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홀로코스트의 전설이 된 ‘죽음의 행진’과
지금도 수많은 ‘코르차키안’들이 생겨나는, 살아 있는 전설
아이들에 대한 깊은 통찰로 시대를 앞서갔던 야누시 코르차크!
야누시 코르차크의 삶과 죽음을 다룬 가장 깊이 있고 포괄적인 책
야누시 코르차크는 한나 아렌트가 “어두운 시대”로 명명한 제1, 2차 세계대전을 건너며, 아이들을 어른 세상의 불의로부터 지키려 했고 아이들이라는 존재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믿었다. 교육자이자 소아과 의사, 작가, 심리학자, 아동인권 옹호의 선구자로, 1979년 유엔아동권리선언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연민으로 그가 치열하게 사유하고 실천에 옮긴 그 발걸음들이 곧 역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이자 폴란드인으로 살아야 하는 내적 분열을 겪으며 두 민족 간의 화해에 힘을 쏟았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역사는 그의 삶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정치적 이유로 오랫동안 묻힌 존재가 되어야 했다.
저자는 사라진 공간에서, 사라진 사람을 찾아 묻혀 있는 폴란드어 자료 원전을 뒤지고 생존한 코르차키안들을 만나 사라지고 흩어진 조각들을 찾았다.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죽음 혹은 업적만이 아니라 유대인이자 폴란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 정신이상에 대한 불안 같은 그의 복잡한 내면세계까지 담아내 깊은 파장을 남긴다. 그 시대의 공기마저 담아낸 듯 보기 드문 깊이와 넓이를 가진 이 전기를 통해, 이제야 야누시 코르차크를 온전히 만나게 된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울 뿐이다.
목차
소개 글: 베티 진 그리고 야누시 코르차크
들어가며: 야누시 코르차크는 누구였는가
1부 1878~1918
1장 응접실의 아이
2장 혈통
3장 나비의 고백
4장 어느 길로?
5장 재갈 물린 영혼
6장 어린이병원
7장 여름 캠프
8장 결심
9장 어린이 공화국
10장 아이를 사랑하는 법
11장 슬픈 부인
2부 1919~1930
12장 독립
13장 마치우시 왕의 정신
14장 백 명의 아이들
15장 야수를 길들이다
16장 정의 실현을 위해
17장 청어여 영원하라!
18장 마담 스테파
19장 모든 진실을 나팔로 불 수는 없다
20장 가장 행복했던 시절
3부 1930~1939
21장 갈림길
22장 팔레스타인
23장 노(老)의사
24장 모세의 냉엄한 진리
25장 외로움
26장 아이라는 종교
4부 1939~1942
27장 1939년 9월
28장 체포
29장 게토
30장 만인은 평등하다
31장 우리 아이들은 살아야 합니다
32장 마지막 유월절
33장 게토 일기―1942년 5월
34장 기이한 일들
35장 우체국
36장 어제의 무지개
37장 마지막 행진―1942년 8월 6일
에필로그: 트레블링카 그리고 그 후
야누시 코르차크의 아동 권리 선언
사진 자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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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베티 진 리프턴 (지은이), 홍한결 (옮긴이)
출판사리뷰
야누시 코르차크(Janusz Korczak), 그는 누구였는가
1878년인지 1879년인지 연도는 확실치 않고 7월 22일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폴란드인으로서 본명은 헨리크 골트슈미트, 필명인 야누시 코르차크로 널리 알려졌다. 교육자이자 소아과 의사, 작가, 심리학자로서 아이들에 대한 통찰과 혜안으로 시대를 앞서간 어린이 인권 옹호의 선구자다. 1979년 유엔아동권리선언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으며, 유네스코에서는 1978~1979년을 ‘어린이의 해’이자 ‘야누시 코르차크의 해’로 선포해 야누시 코르차크 탄생 100주년과 일치하게 했다. 프로이트가 아직 성인 환자를 통해 아동기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있을 때 코르차크는 이미 아이를 직접 관찰해 아동발달이라는 분야의 탄생을 예고했다. 야누시 코르차크는, 아이는 누구나 도덕의 불꽃을 품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간 본성의 중심에 있는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혁명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아이들이라는 존재를 통해, 교육 방식의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 고통받는 세상”에서, 누구도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는 언제나 가난하고 버림받은 거리의 아이들 편에 있었다.
