들과 함께 질소에 중독된 채 넋을 잃은 적도 있었다. 무중력 상태로 물 위를 떠다니기도 했고, 뱃멀미도 숱하게 했다. 그러고서 찾은 답은? 대다수의 사람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바다와 더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바다, 그곳의 서식자들
그리고 프리다이버
70억 명이 거주하는 이 세상의 육지는 이미 센티미터 단위까지 정밀하게 측정되어 지도상에 그려졌고 상당 부분이 개발의 물결에 휘말려 지나치게 많이 파괴된 반면, 바다는 아직 조사나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미답의 불모지인 채로 남아 있다. 행성 지구에 최후로 남은 거대한 변방인 셈이다. 휴대전화도, 이메일도,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없는 곳. 그곳에서는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릴 일도, 테러리스트의 위협도, 생일을 까맣게 잊을 염려도, 신용카드 대금 연체이자 걱정도, 면접 보러 가다가 개똥을 밟을 일도 없다. 삶의 모든 스트레스와 소음 그리고 우리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잡무는 모두 수면 위의 일이다. 바다는, 지구에서 진정한 적막감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프리다이빙은 그 적막을 어떤 거추장스러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만끽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문명 안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진화적 기억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수면 아래에서 보내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인간의 몸은 형태와 기능 면에서 육상에 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다는 우리를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변화시킨다. 프리다이빙 선수들이 이를 몸소 보여준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수심 40피트에서 찾아온다. 그쯤 내려가면 부력과 중력의 힘이 역전되면서, 몸을 위로 떠미는 물의 부력은 약해지고 한없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은 세지기 시작한다. 이 지점이 바로 ‘심해의 문’이며, 이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인간의 몸에는 수중과 육상에 동시 적응이 가능한 반사신경이 있다. 그것은 존재할 뿐 아니라 버젓이 이름도 갖고 있다. 이름하여, ‘포유동물 잠수 반사mammalian dive reflex’, 조금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Master Switch of Life’다.
생리학자 퍼 숄랜더가 1963년 이름 붙인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라는 용어는 1963년 생리학자 퍼 숄랜더가 지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얼굴이 물에 잠기자마자 촉발되는 다양한 생리학적 반사작용을 일컫는데, 여러 기관 중에서도 뇌와 폐, 심장에서 활발하게 일어난다. 더 깊이 잠수할수록 반사작용도 더 강력하게 일어나고, 엄청난 수압으로부터 몸속 기관들을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 변화에도 박차가 가해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 몸을 심해 잠수에 능한 동물처럼 바꾸어놓는다. 프리다이버들은 이 스위치가 켜질 것을 예상할 수 있고 더 깊이 더 오래 잠수하기 위해 이 스위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뭇 고대 문명 역시 이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를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 스위치를 이용해 수 세기 동안 해면이나 진주, 산호를 비롯해 수백 피트 심해에 존재하는 해양 식량을 수확했다. 17세기에 이르러 카리브해, 중동, 인도양, 남태평양을 찾은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이 숨 한 모금 들이마시고서 100피트 이상 깊은 바다로 내려가 최장 15분까지 잠수하는 걸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에게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 가까이에도 아직껏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생활을 영위해가는 해녀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바다의 자식이다. 우리는 물에서 왔고 물로 돌아간다. 단지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양수에서 왔다는 게 아니라, 초심해층의 열수분출구에서 시작돼 유구한 생명 진화의 역사를 거쳐 여기까지 왔고, 죽어서 무언가에 먹히고 그것이 배설을 하고 또 먹히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기체의 분자가 되어 수천 년이 지나 다시 바다 가장 깊은 곳에 쌓인다. 바다는 수십억 년 전에 지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 행성 최초의 생명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뭇 생명이 어떤 과정으로 진화해갔는지, 또 모든 생명의 종착지가 어디인지까지를 설명해줄 미지의 세계다.
바다의 ‘코스모스’를 찾아서
바다는 육지와 상이한 규칙들이 지배하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곳을 이해하려면 생각의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기기묘묘한 일들투성이다. 일례로, 산호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생체 구조이고, 바다 밑 세상의 45만3200제곱킬로미터를 덮고 있으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정교한 방식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동일한 종種의 산호들은 매년 같은 날, 같은 시간, 보통은 분 단위까지 맞추어 일제히 산란한다. 심지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완벽하게 같은 시점에 갑자기 산란을 시작한다. 해마다 날짜와 시간은 다르지만, 그 이유도 오직 산호들만이 알고 있다. 더욱더 신기한 점은 한 종의 산호가 한 시간가량 산란하는 동안 다른 종은 산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면에서 수심 수백 피트까지 구간에서는 바다와 인간의 관계가 신체적으로 드러난다. 우리의 짭짜름한 혈액, 임신 8주 차 태아의 턱 부위에 난 아가미를 닮은 틈들, 해양 포유동물과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수륙 양용 반사신경은 바다와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인간의 몸이 생존할 수 있는 한계 수심인 700피트를 지나면 인간과 바다의 관계는 감각적이 된다. 심해 잠수 동물들에게서 우리는 이 감각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빛도 없고 싸늘한 고압의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상어와 돌고래, 고래 같은 동물들은 헤엄치고 소통하고 보기 위해 제3의 감각들을 발달시켜왔다.
가령 상어의 전기수용 감각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포획된 커다란 백상아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상어는 100만 분의 125볼트 정도의 약한 전기장도 감지할 수 있다. 갓 태어난 보닛헤드상어는 10억 분의 1볼트보다 약한 전기장도 감지한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면, 맨해튼의 허드슨 강물에 떨어뜨린 1.5볼트짜리 배터리에서 5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메인주 포틀랜드까지 전선을 연결한다고 상상해보자. 별상어와 보닛헤드상어는 이 전선 주변에 형성된 희미한 전기장을 감지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정확하고 예민한 감각이다. 그런가 하면 돌고래는 머리 안에 내장된 입술 모양의 두 구조(콧구멍의 흔적기관)를 이용해 소리를 낸다. 포닉 립스phonic lips라고 불리는 이 콧구멍을 자유롭게 수축하고 구부려 75헤르츠에서 15만 헤르츠 사이의 광범위한 주파수 대역에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여러 돌고래의 소리 중 많은 부분을 찾아내지 못한 원인은 인간의 귀로는 이 소리들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분석해보니, 돌고래의 휘슬음과 클릭음의 음파는 원시적인 상형문자의 형태와 비슷했다고 한다.
바닷속에 머물렀던 우리 역시 이 초감각적인 능력을 공유한다. 이런 감각과 반사신경들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지만 평소에는 거의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졌을 때는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프리다이버들과 저자 제임스 네스터는 그 능력을 몸으로 직접 보여준다. 그는 고래와 마주했던 경험을 “인생에서 가장 깊고 강력한 경험”으로 회상한다. 어마어마하게 막강하고 지적인 존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별안간 인식되면서 밀려오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순간적인 앎의 감각. 이 책은 이런 감각을 찾아서 한 장 한 장 더 깊어진다. 해수면에서 수심 2만8700피트까지 수심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저자와 그가 만난 심해 잠수 동물들은 물리적으로 될 수 있는 한 가장 깊은 바닷속까지 우리를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