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화첩기행』 이후 7년,
시서화가 어우러진 예술기행의 정수를 다시 만나다
인문정신과 예술혼이 씨줄과 날줄로 아름답게 수놓인 예술기행 『화첩기행』 이후 약 7년 만에 김병종 화백이 『시화기행』으로 돌아왔다. 『화첩기행』이 국내 예인들의 자취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갔다면 ‘김병종의 시화기행’은 그간 써온 시와 함께 유럽 등지로 장소를 옮겨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단지 예술가들의 흔적만 살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재능을 키워간 도시에도 초점을 맞춰 공간과 예술가의 유기성을 김병종 화백만의 섬세한 사유로 전한다. 파리를 시작으로 로마, 뉴욕, 더블린 등을 누빌 예정인 『시화기행』 연작을 통해 김병종 화백의 전방위적 예술가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시서화의 조화로 한층 풍성해진 예술기행을 함께하는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다.
『시화기행 1: 파리, 고요한 황홀』에서는 로댕, 피카소, 로트레크, 발자크, 카뮈, 귀스타브 모로, 에디트 피아프, 로베르 두아노, 생텍쥐페리 등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가로서 역량을 키워간 30여 명의 예술가들의 흔적을 좇는다. 벨에포크 시대를 중심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파리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예술가들의 궤적을 퍼즐처럼 맞춰가면서 왜 파리가 예술 도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살핀다. 문학사, 철학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했던 파리 곳곳을 김병종 화백과 함께 거닐다보면 파리의 은성한 불빛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해진다.
수십 년 동안이나 사람들이 다른 입 같은 소리로 한 우물만 파야 한다고들 성가시게 했지만 나는 일란성쌍생아 같은 글과 그림 어느 하나도 미워하거나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여기까지 왔다. 다만 시는 발표 없이 혼자 쓰고 버리곤 했는데 쓰고 버리고를 무수히 반복하다보니 이 또한 야릇한 쾌감이 왔다. 구차하게 발표하며 입술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은밀하고 짜릿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쓴 시들이 아침에 찢겨 나갈 때는 마치 옛 요대 궁궐의 말희가 비단을 찢는 것 같은 쾌감이 들었다. 그러다 시와 그림과 여행을 함께 버무려 내놓게 되었다. 읽는 이들이 내 시와 그림의 창을 통해 떠나지 못한, 혹은 떠나왔던 여행의 상념을 어루만졌으면 싶다. 이러구러 생애의 페이지가 다시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혼자 가끔씩 중얼거린다. 나는 화가다. 그리고 시인이다. _서문에서
목차
서문 시화기행을 펴내며
1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붓
파리, 이 도시는 우아하게 늙어간다
모든 쟁이들의 도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몽마르트르의 예술 카페, 그곳의 꽃은 밤에만 핀다
2부 예술가들의 향연
스승은 오늘도 작업중
에콜 데 보자르, 아름다움의 성채
불의 전사, 피카소
미라보 다리, 생의 아스라한 저편
예술가를 위한 따뜻한 손 하나
카페 라 로통드와 목이 긴 여인
샤갈, 색채로 시를 쓰다
행복한 유리병 속의 나부
노래여 아픈 노래여
파리에서 망통까지, 밤의 태양
철학의 성채가 된 카페 레 되 마고
신의 손을 훔쳐보다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미안해요, 예수보다 일 년이나 더 살았군요
어머니 혹은 신의 산을 바라보는 자
불로뉴숲과 시간 여행
숲속의 흰 돛단배 한 척
3부 빛과 어둠의 도시
숨소리까지 들린다
발자크, 문학의 피카소
상처 입은 노트르담
건지섬과 보주광장 그 사이에서
오래된 지식의 성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악한 꽃은 없다, 타락 천사의 파리
시인 혹은 부랑의 삶
경계의 이방인, 알베르 카뮈
시간이 돌아오는 집, 북호텔
영원히 꿈꾸는 광대
아직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시를 담은 시간의 목판화
순간에의 숭배
빛의 집, 혹은 영혼의 마을
4부 파리 밖에서 피어난 꽃
거대한 풍경, 작아지는 붓
일그러진 사과 한 알
행복한 수련 산장 주인
행복을 그리다, 마티스 미술관
빛, 바람, 구름의 집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하늘은 나의 땅
저자
김병종 (지은이)
출판사리뷰
검붉은 석류 같은 도시, 파리
그곳을 살아간 여린 예술가들을 만나다
자본의 흐름을 따라 미술 시장은 뉴욕으로 옮겨갔고, 현대 미술이 등장한 후 아름다움의 기준도 빠르게 변해간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 도시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파리를 맨 먼저 떠올린다. 인상파, 야수파, 사실주의, 자연주의 등 예술사의 중심지였던 영광을 여전히 누리고 있는 파리는 ‘미의 도시’ 타이틀을 쥐고 있다. 김병종 화백은 장르를 넘나든 예술가들의 교류에서 그 비결을 찾는다. 파리는 거대 도시가 아니기에 예술가들이 엇비슷한 장소로 모여들었고 밤문화가 발달한 덕분에 문학과 예술, 사상적 담론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유연성뿐 아니라 파리의 경쾌함과 우울, 절망과 고독,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아름다움을 좇아 고달픈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선구자들의 이름을 헤아린 뒤 40년 이상 글 쓰는 화가로 살아온 자신의 예술 인생도 반추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으로 남원역 앞 복지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였다가 여기저기서 지청구를 들었던 십대 시절을 회상하는가 하면, 엄격한 프로테스탄트였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모습에서 유년 시절의 초상을 발견하고,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이자 화가였던 귀스타브 모로와 서울대 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자신의 모습을 겹쳐 읽기도 한다. 이 외에도 로댕과 사랑과 증오를 주고받았던 카미유 클로델, 고향으로 돌아가 결국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세잔, 하반신 장애로 멸시받았지만 물랭루주의 기록화가로 이름을 알린 로트레크, 예술을 도피처 삼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긴 마르셀 프루스트 등 상처와 눈물, 고독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뒤 무화(無化)된 예술가들의 삶을 기린다.
