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고학과 언어학은 물론 신화학·인구학·사회학·동물학·식물학·지질학 등의 방법을 망라해
황량한 초원의 선사 시대를 복원해내고, 이를 다시 역사 시대와 연결한 역작!
우리가 쓰는 말에도 우리가 사는 방식과 문화가 투영되어 있을까? 이 책 《말, 바퀴, 언어》의 저자 데이비드 W. 앤서니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책 서두에서 “고고학은 우리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간성과 중요성을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기록으로 남지 않은 과거 사람들의 일상의 짜임새를 탐구하는 유일한 학문이다. 사실상 대다수 사람은 기록으로 남지 않은 삶을 살았다. 고고학자들은 기록 이전 시대의 말 없는 유물로부터 놀랄 만큼 친밀한 세부 정보를 얻어내지만, 자신의 의견과 대화 및 이름을 문자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선사 시대 사람들이 실제 살아가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가치와 신념을 복원할 방법이 있을까? 그들은 어떤 다른 매개체에 단서를 남겼을까?” 하고. 곧이어 그는 “많은 언어학자들은 그렇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바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다. 우리의 언어는 수많은 화석, 즉 놀랄 만큼 오래된 화자들이 남긴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을 먼저 소개하는 것은 광활한 유라시아 선사 시대를 다루는 이 책에서 고고학자인 저자가 그 방법론으로 고고학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고학만으로는 부족한 상당한 부분을 언어학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동안 고고학자와 언어학자의 불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그들이 이제 왜 친숙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히면서 “오늘날 전 그리스, 근동, 유럽, 이란, 인도 아대륙의 거의 대부분 지역이 하나의 모어에서 파생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로 이 책을 시작한다. 즉 저자는 언제 인도·유럽 공통조어가 생겨나서 어떻게 확산하고 특정한 지역에 정착해 진화했는지를 밝히고자 언어학과 고고학이라는 두 바퀴가 달린 수레를 타고 유라시아 전역을 종횡무진 달린다. 그리고 저자가 긴 책을 쓰고 나서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인도·유럽 공통조어는 처음에 흑해·카스피 해 초원 지역의 특정 부족이 사용하던 언어였다. 이 언어는 강고한 물질문화적 경계 때문에 동이나 서로 확장하지 못하고 초원 지대에서 자체로 진화하다가, 물질문화적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기에 사방으로 급격히 확산한다. 이 언어의 확산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는 얌나야 (문화)층의 확산 시기, 즉 서기전 3300년 무렵이다. 이 얌나야 (문화)층이 폭발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물질문화적 요인은 두 바퀴 혹은 네 바퀴가 달린 수레와, 사람을 등에 태우거나 수레를 끌고 달리는 초원의 엔진인 말 덕분이었다. 한편 인도·유럽어 계통 언어가 여타 현지 언어들을 밀어낸 제도적 요인으로는 후견인-피후견인 제도를 제시한다. 인도·유럽 공통조어를 쓰는 후견인의 우산 아래 들어가면 피후견인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우산 아래 들어간 피후견인은 점차 사회적 위계제의 꼭대기를 차지한 인도·유럽어 계통 언어 사용자들을 모방해 그 언어를 받아들인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 언어가 확산하고 지역적으로 고착해 각자 자체적으로 진화하면서 오늘날의 인도·유럽어 언어 지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목차
감사의 글
1부 언어와 고고학
01 모어(母語)의 약속과 정치
02 어떻게 죽은 언어를 복원할 것인가
03 언어와 시간 1: 인도·유럽 공통조어 최후의 사용자
04 언어와 시간 2: 양모, 바퀴 그리고 인도·유럽 공통조어
05 언어와 장소: 인도·유럽 공통조어 고향의 위치
06 언어의 고고학
2부 유라시아 초원의 개방
07 어떻게 죽은 문화를 복원할 것인가
08 최초의 농부와 목부: 흑해-카스피 해 지역의 신석기
09 소, 구리 그리고 족장
10 말의 가축화와 기마의 기원: 치아 이야기
11 고 유럽의 종말과 초원의 부상
12 초원 경계에 뿌려진 변화의 씨앗: 마이코프 족장과 트리폴리예 읍락
13 네 바퀴 수레를 타는 초원 사람들: 인도·유럽 공통조어 사용자
14 서부의 인도·유럽어군
15 전차를 탄 북부 초원의 전사
16 유라시아 초원의 개방
17 말(word)과 행동
부록: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에 대한 필자의 주
주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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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데이비드 W. 앤서니
출판사리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자는 이 책을 언어학과 고고학에 근거해 서술한다. 1부(1∼6장)는 언어학에 기대어, 2부(7∼17장)는 고고학에 기초하여 넓고 넓은 유라시아를 탐구한다.
