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연, 인간, 그리고 기후 변화
기후 변화는 2000년대 들어 가장 첨예한 환경 문제로 대두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생존 문제와 직결될 만큼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후 변화라 함은 지구 온난화를 의미하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기온 상승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 활동 가운데 무엇이 기온 상승을 야기했으며 그것이 가져온 문제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그것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고, 수많은 책도 출간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책이 또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훨씬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문제에서 접근한다. 흔히 지구 온난화는 최근 2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다. 즉 산업혁명 이후에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배출이 급격하게 늘어 기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인류가 기후를 통제하기 이전에는 자연이 지구 기후를 제어했으며, 그 이후 인간이 지구 기후 통제에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해 산업혁명 이후 비로소 인간이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음을 시대순으로 잘 서술하고 있다.
목차
표와 그림 목록
머리말
1부 지구 기후를 통제하는 요인
01 기후사와 인류사
2부 자연이 통제하다
02 수백만 년에 걸친 더딘 진행
03 지구 궤도와 기후의 연관성
04 지구 궤도 변화가 빙하기 주기를 좌우하다
05 지구 궤도 변화가 몬순 주기를 좌우하다
06 변화의 시작
3부 인간이 통제를 시작하다
07 초기 농업과 문명
08 메탄을 장악하다
09 이산화탄소를 통제하다
10 인간은 빙하작용을 지연시켰는가
11 도전과 응전
4부 질병이 기후 변화에 개입하다
12 이산화탄소 농도가 ‘널을 뛴’ 까닭
13 질병·전쟁·기근·죽음 중 어떤 것?
14 ‘세계적 유행병’, 이산화탄소, 기후
5부 인간이 통제권을 쥐다
15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거북과 토끼
16 미래의 온난화 규모, 커질까 작아질까
17 과거에서 먼 미래까지
맺음말
18 ‘전 지구적 기후 변화’, 과학과 정치
19 지구의 선물 소비하기
후기
참고문헌
그림 출처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저자
윌리엄 F. 러디먼
출판사리뷰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오늘날처럼 불꽃 튀는 정치적 설전이나 방송 토론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가 몇 년 뒤 흐지부지 잊히는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주력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이다”라고 밝히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책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류와 인류의 조상들이 지구상에서 살았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기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수적으로도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식량과 물을 찾아 쉴 새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닌 우리의 석기시대 선조들은 수백만 년 동안 지구 풍경에 영구적인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기나긴 지질시대에 걸쳐 기후는 주로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궤도의 미세한 변화라는 자연적인 이유 탓에 달라졌다. 자연이 기후를 통제했다.
그러나 약 1만 2000년 전 농업이 도입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지역 저 지역 떠돌아다니던 인류는 마침내 처음으로 작물을 기르는 논밭 옆에서 정착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좀더 믿을 만한 작물과 가축을 섭취함으로써 영양상태가 좋아져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과거보다 인구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간 정착지가 늘어났고 인류는 육지의 점점 더 많은 지역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겼다.
만약 농업이 시작된 이후의 지표면을 저속촬영 필름으로 보게 된다면, 지난 수천 년 동안 유라시아 남부 전역에서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달을 것이다. 중국, 인도, 남부 유럽,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에서 짙은 초록색이 밝은 초록색이나 갈색이 감도는 초록색으로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최초의 마을이나 도시가 생겨난 지역으로, 농경지를 확보하거나 조리와 난방에 쓸 땔감을 얻고자 광활한 진초록색 삼림을 시시각각 잘라낸 결과 밝은 초록색 목초지나 갈색이 감도는 초록색 경작지가 늘어난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인류가 100∼200년 전 처음으로 기후 변화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산업혁명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한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그와는 사뭇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자연이 통제하던 기후가 인간이 통제하는 기후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무려 수천 년 전의 일이었으며, 그것은 농업과 관련한, 얼핏 보기에는 ‘목가적인’ 변혁의 결과로 생겨났다는 내용이다. 우리 인류는 도시를 건설하기 전에,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에, 그리고 주요 종교를 확립하기 전에 일찌감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진작부터 농사를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연이 기후를 통제했다
방대한 시기에 걸쳐 기후 변화는 철저히 자연의 통제 하에 있었다. 지구는 46억 년 전에 생성되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진행되고 있는 기후사 연구의 성과를 지구과학에서 이루어진 네 번째 혁명(세 가지 혁명은 1700년대 제임스 허턴의 지구는 서서히 변화해온 행성이라고 주장한 설, 다윈의 자연선택설, 마지막으로 판구조론을 의미한다)으로 꼽기도 한다. 이 혁명의 최대 성공담은 상대적으로 작은 지구 궤도 변화와 상대적으로 큰 지구 기후 변화의 인과관계를 밝힌 대목이다. 이처럼 중대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더없이 상이한 분야인 지질학과 천문학이 손잡은 결과였다. 이 새로운 지식을 이루는 중요한 측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북극 근방 고위도 지역의 기후 변화를 좌우하는 빙하기 주기의 원인이요, 다른 하나는 열대지방에 만연한 열대몬순 변동의 원인이다.
