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가야와 신라시대 손잡이잔의 맛과 멋!
기형, 구연부, 손잡이, 문양, 색채
미술평론가인 컬렉터가 다섯 가지 키워드로 톺아본 질그릇 손잡이잔의 매력
"나는 가야와 신라의 손잡이잔을 전적으로 현대 조각, 오브제 작업으로 여기며 감상하고 완상하며 수집했다. 전적으로 손잡이잔이 지닌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머리글」에서)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부캐(부가적인 캐릭터)는 ‘컬렉터 박영택’이다. 이 미술평론가 컬렉터가 자신의 수집품인 가야·신라시대 손잡이잔들의 조형적인 매력을 곱씹으며 한국미의 특성까지 톺아본 책을 냈다.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탐닉한 책이라는 점에서 60점의 ‘조선민화’를 회화작품으로 감상한 『민화의 맛』(2019)에 이은 두 번째 작업이다.
가야와 신라시대의 손잡이잔은 흑색의 경질토기를 말한다. 굴가마(등요)에서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만큼 강하고, 색상은 회청색을 띈다. 현재 우리가 만나는 손잡이잔은 모두 부장용 껴묻거리로 컴컴한 무덤에서 나왔다. 따라서 제의적 측면과 연관된 것으로 보지만 거의가 도굴 유통된 탓에 학술적인 가치가 전무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저자는 그럼에도 잔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과 조형적인 매력을 감상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며, 손잡이잔을 애지중지한다.
저자가 추려낸 손잡이잔은 75점. 이들 손잡이잔을 다시 다섯 가지 키워드로 나눠서 각각의 특징에 주목하며 당시 가야·신라인들의 세계관과 내세관은 물론 손잡이잔에 투영된 한국미의 특질까지 짚어준다. 따라서 이 책은 손잡이잔을 통해 당대인의 생활과 생각, 미의식까지 추출한 ‘손잡이잔 인문학’이다.
목차
머리글
기형: 상상력을 자극하는 선의 극치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은
꼭 소주잔 같은
흡사 은하계의 별들처럼
작은 잔의 깊은 존재감
잘 익은 색감의 잔
만개하기 직전의 볼륨감
조각적이고 회화적인
고추장 단지 같고 옹기 같은
천상 맥주잔을 닮았네
편안한 ‘둥근 맛’
손잡이에 스민 일획의 미
작디 작은 잔의 근성
마치 에스프레소 잔처럼
아름답게 어눌한
부처의 귀를 닮은
구연부: 잔의 형태를 좌우하는 구연부의 맛
살짝 바깥으로 벌어진 아가리
허공에 드로잉한 선의 궤적
상상력에 호소하는 매혹적인 피부
기본에 충실한 잔
문양 없는 잔의 충일감
우아하게 목이 긴 잔
당당한 몸통의 유머러스한 입
가장 잔다운 잔
통형 단지에 기원을 둔 잔
세련된 손잡이잔의 한 절정
이토록 크고 넉넉한 잔
대책없이 벌어진 아가리
야무지게 조율된 균형감
손잡이: 대교약졸로 빚은 손잡이의 멋
활시위처럼 당긴 손잡이
잔 속으로 잠입할 것 같은 손잡이
조각 작품 같은, 기울어진 손잡이
듬직하게 빚은 손잡이
당나귀 귀처럼 크고 긴 손잡이
‘ㄷ’ 자 형태의 손잡이
직선의 맛을 주는 손잡이
각과 힘을 품은 직각의 손잡이
고사리 형상의 손잡이
달팽이 모양의 손잡이
두 마리 짐승의 머리를 단 손잡이
장인의 지문이 있는 좌우대칭의 손잡이
대나무 줄기 같은 양손잡이
아름답게 부푼 몸통의 양쪽
손잡이에 달라붙은 새 대가리
사색하듯 기울어진 오리 대가리
새끼줄처럼 꼬아 만든 손잡이
문양: 당시 사람들의 신앙심이 반영된 무늬들
고도의 상징체계를 반영한 텍스트
돌대나 선의 경계
으뜸인 강골의 선 맛
선으로 충분한 문양의 극치
물의 영(靈)으로 둔갑한 잔
기벽에 출렁이는 물결무늬의 리얼리즘
물에서 도(道)를 보다
표면에 가득 찬 문양의 매력
