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니라
세상이 이들을 보도록 만들고 싶었다.”
순간이었다.『마사지사』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육 년 간의 기자생활을 접고 전업 작가로 전향한 지 십 년째.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진 작가 비페이위는 작업실 근처에 있는 맹인 마사지센터를 자주 찾게 됐다. 자연스레 맹인 마사지사들과도 친분이 쌓였는데, 대학 졸업 후 난징의 특수교육사범학교에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던 경험도 있던 터라 마사지사들의 생활과 마음을 좀더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날도 마사지센터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 배가 고파진 비페이위와 마사지사들은 밖으로 나가 음식을 먹으려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통로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도움의 손길을 주려 했으나 뜻밖의 어둠 속에서 주저하고 있는 찰나, 비페이위는 한 소녀 마사지사에게 손을 잡혔다. “도와드릴까요?”라는 소녀의 한마디. 소녀의 손을 잡고 무사히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소녀는 “이럴 땐 제가 선생님보다 낫죠?”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후드득 이야기가 몰려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자. 맹인 마사지사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세상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이들을 보게끔” 만드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목차
프롤로그_ 정의 009
닥터 왕 015
사푸밍 048
샤오마 066
두훙 093
샤오쿵 124
진옌과 타이라이 147
사푸밍 179
샤오마 201
진옌 222
닥터 왕 239
진옌 260
가오웨이 280
장쭝치 300
장이광 324
진옌과 샤오쿵, 타이라이와 닥터 왕 336
닥터 왕 357
사푸밍과 장쭝치 374
샤오마 390
두훙 409
사푸밍, 닥터 왕 그리고 샤오쿵 429
닥터 왕 450
에필로그_ 만찬 468
저자
비페이위
출판사리뷰
거칠고 비천한 어둠 속 난징의 사쭝치 마사지센터
맹인 마사지사들이 더듬어 보여주는 삶의 결들
★ 2011년 제8회 마오둔문학상 수상
★ 2010년 타이완 일간지 [중국시보] 선정 ‘2009년 소설상’
★ 2009년 [당대] 선정 ‘2008년 최고 우수장편소설’
★ 2008년 [인민문학] 선정 ‘인민문학상’
“나는 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니라
세상이 이들을 보도록 만들고 싶었다.”
순간이었다.『마사지사』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육 년 간의 기자생활을 접고 전업 작가로 전향한 지 십 년째.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진 작가 비페이위는 작업실 근처에 있는 맹인 마사지센터를 자주 찾게 됐다. 자연스레 맹인 마사지사들과도 친분이 쌓였는데, 대학 졸업 후 난징의 특수교육사범학교에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던 경험도 있던 터라 마사지사들의 생활과 마음을 좀더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날도 마사지센터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 배가 고파진 비페이위와 마사지사들은 밖으로 나가 음식을 먹으려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통로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도움의 손길을 주려 했으나 뜻밖의 어둠 속에서 주저하고 있는 찰나, 비페이위는 한 소녀 마사지사에게 손을 잡혔다. “도와드릴까요?”라는 소녀의 한마디. 소녀의 손을 잡고 무사히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소녀는 “이럴 땐 제가 선생님보다 낫죠?”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후드득 이야기가 몰려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자. 맹인 마사지사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세상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이들을 보게끔” 만드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비페이위는 중국 문학상 중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히는 루쉰문학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고(「수유기의 여자」 『위미』), 맨 아시아상도 수상하며(『위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중견 작가다. 경극 여배우의 신산한 삶을 그린 소설 『청의』(문학동네, 2008년)와 세 자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그린 『위미』(문학동네, 2008년)로 여성의 삶을 누구보다 실감나게 그리는 작가라 평가받는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다. 난징일보에서 일하던 기자 시절, 자신의 기사를 달가워하지 않는 매우 고약한 편집자 때문에 육 년 동안 기사를 육천 자밖에 쓰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그다. 쉽게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과 안목을 믿는 소신 있는 외골수인 것. 맹인 마사지사들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들의 내면세계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그들이 보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언어화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소신과 뚝심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이런 작가 비페이위의 성격과 경험, 사유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마사지사』는 제8회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하며 비페이위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마사지사]는 당신을 도시의 외진 모퉁이로 이끌어 세상을 모색하고 자아를 탐색하는 맹인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 비페이위는 인식과 표현의 어려움을 가볍게 극복하고,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맥을 짚어 그들의 마음속을 진지하고도 세심히 밝혀냈다. 생동하는 디테일과 선명한 캐릭터, 작은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통찰력은 소설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예리한 시적 언어로 쓰인 문장들에선 기민한 창작력을 엿볼 수 있다. 2011년 제8회 마오둔문학상 심사평
그들도 살아간다, 평범한 우리처럼
난징의 교외에 위치한 사쭝치 마사지센터. 이곳엔 열댓 명의 닥터가 있다. 단순한 안마가 아니라 오랜 훈련과 학습으로 마사지 기술을 습득한 이들은 서로를 ‘닥터’라 부른다. 마사지센터와 마사지센터 옆에 마련된 숙소를 오가며 이들은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닥터 왕은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는 마사지사다. 선천적 맹인인 닥터 왕은 어릴 적부터 마사지사가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해왔다. 건장한 체격에 책임감 있는 닥터 왕은 지금은 비록 동창 사푸밍의 가게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처지이지만 자신과 같은 맹인 여자친구 샤오쿵을 ‘사모님’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꿈이다.