오늘날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30억 명에 달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사용하는 말들이 정말로 약 5000년 전 사람들이 쓰던 어휘의 화석일까? 역사언어학은 우리에게 정태적 분류뿐만 아니라 어떤 기록 근거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언어들의 최소 일부라도 재구성하는 능력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언어학자들은 지난 200여 년에 걸쳐 ‘인도·유럽공통조어(共通祖語)’라 일컫는 모어의 어휘를 연구해 마침내 1500개가 넘는 인도·유럽어 어근의 음을 복원했다. 복원한 단어들은 신뢰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이것들은 살아남은 언어적 근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한편 고고학 발굴을 통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히타이트·미케네 그리스어·고 독일어로 된 비문들을 발견했고, 여기에 적힌 단어들은 비교언어학자들이 이미 복원한 소리들을 정확히 펼쳐 보였다. 언어학자들이 고대의 비문에서 나중에 발견한 음과 글자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복원 작업이 완전히 이론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음을 확인해준다. 우리가 복원된 인도·유럽어를 문자 그대로 ‘실제’의 것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더라도 이는 최소한 선사 시대 실제 언어의 근사치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고고학자들에게 엄청난 전망을 제시한다. 고고학자들에게 복원된 이 단어 1500개를 담은 어휘 사전은 인도·유럽 공통조어를 쓰던 사람들이 처한, 그들의 사회적 삶과 신앙을 들여다보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합리적으로 믿을 만한 어휘의 복원 결과에 의하면 인도·유럽 공통조어에는 수달, 비버, 늑대, 살쾡이, 엘크, 붉은사슴, 말, 쥐, 토끼, 고슴도치 등의 야생 동물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거위·두루미·오리·독수리 등의 조류, 벌과 꿀, 소(또한 암소, 황소, 수송아지)·양(또한 양모와 직조)·돼지(또한 수퇘지, 암퇘지, 새끼 돼지)·개 등의 가축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말 역시 인도·유럽 공통조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려져 있었다. 그리하여 인도·유럽 공통조어를 사용하던 세계의 환경, 경제, 생태를 복원하기 위해 고고학적 유물에 의해 인증되고 그것들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공통조어 사전에는 훨씬 많은 것들이 실려 있다. 즉 인도·유럽 공통조어를 쓰던 사람은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단지 아버지의 혈통(부계 자손)을 통해서만 상속하고, 아마도 결혼 후에는 남편의 가족을 따라 살고(시집살이), 후견인으로 행세하며 피후견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역할을 하는 족장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아마도 정식으로 제도화한 군대를 보유하고, 소와 말을 잡아 희생 의식을 거행하고, 수레를 몰고, 남성 하느님을 인정하고, 아마도 의례적인 이유에서 곰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회피하고, 신성함(sacred)의 두 가지 의미(‘성스러움에 물든 것’과 ‘금지된 것’이라는 의미)를 인정했다는 점 등의 사실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관행 및 신념 다수는 고고학을 통해서는 전혀 복원할 수 없다. 공통조어 사전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증거만으로는 복원할 수 없는 일상적 의식과 관습의 복원이라는 희망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인도·유럽어 문제의 해결은 고고학자는 물론 우리 선조를 좀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데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중요하다.
이렇게 언어학자들에게 의해 복원된 약 1500개의 단어는 어떻게 확산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그것을 확인해주는 것이 고고학이다. 그동안 수많은 발굴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은 고고학의 지평을 엄청나게 넓혀주었다. 특히 문화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표지 중 하나인 음식의 발굴은 이러한 목적에 가장 잘 부합했다. 오래전 이 모든 현대 생활의 편의가 나타나기 이전에는 음식을 얻는 방식이 사람들이 매일 일상의 시간 대부분을 소비하는 방식을 결정했다. 다시 말해 아침에 언제 일어나는지, 어디로 가서 일을 하는지, 거기서는 어떤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지, 독립적인 가족 단위의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아니면 마을 단위의 훨씬 큰 공동 노동 자원이 필요한지, 얼마 동안 집을 떠나 있는지, 어떤 종류의 생태적 자원이 필요한지, 어떤 조리법과 음식 준비 기술을 익혀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 신에게 어떤 음식을 바치는지 등의 문제가 음식을 얻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었다. 작물을 키우고 가축을 돌보는 것이 중심인 세계에서, 생산성 높은 땅과 대규모 소 떼를 가진 씨족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부와 그에 따른 정치적 힘은 경작지 및 초지와 동일시되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고고학자들은 음식을 얻는 방식을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고대의 쓰레기장 덕분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탄화된 씨앗과 동물의 뼈를 통해 옛날 사람들이 어떤 식물성 음식을 섭취했으며 동물의 뼈를 통해 어떤 종류의 동물을 먹고 얼마나 많은 양을 소비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복원된 어휘로 알 수 있었던 동물들의 확산도 비교해볼 수 있었다.