면발처럼 구불거리는 물의 영원성
다섯 줄의 음각선의 환영
물의 생애를 조감한 풍경
오리를 빚어 올린 까닭
피부 가득한 문양의 비밀
작고 길쭉한 잔의 세계관
색채: 손잡이잔 색채의 수수께끼 같은 심연
적색토기의 미묘한 피부
무수한 색채를 품은 잔
‘홀쭉이 아저씨 잔’의 색감
흙색으로 우려낸 부드러운 잔
이토록 붉은 토기
회청색의, 언어 밖의 색상
깊이 있게 가라앉은 색채감각
붉은 기운이 감도는 오묘한 색채
어두우면서도 침잠된 색조의 묵은 맛
형언하기 힘든 색의 향연
갈색과 흙색, 진노랑의 고요한 합창
숭고한 색면추상 같은 손잡이잔
이 진하고 깊은 피부색
부드럽고 달콤한 붉은색의 뉘앙스
흙색과 흙빛으로 무르익은 표면
깊이 있게 문질러진 단색의 채색
보론: 질그릇 손잡이잔의 조형 유전자와 아름다움
주
참고자료
저자
박영택 지음
출판사리뷰
현대미술 평론가의 삼국시대 손잡이잔 컬렉션
『삼국시대 손잡이잔의 아름다움』은 크게 세 가지 점이 두드러진다
먼저, 내용 외적인 요소가 호기심을 배가시킨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평론가로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저자가 현대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삼국시대 질그릇 손잡이잔에 관한 글을 썼다. 심지어 이들 손잡이잔으로 컬렉션전([아르카익 뷰티-삼국시대 손잡이잔], 현대화랑, 2022. 8. 25~10. 16)까지 가졌다. 왜 미술평론가가 현대미술 작품도 아닌, 고미술품을 수집했을까? 또 미술평론가가 고대 손잡이잔에 관해 책을 냈다면, 무엇을 어떻게 썼을까? 단순한 즐김에 머물렀을까, 아니면 탐닉 그 이상의 성과를 냈을까? 내용을 접하기도 전에 저자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충실한 답변서이기도 하다.
다음은 질그릇 잔의 특징이다. 모두 ‘손잡이’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보통 원통 모양의 잔에 큰 손잡이가 양쪽 또는 한쪽에 붙어 있다. 이런 잔을 흔히 ‘파수부배(杯)’나 ‘파배(杯)’라고 한다. 두 손가락으로 겨우 쥘 수 있는 손잡이가 있는가 하면, 동물 대가리가 장식된 손잡이도 있다. 모양과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손가락을 걸거나 쥐는 손잡이 기능은 동일하다. 그리스·로마 문화와 내통하는 불가사의한 시원, 가야와 신라시대에 꽃피고 소멸한 사연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손잡이가 달린 잔은 신라·가야의 고분에서만 다수 출토될 만큼 가야와 신라만의 특별한 기물(器物)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출토품 가운데 손잡이가 달린 잔 모양의 토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형태상 지금의 에스프레소잔이나 머그잔을 연상시키는 손잡이잔들은 고대 유물임에도 현대적인 미감이 느껴진다.
또다른 특징은 이 손잡이잔들이 저자가 발품을 팔아서 구입한 수집품이란 사실이다. 현대미술 평론가가 고대의 토기 손잡이잔에 매료되어 전국 각지를 다녔다는 점에서, 수집품의 면면과 그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수집한 손잡이잔이 300여 점. 그중에서 키워드에 부합하는 잔으로 75점을 엄선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각 손잡이잔을 수집하기까지의 사연을 시시콜콜 썼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바로 미적 오브제로서 손잡이잔의 조형미 감상으로 직진한다. 화가가 초상화로 인물의 전신(傳神)을 그리듯이 각 잔의 초상을 핍진하게 그린다.