파리라는 도시, 밤에 나가면 검붉은 석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핏빛 껍질 속에 보이는 말간 연분홍 씨들. 어둠이 오면 일제히 불을 켜서 호사한 시간을 연출하지만 화려하고 견고한 그 외피 안에는 올망졸망 여리고 외로운 석류알 같은 존재들이 모여 있다.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이르는 온갖 ‘쟁이’들…… 환쟁이, 글쟁이, 풍각쟁이 그리고 광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우는 자들이 이 화려한 도성의 한 모퉁이에 모여 있다. 그들은 그 누군가를 위해 언어와 색채, 악보를 만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결같이 자기 위로의 몸짓일 뿐이다. 외로워서 하는 짓거리일 뿐이다. _23쪽
끊임없이 진화중인 예술가들의 성지, 파리
그곳에서 시대와 예술의 변화를 읽다
‘역마를 넘어서 쌍마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자칭할 정도로 김병종 화백은 그간 국내외 수많은 도시를 유랑해왔다. 하지만 “다녀도 다녀도 파리만큼은 아직 배고프다. 돌아서면 다시 그곳이 그립다”며 여전히 파리에 사로잡혀 있다고 고백한다. 왜 파리일까? 우선 파리에서는 예술가들이 남긴 미의 유산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6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지만 그 안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130여 개 자리할 정도로 파리는 일상적으로 미와 연결되어 있다. 김병종 화백은 로댕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등을 찾아가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작업 공간을 살피고 작품 속 장소를 직접 누비며 생동감 있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딜리아니, 들라크루아의 작품 등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재해석해 원작과 비교해보는 즐거움도 더했다.
『시화기행』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거쳐간 도시의 공간성에도 주목한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사연이 얽힌 카페 라 로통드를 비롯해 숱한 예술가들이 캔버스에 그 모습을 남겨둔 몽마르트르 언덕,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사상의 성채를 쌓은 카페 레 되 마고, 벨에포크 시대 예술가들이 모여든 스타인 살롱, 예술 작품 속 배경으로 유명해진 미라보 다리, 북호텔, 파리 시청 등을 거닐며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애틋하게 추억한다.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NFT 경매에 작품을 내놓는 등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가나 현역 화가로서의 고민도 없지 않다. 김병종 화백은 파리에서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는 태도를 배운다. 교수 시절에는 에콜 데 보자르에서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면 이제는 ‘예술가로 어떻게 살다 갈까’를 고민하게 된다고 밝히는가 하면 ‘예술가의 삶은 죽어서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명증하게 보여주는 페르 라셰즈에서 먼저 사라져간 것에 작별을 고하고 언젠가 떠날 길을 가늠한다.
놀랍게도 가장 어둡고 암담했던 그 시절, 폐허와 어둠의 땅 한쪽에서는 새로운 창조의 싹이 움터올랐다. 일군의 화가, 조각가가 이곳으로 몰려왔던 것. 그들이 떼지어왔던 단 하나의 이유는 집세가 싸서였다. 제대로 정신 박힌 사람치고 피비린내 진동했던 그 죽음의 처소에 둥지를 틀 리 없었을 것이다. 화가, 조각가. 그들은 대체로 기가 센 종족이다. 옛날 역전 시골 다방에서 여자 얼굴을 요상하게 그려 파문당하다시피 했던 열다섯 살 소년도 새벽에 찬밥 비벼 먹고 완행열차 타고 서울역에 내려 기어코 화가의 문을 노크하지 않았던가. 멀리 피레네산맥을 넘어서 가방 하나 멘 채 쏘아보는 눈빛 하나 가지고 온 피카소도 몽마르트르로 향했고, 네덜란드의 선교사 출신 반 고흐도 싼 집을 찾아 이곳으로 왔다. 하반신 장애로 멸시받던 로트레크도 물랭루주의 무희에게는 인기였다. 사람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어우러져 다시 사람이 되어갔다. 난무하는 이념의 깃발과 총성, 분노의 함성과 저마다 부르짖는 정치 구호 속에서는 꿈도 꿀 수 없던 문화의 힘이었다. 진실로 가장 어두운 순간에 창조의 싹이 움트고 문화가 그 꽃봉오리를 맺은 것이다. 정치는 일시적으로 힘이 세다. 그러나 예술은 그 힘이 오래간다. _3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