이외에 고고학자들은 고고학적 문화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토기 파편·무덤 양식·건축·기타 물질적인 유물에 기초해 정의된다. 고고학적 문화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유물 유형으로서 특정 지역에서 일정한 시기 동안 동시에 나타난다. 실제로 토기 유형은 때때로 고고학적 문화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사용되고, 그 외에 고고학적 문화를 흥미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떤 지역을 통틀어 수많은 비슷한 관습, 인공물, 주거 유형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토기 유형은 물론 무덤 유형, 가옥 유형, 거주지 유형(전형적인 거주지에서 가옥의 배치), 도구 유형 그리고 의례적인 상징(작은 조각상, 신전, 신격)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고고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기술적 양식, 즉 물건을 만드는 방식인데 언어학의 핵심 어휘와 비슷하게 생산 기술은 특정 문화에 더 구속적이며 변화에 대한 저항성이 크다. 예를 들면 점토에 첨가하는 재료와 가열 방식이 일반적으로 만든 제품의 장식 양식보다 그 도공의 문화적 기원을 보여주는 지표로 생각된다.
이 책의 2부에 해당하는 고고학적 접근 부분(7∼17장)은 인도·유럽 공통조어가 대략 서기전 4500∼서기전 2500년 흑해-카스피 해 초원 북쪽에서 쓰였다는 가정 아래 논의를 진행한다. 그러나 인도·유럽 공통조어를 사용한 사회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더 이른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도·유럽 공통조어 사용자들은 소를 키우는 이들이었는데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최초 개척 농민의 도착과 이런 문화적 변경의 형성에 대해서는 8장에서 설명한다. 9장에서는 최초의 소-양 목축 경제가 서기전 5200∼서기전 5000년 무렵 흑해-카스피 해 초원 전반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사건으로 초기 인도·유럽 공통조어 문화를 규정하는 유형의 권력 정치와 의례 기반이 형성되었다. 소 목축은 음식을 얻는 새로운 방식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 분화를 불러왔다. 곧이어 소와 양(그리고 말)들은 장례식에서 희생 제물로 사용되었다. 10장에서는 논쟁적인 기마의 발명에 대해, 11장의 주제는 초원 목축인들에 의한 유럽 침입이다. 12장은 서기전 3700∼서기전 3100년 무렵의 메소포타미아 도시 문명과 초원 사회 사이의 상호 영향을 다룬다. 북캅카스 산맥에 살며 초원을 내려다보던 족장들은 남쪽 문명과의 교역을 통해 상당히 부유해졌다. 최초의 바퀴 달린 수레(네 바퀴 수레)는 캅카스 산맥을 거쳐 초원으로 굴러 들어간 것 같다. 13장에서는 선 인도·유럽 공통조어를 보이는 이들, 즉 얌나야층의 목축민을 소개한다. 그들은 소가 끄는 네 바퀴 수레 덕분에 유라시아 초원에서 최초로 1년 내내 정기적으로 계절 이동을 하는 목축 경제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천막, 물과 음식을 하곡에서 멀리 떨어진 깊숙한 초원으로 끌고 갈 수 있었으며 말을 타고 먼 거리를 신속하게 정찰하고 대규모 가축 떼를 몰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그와 같은 경제에 필수적이었다. 가축 무리는 하곡 사이의 방대한 초원에 흩어져 풀을 뜯고, 이로 인해 더 큰 규모의 목축과 부의 축적이 가능했다. 14∼16장에서는 인도·유럽 공통조어 방언을 쓰는 사회들의 동쪽과 서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쪽, 즉 이란과 인도 아대륙까지의 팽창에 대해 알아본다. 특히 인도·유럽 공통조어 사용자의 발전과 그들의 최초 확산을 이해하고, 나아가 운송 기술의 혁신(기마, 바퀴 달린 수레, 전차)이 유라시아 개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사한다.