“작은 손잡이잔을 주로 모으다 보니, 그동안 무척 다양한 것들을 접하게 되었다. 서울의 인사동을 비롯해 답십리와 장한평, 그리고 대구, 안동, 진주, 부산 등지에서 꽤 많은 잔을 구했다. 한편으로는 박물관을 순례하면서 각종 토기 잔을 유심히 보면서 눈에 익히고 있다. 각종 도록, 책자 역시 토기를 관찰하고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역시 잔에 대한 관심, 관찰과 애착은 자기 돈을 주고 사는 데 비례해서 깊어지는 것 같다.”(183쪽)
세련된 미적 조형물로서 손잡이잔의 아름다움
가야와 신라 토기를 연구한 기존의 자료들은 대부분 시대별·지역별 구분이나 양식사적 측면에 비중을 두고 있다. 세련된 미적 조형물로 토기잔을 대접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다루듯이, 미술사가들이 역사적인 문맥에서 작품을 다루듯이 무미건조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고고학적 유물이자 고대 유산인 동시에 당시 장인들이 빚은 뛰어난 미적 조형물로서 손잡이잔의 맛과 멋에 집중한다. 손잡이잔을 보는 순간 점화된 단상과 감정의 불씨를, 최소한의 자료를 불쏘시개 삼아 감성적인 사유의 불꽃으로 활짝 피워 올린다. 나머지는 “전적으로 자료 자체가 주는 인상을 천착하면서, 그 조형적인 구조와 생김새, 색채 등을 눈여겨”(14쪽) 본다.
“나는 그런 족보나 학술적 가치에 개의치 않고, 그것을 고고학적 유물이나 고대 유산이기보다 현대적인 오브제, 세련된 미적 조형물로 감상하고 즐기고 편애하는 데 집중했다.”(「머리글」에서)
저자의 관점은 잔의 체형과 체질에 관한 주관적인 접근이 강하다. 미술평론가가 작품을 분석하고 질적인 평가를 하듯이 조형적인 관점에서 손잡이잔에 접근했다. 서술의 기본은 도자기잔의 체형과 체질, 표정, 색감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서술이다. 감각적인 표현과 은유적인 묘사는 글 자체로 읽는 즐거움을 준다. 한 편 한 편이 완결된 에세이로 손색이 없다. 언뜻 보면 유사한 손잡이잔들을 차별화 있게 서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75편의 에세이를 일궜다. 이는 손잡이잔을 곁에 두고 깊이 품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질그릇 손잡이잔에 관한 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감각적인 글맛은 손잡이잔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감을 자연스럽게 녹여준다. 감성과 이성, 대중성과 전문성이 조화를 이룬 글들은 삼국시대 손잡이잔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가야인과 신라인들의 내세관과 한국미의 특성
또, 손잡이잔이 역사적인 산물인 만큼 가야와 신라인들의 생활과 세계관, 내세관까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잔에 표현된 문양이나 형상 등에 근거해서 그것들의 표정을 읽고 상징성을 구체화한다. 문양과 형상 속에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간절한 생사의 염원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손잡이잔은 고대인들의 타임캡슐이다.