의사는 열이 나는 아이를 보살펴 고비를 넘기고 병을 낫게 해주었지만, 교육자는 의사의 손을 떠난 아이가 다시 암흑의 세상 속으로, 의사가 따라갈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그곳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가난과 착취, 무법, 범죄라는 병에 아스피린을 처방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게 될까?” 과연 무엇을 처방해야 어린 환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_6장 어린이병원
야누시 코르차크는 젊은 시절에 이미 작가로, 소아과 의사로 탄탄대로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어느 쪽도 “배고프고 추레한 아이들이 없도록 세상을 바꾸려는” 그의 열망에는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고아원 원장의 길을 택하며 본격적으로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1912년, 아이들을 굶기고 때리는 고아원들이 많았던 시절에 그는 의회와 법원을 갖춘 ‘정의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진보적 고아원들을 폴란드 사회에 도입해 버려진 아이들을 보살폈다. 바르샤바의 유대 아동 고아원 ‘고아들의 집(Dom Sierot)’과, 비엘라니의 폴란드 아동 고아원 ‘우리들의 집(Nasz Dom)’에서 스테파니아 빌친스카, 마리나 팔스카 등 든든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어린이 자치를 시험하며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어린이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인간”이며, 따라서 어른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뒷골목에서 거칠게 자란 아이들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도와주고자 했다.
민주주의와 참여를 근간으로 하는 이 ‘어린이 공화국’에서 아이들은 그들만의 규칙과 법률 체계를 가졌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교사나 괴롭히는 친구들을 법정에 세울 수도 있었다. 한 교육자는 어린이 법정을 “아동심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심리 드라마”로 평하기도 했다. 야누시 코르차크는 어린이 법정이야말로 자신의 교육 방식을 지탱하는 근간이라고 생각했으며, 어린이 판사들이 판결의 지침으로 삼을 ‘법전’ 또한 직접 작성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최초로 전국 단위 어린이신문 「작은 평론」을 창간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몇 주 만에 신문 편집실에는 전국에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활과 고민을 담아 쓴 편지 수백 통이 날아들었다.
야누시 코르차크는 고아원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소년법원에서 아이들을 위해 증언하며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려고 했으며, 교육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교사수련단 ‘부르사’를 운영하며 오늘날 ‘도덕교육’으로 불리는 교육 방식을 교사들에게 가르쳤다. 그가 쓴 『아이를 사랑하는 법』과 『아이의 존중받을 권리』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으며, 수많은 아이들이 『마치우시 1세 왕』을 비롯한 그의 책을 읽고 컸다. 『마치우시 1세 왕』은 나라를 개혁하려는 소년 왕의 모험과 시련을 그린 이야기로, 야누시 코르차크의 『에밀』로 평가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나기 전부터 유럽에서 궁핍한 아이들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그의 사상과 교육법을 배우러 고아원에 찾아오곤 했다. 소아과 의사 시절 아이들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약보다는 골트슈미트 선생이 아이들에게 발휘하는 마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았다. 고아원 밤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때면 “고목나무 가지에 새들이 앉듯” 아이들이 코르차크에게 엉겨 붙곤 했다. 아이들은 늘 그를 기다렸다. 덜렁거리는 이를 팔려는 아이도 있었고, 바깥 미장원에 가서 머리 깎는 것을 허락받으려고 코르차크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아이도 있었고, 그냥 업어달라고 하려는 아이도 있었고, 늘 사탕이 들어 있는 그의 주머니 속을 구경하려는 아이도 있었다. “판 독토르(의사 선생님)”로 불리며 늘 아이들을 몰고 다니던 피리 부는 사나이. 아이들과 더 나은 삶으로, 진실과 정의로운 삶으로 가고자 꿈꾸었던 야누시 코르차크.
1930년대 중반에는 ‘노(老)의사’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특유의 위트와 유머, 통찰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어둡고 암울하던 시기 폴란드 청취자들에게 소박한 지혜와 위로, 해학을 전하기도 했다. 1930년대 반유대주의가 극심해지던 혼란의 시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를 고민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맡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바르샤바에 남았고,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게토에 수용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이자 폴란드인으로 살아야 하는 내적 분열을 겪으며 두 민족 간의 화해에 힘을 쏟았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역사는 그의 삶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나치의 학살이 절정에 달했던 1942년 8월 6일 본인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게토 안에서 돌보던 고아들을 이끌고 의연히 죽음의 수용소로 불린 트레블링카행 열차로 향하면서 전설이 되었다.