저자는 사마라 강 하곡 프로젝트를 통해 청동기 시대 초원 목축 경제의 식물학적 및 계절적 측면을 검토한 결과 목축 경제가 연중 항구적인 거주지에서조차 재배 곡물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청동기 시대 초원의 목축 경제는 완전히 자기 지속적이며 독립적이었다. 즉 야생 식물이 충분했고, 이 씨앗들은 곡물을 재배하지 않는 곳에서 식량으로 소비되었다. 목축 경제는 식량 공급을 위해 철기 시대의 국가들에 기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들이 독립적인 목축 경제를 이루는 데 공헌한 요소들을 무엇일까.
말: 운송 기술의 혁신은 인간의 사회적·정치적 삶을 바꾸는 강력한 요인 중 하나다. 기마의 시작, 네 바퀴 수레와 두 바퀴 수레의 발명, 살 달린 바퀴를 가진 전차의 발전은 누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이런 효과의 속도는 한층 더뎠지만 그 효과 중 하나는 유라시아를 일련의 서로 연결되지 않은 문화 집합체에서 상호 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행시켰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말은 처음에 음식용으로 길렀지만, 기마는 곧 가축화한 소·양·말 떼를 관리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유용성을 발견했다. 서기전 4200∼서기전 4000년 무렵 흑해-카스피 해 초원에 살던 사람들은 습격시 진퇴를 위해 말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말 위에 올라 타자 부족 간 분쟁에서 이들의 기마 이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유기물 재갈은 완벽한 기능을 발휘했고, 동석기 초원의 말들은 올라타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다. 서기전 5200∼서기전 4800년 무렵 소 떼와 양 떼를 거느리자마자 초원 부족의 지도자들은 석제 전곤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서기전 4200년 무렵 인간의 기동성은 한층 더 좋아졌다.
네 바퀴 수레나 두 바퀴 수레: 네 바퀴 수레 덕분에 목축인은 가축을 데리고 하곡 사이 깊은 초원 지대로 수레에 실은 텐트, 식품, 물에 의지해 한 번에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이주할 수 있었다. 얌나야 목부들의 경우 일반적인 연간 이동 거리는 50킬로미터 미만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 바퀴 수레에 의한 큰 짐의 운송과 말 따위를 이용한 재빠른 운송의 결합은 초원 경제에 혁명을 불러일으켜 대부분의 유라시아 초원 지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지금까지 대부분 황무지로서 이용하지 않던 초원 지대는 이렇게 익숙해졌다. 서기전 3300년 무렵 얌나야 층은 흑해-카스피 해 초원 지대를 가로질러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아마도 이와 함께 인도·유럽 공통조어도 이동하며, 화자들이 서로 떨어져 그 방언들이 여기저기 흩어졌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의 이주는 게르만어, 발트어, 슬라브어, 켈트어, 이탈리아어, 아르메니아어, 프리기아어 등의 씨앗을 뿌렸을 것이다.
전차: 전차는 전적으로 속도만을 위해 고안한 최초의 바퀴 달린 수레로서 우랄 초원 남부의 타시타 문화 무덤(서기전 2100년)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전차는 특별히 훈련받은 빠르고 강한 복수의 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균형 감각과 힘은 물론 많은 시간과 자원을 가진 남자들만 전차 위에서 싸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전차 위에서 투창을 던지는 전사 부대가 도끼와 창, 찌르개를 든 피후견인 및 지원자들로 구성된 보병 또는 기병의 지원을 받으며 전장으로 돌진했다. 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새롭고도 치명적인 전투 기술이었다.
이들과 함께 복원된 인도·유럽 공통조어 어휘와 인도·유럽의 비교신화학은 두 가지 중요한 융합적 제도가 무엇인지 밝혀냈다. 하나는 후견인과 피후견인 사이의 맹세에 구속받는 관계로서 강자와 약자 및 신과 인간 사이의 호혜적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불평등을 공인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이 제도는 목축 경제를 받아들인 시점인 서기전 5200∼서기전 5000년대까지 그리고 처음으로 명백한 부의 차이가 등장한 시기까지 소급된다. 다른 하나는 주객 관계로서 이런저런 보호를 일상적인 사회적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시킨 것으로, 얌나야 층이 시작될 무렵 규제받지 않는 지리적·사회적 공간으로의 이주를 규제하기 위해 발전한 것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특히 선사 시대 부족 사회에 살던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그래서 저자는 이 시대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의 변동을 고고학적 근거와 연결하고, 이를 통해 황량한 초원의 선사 시대를 복원해내며, 이를 다시 역사 시대와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일반적인 고고학이나 인류학적 방법론에 더하여 언어학의 여러 분과는 물론, 신화학·인구학·사회학·동물학·식물학·지질학 등의 방법을 종횡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