그런데 지구 궤도의 작은 변화가 기후에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150여 년 전의 일이었다. 1842년 천문학자 조제프 에드헤마르는 지구 궤도의 어떤 측면인가가 수만 년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지구 궤도의 변화가 지구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에너지 양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은 다시 빙상의 등장과 퇴각을 비롯해 기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3장. 특히 지구의 타원율과 이심률, 세차운동)
물론 인류의 출현이 늦었으므로 기후에 자연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나 15만∼10만 년 전 우리 인류종이 출현하자, 변화의 속도가 적어도 거의 감지할 수 없었던 이전 시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5만 년 전 무렵, 우리는 인류가 창의적 잠재력을 지녔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를 보게 된다. 그래서 초기인류 ‘문화’의 기원이 오늘날의 문화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불을 발견하고, 비로소 정착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즉 1만 2000년 전, 인간의 독창성은 유라시아에서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그 전환점이란 다름 아닌 농업의 발견이었다.
지구 궤도의 추동이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음에도 그것의 영향이 극히 미미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온실가스 농도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점차 늘어가는 인간 활동이 거기에 대안적인 설명이 되어준다.
인간이 통제를 시작하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과거 온실가스의 주류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를 추적한다. 특히 과거 네 차례의 간빙기와, 특히 40만 년 전의 간빙기와 현재의 간빙기를 비교한다. 40만 년 전의 간빙기 동안, 수많은 지역에서 상당 정도 자연적인 냉각화가 진행되었으며, 북반구에서는 새로운 빙하작용이 시작되었다. 반면 지난 몇 천 년 동안에는, 지구상에서 냉각화가 진행된 지역이 거의 없었고, 북반구 대륙에 새로운 얼음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기 동안 기후 반응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이루어졌을 자연적인 냉각화를 저지했고, 그 결과 빙하작용이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뿐이다. 빙하작용은 오늘날 이미 진행되었어야 마땅한데, 그것을 가로막은 요인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지구 기후의 역사에서 담당한 역할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8000년 전 이전)
8000년 전 이전까지는 자연이 통제력을 쥐고 있었다. 우리의 머나먼 선행 인류 선조들이 수백만 년 동안 지상에 존재했음에도 자연만이 기후 변화를 주도했다. 완전한 인류 선조들이 15만 년 전 이후 출현했을 때에도, 그들이 기후의 풍경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미미했다. 인간은 ‘불쏘시개’를 이용해 초지와 삼림지역을 불태움으로써 사냥감을 내몰거나 트인 지역으로 유인했고, 산딸기류를 비롯한 천연식량이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이 초기 문화의 일부가 다습한 열대지역의 토양에 도입된 결과, 그곳에서는 열매와 견과를 맺는 나무들이 자라났다.
그러나 인간의 수와 그들이 풍경에 남긴 발자국은 작았고 대체로 지역 규모에 그쳤다. 불 사용의 결과는 번개에 의한 크고 작은 자연적인 화재의 효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인간은 한 지역을 불 지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이러한 활동은 자연적인 사건과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 불을 지르는 인간의 수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화재의 수준을 넘어설 만큼 많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에 더 가까운, 1만 1000년 전 이전의 수천 년 동안, 지구 기후는 자연적인 원인에 반응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북반구에서 높은 여름 태양 복사에너지는 북아메리카의 거대한 빙상,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와 유라시아 극북 지역의 그보다 작은 빙상을 녹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준 강한 여름 태양이 중요한 두 온실가스―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를 높여준 데 도움을 받은 결과였다. 태양과 두 온실가스는 함께 손잡고 지난 1만 년 동안 북반구의 거대 빙상을 녹였다. 그러나 이것은 북반구에서 빙하기 주기인 수백만 년 동안 진행되었던 것과 동일한 ‘자연적인’ 과정이었다. 자연이 여전히 기후를 전면적
으로 틀어쥐고 있었다.