닥터 왕의 동창이자 사쭝치 마사지센터의 사장인 사푸밍은 번듯하게 살고 싶어한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돈을 모아 동료 장쭝치와 자신의 이름을 각각 딴 ‘사쭝치 마사지센터’의 사장이 됐다. 반쪽짜리 사장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푸밍에게 함께 일하던 마사지사 두훙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면서 성공의 기준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닥터 왕의 여자친구 샤오쿵은 몸이 달아올랐다. 사쭝치 마사지센터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남녀 숙소가 나뉘면서 그와 사랑을 나눌 방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 숙소에 놀러갔다 수줍게 있던 청년 샤오마에게 온갖 앙탈을 부리고 장난을 치며 답답한 마음을 풀어버렸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샤오마가 그만 샤오쿵을 좋아하게 됐다. 샤오마는 샤오쿵을 좋아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샤오쿵과 닥터 왕 말고도 사쭝치 마사지센터엔 또다른 연인 사이, 진옌과 쉬타이라이가 있다. 다른 맹인들에게 결혼이란 ‘행복’보다 ‘안전’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진옌에겐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 선천적 맹인에다 소심한 남자 타이라이는 그녀가 돼지고기 요리인 ‘훙사오러우’보다 예쁘다며 그녀를 북돋아준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쭝치 마사지센터에 사소한 사건이 발생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이 사건을 봉합하려다 마사지센터에 있던 모순과 갈등이 극대화되고, 결국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데……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상상만으로 설계된 세상
하지만 그 세계엔 ‘사실’이 없다
평범한 삶. 누군가를 좋아하고, 성공을 열망하며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이들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때문에 이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그들이 맹인이라는 사실도 잊게 된다. 하지만 그 궤적의 모양이 아니라, 궤적에 파인 깊이를 들여다보면 그곳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 맹인들의 세상은 각자의 경험과 장애 정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구축되어 있다. 그래서 그 세계엔 정해진 상(像)이 없다.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로서, 글로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작가 비페이위가 선택한 작업이다. 무정형의 공간을 작가의 통찰과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도전이며 과제다. 비페이위는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이용해 세상을 인식하는 구체성과, 시각을 대신하는 사고의 추상성을 절묘하게 조합하는 방법으로 그 과제를 너끈히, 그리고 아주 비범하게 해낸다.
바로 자아를 다시 빚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강철 같은 견고함과 바위 같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시간도 필요하다. 그는 조각가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아니다. 그의 작업은 순서 없이 뒤죽박죽 이루어진다. 여기를 한번 파내고, 저기를 한번 찍어내고 하면서. 다시 태어났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아주 낯선 조각품이다. 본문 75쪽
비페이위는 이렇게 “지금의 ‘나’는 하느님이 되고 과거의 ‘나’는 마귀가” 되어야 하는 후천적 맹인의 고통을 묘사하는가 하면, 애초에 세상에 대한 상(像)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이 세상을 “사용하기만 할 뿐 이해할 수는 없는” 선천적 맹인의 고충을 절절히 풀어내기도 한다.
손으로 더듬어봤자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단 말인가? 손으로는 크고 작음, 길고 짧음, 부드러움과 단단함, 차갑고 뜨거움, 건조하고 축축함, 오목함과 볼록함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손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
책에선, 아름다움은 숭고함이라 한다. 숭고함이란 무엇인가?
책에선, 아름다움은 온유함이라 한다. 온유함이란 무엇인가?
책에선, 아름다움은 조화로움이라 한다. 조화로움이란 무엇인가?
고귀한 순수란 뭘까? 위대한 고요는? 장엄함은 무엇이고 화려함은 또 뭘까? 섬세한 정교함은 무엇이며, 아득한 오묘함이란 뭘까? 본문 180쪽
마사지사들은 이처럼 모든 감각을 세밀하게 깨워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지만 자신이 만든 세상이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완전체가 아닌 세상, 그로 인한 실존적 불안. 비페이위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보이는 사람들에게 의존하면서 세상을 인지해야 하는 맹인들의 현실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맹인들은 어찌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조금씩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한 뒤에야 비로소 자기만의 사람인 누군가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매우 사적인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의 뼈대는 여전히 공적이었다. 맹인의 삶이란 평생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본문 185쪽
맹인들은 보이지 않고 ‘진상’이라든가 ‘사실’은 그들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을 빌려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일을 해나갈 수 있다. (...) 맹인들의 세계에는 언제나 멀쩡한 사람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본문 387쪽
“사람이 제가 한 말에도 눈을 감아버리면,
세상도 그 앞에서 눈을 감는 법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맹인 마사지사들의 삶은, 역설적으로 세상의 겉모습만 보았던 이들에게 세상의 진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마사지사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존엄’ ‘사랑’ ‘신뢰’ 등을 꼭 붙들고 살아간다. 그간 내쳐두었던 가치들이다. 닥터 왕, 샤오쿵, 두훙, 사푸밍, 샤오마 등 모든 마사지사는 이러한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돈도, 생계도, 몸뚱아리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돈을 동생의 도박빚을 갚기 위해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자신의 피로 그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닥터 왕, 손가락이 굴절되는 사고를 겪고 동료들의 동정을 뒤로한 채 마사지센터를 떠나는 두훙의 모습 등에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문맹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정말 글자를 몰라.”
점자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지만 정작 ‘글자’는 모르는 맹인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이들이, 삶의 진정한 가치인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모습은 마사지센터 밖의 사회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은유다. 비페이위는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삶의 정수를 빚고 자아를 쌓아올리는 마사지사들의 삶을 빌려 묻는다. 마사지센터 밖의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진짜 눈먼 이는 누구인가, 하며.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소설을 집어든 순간 바로 사로잡혔다. 러우예([마사지사] 영화 감독)
소설 속 어두운 마사지방, 우리의 상상과 생각이 닿지 않았던 그곳에서 우리의 삶,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이 예리하게 꿰뚫린다. 리징저(문학평론가, [인민문학]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