야누시 코르차크의 삶을 열정과 온정을 담아 복원해내다!
그의 위대한 업적만이 아니라
고달프고 외로웠던 인간적 고뇌까지도 담아내 많은 찬사를 받았던 책
1988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올해의 책
야누시 코르차크 국제협회 문학상
조엘 H. 케이비어 문학상
야누시 코르차크의 삶과 죽음은 폴란드의 거장 안제이 바이다 감독이 1990년에 「KORCZAK」라는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에 상영되었으며, 홀로코스트의 전설이 된 ‘죽음의 행진’은 지금까지도 「야누시 코르차크와 아이들」이라는 연극으로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책은 영화가 개봉되던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야누시 코르차크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미국에서 저자는 그와 그의 사상을 꼭 알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저작권자를 찾다가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책을 펴낼 수 있게 되었다. 야누시 코르차크가 보여준 아이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교육법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아이들’이란 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원고지 2500장에 달하는 책의 번역을 끝마쳤을 때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만나는 살아 있는 교육학책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놀라운 한 인간의 삶이 펼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야누시 코르차크의 위대한 업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자 폴란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내적 분열, 책임감, 그리고 정신병으로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신이상에 대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던 코르차크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엿보려는 노력을 더해 깊은 파장을 남긴다. 한 인간의 낮과 밤을 아울렀다고 해도 될 만큼, 인간적인 고뇌로 가득했던 한 사람의 삶을 잘 담아냈다.
그래서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택했음에도 단순하지 않고 풍부한 이야기가 되었다. 야누시 코르차크의 생애와 진면목을 가장 깊이 있고 포괄적으로 담아낸 책이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폴란드 지식인층의 문화와 분위기, 유대인 사회를 비롯해 폴란드의 시대상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시적 안목, 그러면서도 책이나 편지 같은 자료는 물론 8년여에 걸쳐 생존한 코르차키안들을 인터뷰하며 얻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잘 조화시켰다. 야누시 코르차크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폴란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분할과 독립, 세 차례 전쟁 등 야만적이고 비극적인 역사와 그 속에서 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가깝게 다가온다. 또한 동화(同化) 유대인으로서 코르차크의 선대부터 두 민족 간의 화해에 힘을 쏟았으나 결국 하나가 될 수는 없었던 유대인과 폴란드인의 복잡한 관계, 1930년대 반유대주의 운동이 심해지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거나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거나 하는 혼란의 시기에, 정치적 이유로 종교적 이유로 양쪽에서 부침을 겪으며 혼자만의 길을 가야 했던 그의 외로움과 고달픔도 잘 담아냈다.
500개가 넘는 주석은, 저자가 얼마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는지, 또 많은 평전들이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선택하는 과장된 글쓰기를 피하려고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고아들 일부를 게토 밖으로 빼낼 기회를 거절한 일 등 누군가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용들 또한 굳이 숨기지 않았다. 야누시 코르차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섣부르게 판단하려 하지 않으면서, 다만 자료와 인터뷰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해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게끔 했다.
“아이에 관한 진실은 책 속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다”
아이들에 대한 선구적 통찰과 혜안이 가득한 ‘살아 있는 교육학책’
코르차크는 아이를 다루는 방법 못지않게 강의 방식도 독특한 것으로 유명했다. 한 강좌에서는 첫 강의 제목이 “아이의 심장”이었는데, 어린이병원의 엑스레이실에 수강생들을 모이게 했다. 놀랍게도 코르차크는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아이는 코르차크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코르차크는 한마디 말없이, 아이의 웃옷을 벗겨 검사장치 뒤에 세우고는 실내조명을 껐다. 스크린에 뜬 영상 속에 아이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코르차크가 말했다. “지금 이 영상을 앞으로 절대 잊지 마세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기 전에, 어떤 벌이든 내리기 전에, 겁먹은 아이의 심장을 마음속에 떠올리세요.” 그는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출입문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_17장 청어여 영원하라!