2단계(8000년 전에서 200년 전까지)
약 8000년 전, 북아메리카에서 거대 빙상의 마지막 잔해가 녹아버렸을 때, 인간은 유럽 남부와 중국 북부에서 농사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숲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그 후 수천 년 동안 산림벌채는 서서히 유라시아 남부의 다른 부분들까지 퍼져나갔다. 수목의 연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에는 서서히, 그러나 점차 빠르게 대기중에 이산화탄소를 더해주었다. 이와 같은 탄소 배출은 과거 간빙기들 초기에 일어난 자연적인 이산화탄소 감소 추세를 역전시켰다. 인간은 농가를 조성하기 위해 숲을 파괴함으로써 지구의 온실가스를 통제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식으로 지구 기후에 작게, 그러나 점점 더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또한 5000년 전 동남아시아의 저지대에서 관개를 시작했다. 논농사를 지으려고 물을 댄 저지대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대기에 더해주었다. 그에 따라 자연적인 메탄 수치 감소 추세가 역전되었고, 대기중의 메탄 추세는 떨어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증가하기 시작했다. 메탄 역시 인간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 결과였다.
숲의 파괴와 논농사를 위한 관개는 청동기시대(약 6000년 전에 시작)와 철기시대(약 3000년 전에 시작) 내내 꾸준히 늘어났다. 사육된 말과 소가 금속 쟁기를 끌게 되자 농부들은 더 많은 땅을 개간하고 경작할 수 있었다. 산업시대가 열리기 한참 전, 유라시아 남쪽의 경작지 대부분은 숲을 잘라낸 땅이었으며, 아시아 저지대 삼각주의 대다수 지역에서 쌀농사가 이루어졌다.
산업시대가 시작될 무렵,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와 메탄은 과거에 볼 수 있었던 자연적인 변화폭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만큼을 대기에 더해주었다. 대기중의 온실가스 농도는 자연적인 변화폭 내에 머물러 있었지만, 수치가 그 범위의 최고점에 다가가고 있었다. 인간이 낳은 온실가스 증가분은 고위도 지방에서 진행 중인 자연적인 냉각화의 상당 부분을 가려주는 온난화 효과를 발휘했다. 온난화 효과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캐나다 북동부에서 빙상이 커지지 못하도록 막아준 것 같다. 인간은 아직 기후(지구 온도)에 대한 장악력을 완전히 틀어쥐지는 못했지만, 이때쯤 거기에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 거의 자연과 어깨를 겨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3단계(200년 전부터 향후 200∼300년)
1700년대 말과 1800년대 중반에 시작된 산업시대는 인간이 기후에 미치는 단계들 가운데 세 번째 단계를 재촉했다. 삼림 파괴는 속도를 더해갔다. 제조업과 광산업에 필요한 연료를 공급하고, 열대지방에서 급속하게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새로운 농경지를 확보해야 했던 탓이다. 1800년대 말부터 사용이 급증한 화석연료(처음에는 석탄, 나중에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급기야 인간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원천으로서 삼림 파괴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메탄 배출량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부분적으로는 관개를 하는 지역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메탄을 방출하는 쓰레기 매립지, 천연가스 배출, 그 외 인간 활동들이 늘어난 결과였다.
1800년대 이후 대기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00년대 말, 두 온실가스의 농도는 지난 수십만 년 동안의 얼음 코어에서는 볼 수 없었으며, 수백만 년 전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여겨지는 수치에 다다랐다. 2000년대 초, 이산화탄소 농도는 과거의 자연적인 간빙기들에서 전형적이던 수준보다 30퍼센트 정도 높았으며, 매년 0.5퍼센트씩 늘고 있다. 메탄 농도 역시 과거 간빙기들의 2.5배에 이르렀고, 매년 2퍼센트씩 증가하고 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해마다 새롭게 추가됨에 따라 온실가스 농도는 전대미문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세계 기후는 지난 125년 동안 0.6∼0.7°C 정도 따뜻해졌다. 그 기간은 지구국(ground station)이 충분해서 지구 온도에 관해 꽤나 타당한 추정치를 얻을 수 있는 시기였다. 온실가스 수준이 자연적인 추세를 훌쩍 넘어서는 정도로까지 증가했음에도, 2000년대 초 지구 기온은 아직껏 지난 수십만 년간 겪은 과거 간빙기들의 수치를 넘어서지 않고 있다.
이처럼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앞에서 다룬 여러 요소들 때문이다.
1. 지구 궤도가 새로운 빙하작용이 일어나기 좋은 쪽으로 변화함에 따라 지난 수천 년 동안 북반구의 태양 복사에너지 양이 자연적인 최저점께로 낮아졌다.(10장) 결국 인간이 야기한 전례 없는 온실가스 증가의 상당 부분이 진작 일어나고도 남았을 빙하작용을 상쇄하는 데 쓰였다.
