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장르문학과 여성주의, 소수자 재현 윤리로
‘아동문학’이라는 우주를 말하다
평론은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좀 보세요. 이렇게 아름다워요…….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나요. 나에게 아동문학은 사랑이고 희망이다. (책머리에)
송수연 평론가는 말한다. 아동문학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지도’가 있다고. 사람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세상과 선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 반드시 희망으로 길을 낸 미래. 송수연은 아동문학이 밝히고 있는 이 ‘희망의 미래’를 믿으며 판타지, 호러, SF, 리얼리즘 문학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애정 어린 고민을 지속해 왔다. “아동문학은 사랑이고 희망”이라는 단언은 송수연 비평의 핵심이다. 그의 문제 제기와 비평은 결국 그 희망을 길어올려 이야기하고자 하는 강한 애정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문학과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겨레아동문학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부지런히 지면에 글을 실어온 송수연은 2014년 『창비어린이』 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계간 『작가들』 편집위원, 어린이청소년SF연구공동체플러스알파 회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송수연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쓴 글 일부를 모은 이번 평론집은 장르문학과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아동문학이 어떻게 현실을, 그리고 소수자를 재현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가 걸어온 10여 년의 걸음에는 우리 아동문학의 발자취가 그대로 묻어있다. 각 장르나 현상의 흐름을 읽어내는 글부터 개별 작품이 담고 있는 중요한 지점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서평까지 각각의 글은 그 시대의 주소를 반영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어린이처럼 말할 것인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에 귀기울일 것인가.’
목차
책머리에 4
1부 장르문학과 여성주의, 아동청소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
장르문학, 지금이 시작이다 13
한국 아동 탐정물의 새로운 출발 30
여성 히어로물의 의미와 가치 35
한국 어린이 호러물의 어제와 오늘 39
굿바이 ‘민폐녀’ - 아동문학과 재현의 관성 54
우리에게 ‘우주(SF)’가 필요한 이유 67
2부 리얼리즘 아동문학이 걸어온 길, 걸어갈 길
다문화시대, 아동문학과 재현의 윤리 85
우리는 모두 지구별의 난민 105
희생자에서 존엄자로 10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5
실패해도 충분히 멋진 사랑 이야기 119
부디, 더 많이 사랑하기를! 128
아동소설의 현재와 개인의 발견 132
장편, ‘가능성’으로서의 문학 149
3부 모색과 연결, 앞으로 나아가기
어린이가 찾는 동시, 어떻게 가능할까 167
혼돈 속의 모색, ‘옛이야기 방식의 창작동화’가 나아가야 할 길 173
잃어버린 재미를 찾아서 180
‘지금, 여기’ 한국 청소년문학의 지형도 183
2011년, 엻여덟 청춘의 생활 보고서 189
‘성장’이라는 양날의 검 192
문학이 해야 할 일 195
하드보일드한 ‘복불복’의 세계를 가슴으로 통과하는 ‘한국형 탐정’의 부활 204
‘꿰맨 양말’을 이야기하는 방식 208
4부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이야기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 속에서 215
필통 속 연필들이 보여준 삶의 철학 219
달콤쌉쌀한 동화의 맛 222
따스한 위로와 든든한 용기 225
아이들을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 이야기 229
천천히, 서로 한 걸음씩 232
고독이 준 선물 236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이야기 239
저자
송수연 (지은이)
출판사리뷰
어린이에게 목소리를 주는 아동문학
저자는 일찍이 장르문학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우리 아동문학의 엄숙주의와 교훈주의를 일면 비판하며 진짜 독자(어린이)에게 자리를 돌려줄 것과 바로 그 어린이가 원하는 ‘재미있는’ 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더불어 장르문학이야말로 뉴미디어 시대에 점점 사라지는 독자를 다시 문학장으로 유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피력한다. 어린이뿐 아니라 소수자에게도 새로운 ‘자리’를 내어주는 장르문학과 그 당사자들에 대한 저자의 환대와 애정은 예리한 분석과 통찰로 확장되며 비평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리’가 단순한 ‘공간’의 확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장소’가 되기 위한 본질은 그 속에 있는 우리, 사람임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아동문학이 어떻게 현실을 재현할 것인가, 소수자 재현 윤리에 대해 난민, 성소수자, 역사 속 인물 등을 다룬 작품을 여러 각도로 깊이 있게 조명한다. 소수자에게 목소리를 주는 일은 억압된 목소리의 발화라는 점에서, ‘어린이에게 목소리를 주는’ 아동문학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는 ‘어른이 어린이처럼 말할 수 있는가’와 같은 뜻이다. 아동문학은 그 불가능을 향한 고투여야만 한다고 믿는다.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이야기