야누시 코르차크의 교육학은 강단 교육학처럼 개념이나 설명으로 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의 삶,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에 관한 진실은 책 속에 있지 않고 삶 속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코르차크에게도 처음은 있었다. 그는 열여덟 살에 아버지가 죽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가정교사 일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아이들을 직접 상대하게 되고 교육 관련 글을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한다. 풋내기 선생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아이들을 점점 이해하게 되고, 그의 교육철학과 방법이 다듬어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에 작가로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소아과 의사로서 아이들을 진찰하고 관찰하면서, 여름 캠프에서 초보 지도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고아원을 운영하게 되면서 교육철학과 방법을 보완하고 발전시켜나간다.
아이는 미래의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사람이라는 것, 아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그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읽고 쓰는 기술적인 교육이 아닌 삶의 태도와 자세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 아이들의 감정과 기분을 잘 관찰하고 조화롭게 만들어 영혼을 다듬어주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보는 등 그의 교육철학은 지금 보아도 시대를 앞선다. 야누시 코르차크의 교육철학과 함께 아이들과의 관계, 교육법들이 구체적인 일화 속에 장면으로 그려지면서 그의 교육학책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
또한 그는 늘 주관적인 판단보다는 객관성에 바탕을 두려 했고, 교육에서도 의학을 결합해 구체적인 증상에 근거를 둔 진단 체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의사가 환자의 열, 기침, 메스꺼움을 대하듯 교사도 학생의 웃음, 눈물, 빨개진 얼굴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3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를 재 아동발달을 연구했으며, 밤에는 아이들의 수면 패턴을 관찰했다. ‘부르사’의 교사수련생들에게도 아이들과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방향에서는 늘 모호한 지침을 주면서도, “자주” “가끔” “많이” 같은 모호한 말은 쓰지 못하게 했다. 이런 식이었다. “그 애가 저 애를 정확히 몇 번 때렸나?” “그 애가 얼마 동안 울었나?” 교사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이며, 관찰을 통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모든 철학과 실천의 밑바탕에서,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존중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들을 믿었다. 코르차크는 교육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누구나 아이에게 이르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교사나 부모, 아이들 곁에 있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삶이라는 큰 방향 속에서 아이들을, 자신의 직업과 위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야누시 코르차크는 말한다. 아이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당신도 아이다. 당신 스스로 알아가고 키우고 깨우쳐줘야 할 아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불가해한 질문들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의 대답, 그것이 곧 그의 삶
야누시 코르차크는 ‘아이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교육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삶을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지, 그 사유와 실천의 치열함이 뜨거운 책이기도 하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불가해한 질문들에 대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의 대답, 그것이 곧 그의 삶이었다. 어떤 일에서든 늘 “왜?”라고 물었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치열하게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에 옮겼다. 그의 평생이 그러했지만, 게토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힐 것을 구하러 “구걸”하러 다녀야 했던 인간적 한계와 환멸,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만큼은 지옥 한가운데 오아시스를 만들어 인간의 선(善)을 믿게 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한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수 있는지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대립과 분열, 전쟁과 폭력, 이념과 종교…… 인간의 가치가 무너진 “슬픔 덩어리”인 세상에서 비난하거나 고개 돌려버리기는 쉽다. 그러나 그 미친 세상에서도 그는 정신과 도덕적 신념을 붙들고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끝내 걸었고,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아름다운 길”로 가고자 했다. 아이들을 살리고, 인간을 살리는 쪽으로 가고자 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같은 인간에 대한 책임과 연민을 느낄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혹독한 현실에서도 끝내는 진실과 정의가 이기리라는 믿음. 그리하여 더 나은 삶, 진실과 정의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는 것. 세상에는 불의가 가득하지만 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정의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지금 그의 삶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듯이 말이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 몇 마디뿐이구나. 우리는 네게 남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줄 수 없단다. 사랑은 용서 없이는 불가능하고, 용서하는 법은 누구나 스스로 깨우쳐야 하니까.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이란다.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진실과 정의로운 삶에 대한 갈망. 그 갈망을 품고 살다 보면 하느님과 조국과 사랑을 찾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잘 가렴. 부디 잊지 말고. _16장 정의 실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