“이 길쭉한 기형의 독특한 손잡이잔에 새겨진 성형된 돌대나 물결무늬 역시 그림글자이고 문자의 일종이다. 고대세계에서 문자는 문명권별로 다양한 목적을 지니며 발전해왔을 텐데, 아마도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제의(祭儀)의 수행이었을 것이다. 이 잔 역시 죽음 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고, 당시 사람들의 시간관, 내세관과 연동되어 있는 모종의 문자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 손잡이잔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 무늬(그림이자 부호, 문자)를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을 이해하는 통로로 삼을 수 있다.”(248쪽)
저자의 탐닉은 가야·신라인의 내세관 파악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손잡이잔에 깃든, 하나의 몸짓으로 존재하는 한국미의 특성을 채굴해서 그 이름을 불러준다. 한국미의 특성에 관한 담론을 주도해온 고유섭, 김원룡, 최순우 같은 미술사가나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민예운동가 등의 선구적인 작업에 기대면서, 손잡이잔의 미와 한국미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부각한다. 그래서 손잡이잔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음미가 당대인들의 세계관과 생사관을 넘어 한국미의 특질 탐구로까지 확장 심화된다. 미술평론가 컬렉터의 저술로서 이 책의 한 의의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반복해서 만들어져 한국미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유물이자, 수천 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삶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손잡이잔은 비록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간결한 형태와 소박한 멋에서 연유하는 자연스러운 미감이 압권이다. 뛰어난 조형 감각과 창의적인 예술성도 번득이고 있는 손잡이잔을 접하고 있으면 자신들에게 주어진 세계를 해명하고, 놓여진 운명을 억척스레 살아낸, 그 생의 이력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아름다움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6쪽)
다섯 개의 키워드로 감상한 손잡이잔
저자는 손잡이잔의 오묘한 매력을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눠서 소개한다. ‘기형(器形)’ ‘구연부(口緣部)’ ‘손잡이’ ‘문양(文樣)’ ‘색채’가 그것인데, 사실 이들은 하나의 손잡이잔을 이루고 있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뛰어난 손잡이잔은 이들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75점의 잔에서 각 키워드가 두드러진 것을 중심으로 분류했다. 다양한 체형을 지닌 손잡이잔 기형의 독특한 매력(「상상력을 자극하는 선의 극치」), 잔의 구연부(아가리)의 미묘한 모양과 표정(「잔의 형태를 좌우하는 구연부의 맛」), 몸통에 붙은 손잡이의 다채로운 생김새(「대교약졸로 빚은 손잡이의 멋」), 잔의 피부에 새겨진 문양의 형태와 의미(「당시 사람들의 신앙심이 반영된 무늬들」), 그리고 기기묘묘한 색채의 낯빛(「손잡이잔 색채의 수수께끼 같은 심연」)을 깊이 탐색한다. 그 웅숭깊은 세계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먼저, 에스프레소잔 같기도 하고 머그잔 같기도 한 손잡이잔의 ‘기형’이다.
“손잡이가 달린 가야와 신라시대 잔은 오늘날 머그와 형태가 거의 같다. 오히려 더욱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직접 만들어 구워낸 개별성과 고유성에서 우러난 각기 범접하기 힘든 매력이 짙게 배어 있다. 가야 지역에서는 전체적으로 납작한 항아리를 선호했다면, 신라 지역에서는 둥근 항아리를 선호했다. 그것들은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저마다 만든 이의 손맛에 의한 변형과 차이를 간직할 수밖에 없다. 그 질그릇들은 대부분 매우 단순하고 정직한 형태를 추구하며,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조형미를 두르고 있다. 특히나 단순한 기형을 지탱하는 ‘선의 맛’이 대단한데, 이것은 우리나라 질그릇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선사시대 토기부터 이후 도기, 자기, 그리고 조선 후기의 옹기에까지 유장하게 이어지고 있다.”(22쪽)
다음은 손잡이잔에서 사용자의 입술이 닿는 ‘구연부’다.