2. 반응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기후 시스템이 (결국에 가서 현재의 온실가스로 인해 초래되리라 예상되는) 온난화를 상당 정도 지연시켰다.(15장) 지구는 아마 간빙기와 빙하기를 반복하던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접어들 것이다. 물론 그때쯤이면 대기중의 온실가스 수준은 훨씬 더 증가할 테고, 지구 기온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3.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황산염 에어로졸이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초래되었을) 온난화를 일부 상쇄해주었다.(15장) 온실가스 농도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증가한다면, 지구 온도는 가까운 미래에(10∼20년 내에) 자연적인 간빙기·빙하기 변동 폭을 넘어서는 정도로까지 상승할 것이다. 이어지는 수십 년 동안 온실가스 농도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유례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기후 시스템이 거기에 반응함에 따라, 지구 온도도 그 추세를 따를 것이다. 열대지방의 삼림 파괴도 이산화탄소 배출에 적잖은 역할을 하겠으나, 더욱 결정적인 요소는 남은 석유, 천연가스, 그리고 (특히) 석탄의 연소일 것이다. 지금 1세기 후의 온실가스 농도와 지구 기온을 예측한다는 것은 무리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따르면 그 추정치가 크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높은 이산화탄소 수치를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방법은 탄소가 굴뚝이나 배기관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붙잡아두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대규모로 경제적 실효를 거둘 수 있는 기술은 아직껏 개발되지 않고 있다.
4단계: 지금으로부터 200∼300년 뒤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 뒤, 즉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부분 바닥나고도 한참이 지났을 때이자 이용 가능한 석탄의 공급 또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 인간이 화석연료를 소비함으로써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속도는 줄어들 테고, 결국 바다가 인위적인 탄소 초과분을 흡수하는 속도보다 떨어질 것이다. 이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인간과 기후의 관계에서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즉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떨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산업시대에 배출된 여벌의 이산화탄소가 상당 정도 제거된다.
이처럼 길게 보면, 바다가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그 어떤 실험실에서 시도되는 것보다 더한 화학실험을 거친다. 이산화탄소 초과분은 오늘날에 비해 바다를 약간 더 산성으로 만들어준다. 이러한 산성화는 해저의 부드러운 백악질 퇴적물을 일부 용해해준다. 백악질 ‘연니(軟泥)’는 얕은 바닷물에서 살다가 죽은 뒤 해저에 내려앉은 플랑크톤의 탄산칼슘(CaCO3) 껍데기로 만들어진다. 4000미터 이하의 깊은 바닷물은 부식성을 띠며, 위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껍데기를 대부분 용해한다. 깊은 바다 해분에는 대륙에서 바다로 불어온 갈색(탄산칼슘이 부족한) 부스러기 잔해가 쌓여 있는 반면, 백악질(탄산칼슘이 풍부한)의 퇴적물은 마치 산꼭대기에 쌓인 눈처럼 높은 고도상의 지형 위에만 쌓인다. 인간이 만들어낸 초과분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을 좀더 부식성을 띠게끔 만들어준 결과, 바닷물이 높은 해저 지형에 쌓인 탄산칼슘 연니 퇴적물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바다의 탄산칼슘 ‘설선(雪線)’은 얕은 바다 쪽으로 퇴각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는 거대한 화학실험―즉 해저의 탄산칼슘 용해―을 통해 서서히 소비된다.
한편 바다가 이산화탄소 초과분을 흡수해가면 지구 온도는 점차 자연적인 수준에 가깝게 냉각한다. 만약 온실가스 농도가 자연적인 수준으로까지 떨어진다면, 아마 지구는 충분히 차가워져서 캐나다 북동부에 빙상이 성장할 것이다. 말하자면 진작에 시작되었어야 마땅한 빙하작용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거나, 최소한 수천 년 뒤에나 일어나기 십상이다.
전(前)산업시대와 산업시대에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일부(약 15퍼센트)는 수천 년 동안 대기에 남아 있으면서, 지구 기온을 자연적인 수준보다 더 따뜻하게 유지해줄 것이다. 더욱이 인간이 논농사를 위해 관개를 계속하고 메탄 방출의 주원천인 거대 매립지에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한, 메탄 농도 역시 계속 높은 수치에 머문다. 이러한 인간 활동은 매년 다량의 메탄을 만들어내고, 대기중 농도를 자연적인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미 진행되었어야 하는 빙하작용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마저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 1만 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 동안 이산화탄소의 증가세가 둔화하는 현상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세계 인구도 늘어나고 기술도 향상된 만큼 이 현상은 정말 이상해 보인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아보았으나 대폭적인 이산화탄소의 하락(일반적인 추세보다 10ppm이나 뚝 떨어질 때도 있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물론 간헐적인 화산분화와 태양 활동의 미세한 변화가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이산화탄소의 대폭적인 하락에 기여했다는 데는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해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역시 인간 활동에서 찾아야 했다. 그것은 인구가 대폭 감소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바로 지난 2000년 동안 네댓 차례 창궐한 주요 역병이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그것이 농사를 짓기 위해 숲을 파괴하던 추세를 역전시켰으며, 1300∼1900년의 소빙기를 포함한 단기적인 기온 저하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