1부 ‘장르문학과 여성주의, 아동청소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에서는 웹소설, 웹툰 등 독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인 뉴미디어의 등장을 언급하며 아동문학 역시 엄숙주의를 깨고, 생산자 작가/어른 중심에서 수용자 독자/어린이 중심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한다. 더불어 호러, 히어로물, SF 등의 장르문학이 가진 가능성을 촘촘히 살피는 동시에 이 맥락 속에서 여성 캐릭터 재현 방식을 돌아본다. 2부 ‘리얼리즘 아동문학이 걸어온 길, 걸어갈 길’에서는 평론집 전체를 꿰뚫는 ‘소수자 재현 윤리’라는 기본 관점을 개진해 나간다. 특히 입은 있되 목소리가 없는 자들-어린이, 하위자-에게 목소리를 주는 아동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3부 ‘모색과 연결,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앞으로 아동문학이 어린이 독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방향이 되어줄 수 있는 작품 서평을 중심으로 모았으며, 주로 단행본에 실린 해설을 담은 4부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이야기’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큰 맥락의 논지를 개별 작품 속에서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어 독자들에게 좋은 참조점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에게 종요로운 단 하나의 가치 ‘어린이’와
‘현실태’로서의 희망
송수연은 아동문학의 영원한 딜레마인 ‘수신인(어린이)과 발신인(어른)이 일치하지 않음’을 고민하며 아동문학의 근원이자 목적이며 특유의 생명력의 원천인 어린이에 주목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일수록 어린이는 우리에게 더욱 종요로운 단 하나의 가치라고 말하며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문학, 어린이를 논하면서 그들을 배제하지 않는 문학, 어린이에게 목소리를 주는 문학에 대해 재차 강조한다. 개별 작품을 논함에서도 어린이에 대한 발견과 고민을 놓치지 않는다. 어린이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아동문학의 역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나 두루뭉술한 희망을 단순 미봉책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와 희망을 ‘현실태’로 제시하는 일임을 말한다.
아동문학에 얽힌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에서 시작된 발화를 심지 굳은 메시지로 꿰어가는 송수연의 글은 그가 아동문학에 제안했듯 ‘진입장벽’을 낮춰 누구나 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동시대적 고민에 참여하게 만든다. 특히 저자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명쾌하게 전언하는 메시지는 아동문학과 어린이, 그리고 그와 같은 선상에서 ‘하위자’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시선과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에게 더 넓은 우주가 필요한 이유
이번 송수연 평론집은 『우리에게 우주가 필요한 이유』라는 제목 속에 주제가 그대로 담겨있다. 아동문학이라는 우주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나아가 아동문학에, 우리의 우주에 더 넓은 우주가 필요한 나름의 이유를 제시하는 이 평론은 아동문학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목소리가 없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일, 타인을 신기가 아니라 신비로 보는 일, 현실을 재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가능태’를 제시하자는 저자의 주문은 여기, 우리가 서있는 이 우주에 꼭 필요하다. 문학이 작품을 넘어 현실의 우리를 재점검하게 하는 것처럼, 이 평론집의 전언은 책 속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우주로 확장되며 동시대에 필요한 명제로서 기능한다. 막연한 낭만이나 발화에서 그치는 희망이 아니라,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은 희망을 제시하는 우리 아동문학의 새로운 얼굴, 새로운 미래를 함께 상상하는 평론집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동문학을 기필코 진짜 주인, 어린이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단단하고도 다정한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