“구연부란 손잡이잔의 아가리 부분을 말한다. ‘아가리’는 입의 비속어. (중략) 손잡이잔의 맨 윗부분이자 원형의 내부 공간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상층부를 이루는 영역인데, 잔의 하단부에서 위로 솟아올라 꺾여 내부로 들어가기 직전의 절정이자 잔의 최종적인 형태를 완료하는 핵심적인 지점이다. 잔의 형태는 결국 구연부가 최종적으로 마감한다. 그것이 외부로 어느 정도 벌어졌는지, 몇 도의 각도로 경사면을 갖는지, 구연부의 면이 어느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등이 잔의 전체적인 기형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손잡이잔에서 가장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지점이 바로 구연부일 것이다.”(91쪽)
동일한 형태가 하나도 없는 잔의 ‘손잡이’는 가야와 신라가 차이를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회색조의 여린 신라 손잡이잔이 상당히 소박하고 여성적이라면, 가야 손잡이잔은 섬세하고 세련되면서도 무척 강렬하고 무거운 남성미가 느껴진다. 또한 신라 손잡이잔의 기형은 활달하고 양감이 넘치는 가야의 것과 달리 다소 옹색한 점이 있다. 다양한 기형의 가야 토기에 비하여 다양성이 제한된 편이고, 변형태나 이형적인 맛도 드물다. 그래서 신라의 손잡이잔은 비교적 획일적인 느낌이 짙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손잡이들을 하나같이 지극히 무심하고 소박하게 빚어서 잔의 옆구리에 정성껏 밀착시켜놓았다는 점이다. 더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었으며, 과하게 빚거나 유난스럽게 장식하지 않았다. 손잡이는 잔의 핵심이다.”(50~51쪽)
손잡이잔의 일부 손잡이 형태도 그렇지만 잔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에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내세관이 집약되어 있다.
“가야와 신라의 손잡이잔에 빈번하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양은 직선의 줄무늬, 물결무늬다. 한편 그릇 표면을 예리한 돌기줄로 등분한 것은 고식이고, 돌기 줄이 부드러워지거나 없어지고 측면 곡선이 아름다운 것은 후기에 속한다. 가야의 것은 점선으로 된 톱니바퀴나 파선 무늬가 주로 나타나고, 신라의 것은 예리한 직선 위주가 우선한다.”(234~235쪽)
저자는 잔의 ‘색채’마저 허투루 보지 않는다. 이 색채를 인문학적으로 읽어서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을 엿보는 텍스트로 활용한다.
“가야와 신라시대 손잡이잔의 색채는 흙과 불의 만남으로 인한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지향했던 무한한 대상에 대한 숭고의 감정과 간절한 염원을 가시화하려는 목적으로 채색되었을 것이다. 결코 이름 지을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난해한 손잡이잔의 색채는 분명 당시 가야와 신라인들이 추구하던 문화적·종교적·이데올로기적 영향력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손잡이잔의 색은 당시 사람들이 지닌 미의식의 반영이자 자연에 대한 기호를 반영하는 텍스트가 된다.”(303쪽)
‘보론’, 손잡이잔 감상에 깊이와 넓이를 더하다
일종의 ‘손잡이잔 깊이 읽기’ 편인 ‘보론’의 「질그릇 손잡이잔의 조형 유전자와 아름다움」도 놓칠 수 없는 장이다. 원고지 분량으로 100매가 넘는 보론은 ‘손잡이잔 약전(略傳)’으로 발군이다. 손잡이잔의 드라마틱한 흐름과 부침의 역사는 한국미의 특성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질그릇 손잡이잔의 장구한 흐름을 명료하게 서술한다. 그리스·로마에서 한반도의 가야와 신라에 이르기까지, 또 국제정세의 변화와 불교의 유입으로 손잡이잔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역사를 통해 본문을 보충하며 감상의 지평을 확장한다.
손잡이잔의 유입과 소멸에는 국제적인 교류와 무덤의 형식, 불교의 유입에 따른 세계관의 변화 등이 함께한다. 손잡이잔 하나가 당시 국제 관계의 변동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당시 가야·신라인이 지녔던 세계관은 삶과 죽음이 서로 무관한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긴밀히 연결된 세계, 이른바 ‘직선적인 세계관’이었다. 그래서 망자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을 무덤의 부장품으로 넣었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서고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직선적인 세계관에 금이 간다. 윤회론에 따른 새로운 세계관에서는 내세보다 현세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했다. 무덤의 부장품은 더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보론’은 독립된 읽을거리이자 권말(卷末)에서 본문을 더 환하게 밝혀주는 보름달 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