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린이는 누구인가?
어린이라는 코드로 새롭게 읽어 보는 문화
아이를 통틀어 어린이라 부르지만,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어린이도 있고, 어린이보다 더 어린이 같은 어른도 있다.
어린이는 현실에 있는 존재인가, 어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존재인가.
어린이는 어른이 되면 사라지는 존재인가, 계속 자라나는 존재인가.
어린이 자신이 생각하는 어린이는 누구인가?
어린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고 미래의 주체로 세운
1900~1940년대 근대 어린이 잡지,
어린이의 여러 얼굴을 담은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
오늘날 어린이가 꿈꾸는 환상 세계와 성장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어린이와 함께, 어린이라는 코드로 새롭게 읽어 본다.
목차
시작하는 글 어린이를 찾아서
1. 역사 속의 어린이
어둠을 깨치는 조선시대 아이들
'어린이'와 어린이 문화의 탄생
근대 잡지 《소년》/ 어린이 신문 《붉은 저고리》/《아이들보이》의 세계/《어린이》탄생
2. 그림 속의 어린이
몸이 자라면 마음도 달라질까
시대의 표정, 어린이의 얼굴
조선시대의 어린이--의젓한 작은 어른/ 꿈꾸는 어린이--이중섭의 어린이
전쟁과 어린이--박수근의 어린이/ 아이 같은 어른, 어른 같은 아이--장욱진의 어린이
어린이 마음에 들어온 세상/ 모두 내 얼굴
3. 환상 세계의 어린이
어린이들은 왜 환상적인 것을 좋아할까
어린이가 꿈꾸는 어린이 세계
해리포터를 꿈꾸는 아이들/ 해리포터, 새로운 어린이상/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 환상의 발명품, 호그와트
4. 어린이는 자란다
피터 팬은 왜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마틸다는 누가 지켜줄까/ 마당을 나온 잎싹은 무엇을 꿈꾸었나
5. 움직이는 어린이
시작을 꿈꾸는 나에게/ 내가 쓰는 내 이야기
저자
최기숙 (지은이)
출판사리뷰
어린이, 그 정체성을 찾아--다시 묻는 어린이란 누구인가
어떤 어린이는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듣고, 어떤 어른은 어린애 같다는 핀잔을 듣는다. 어떤 어린이는 어른들 문화를 즐기고, 어떤 어른은 만화나 놀이에 빠져 지낸다. 어린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어른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린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특정한 시기를 말하는 걸까, 인간의 특질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른이란 또한 무엇일까?
아이와 어른의 구분 자체는 역사적인 것이라 논해진다. 역사적으로 어린이라는 개념은 근대시기에 들어와서 생겨났으며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어 왔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아이는 어른의 모습으로, 축소된 어른으로 그려졌을 뿐 아이들의 독자성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그때의 어린이는 오늘날처럼 제한된 의미가 아니라 젊은이 같은 의미로, 어른의 사회에 소속되었다. (필립 아리에스, 《아동의 탄생》)
아이와 어른의 분할은 놀이와 노동의 분할과 연계되고, 아동의 발견은 전통적인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사회로의 재편의 움직임의 맥락에서 이해되기도 한다.(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아동의 발견〉《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
또한 어린이를 물리적인 나이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학교의 탄생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어른과 어린이는 교육의 주체와 대상으로, 수직적인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진다. 결국 어린이는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관념이며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만들어져가는 개념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새삼스레 어린이의 기원을 찾거나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펼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구전 설화에 나타난 어린이 이미지에 관한 의미있는 분석을 한 이래(《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책세상, 2001) 어린이와 어른, 성장 같은 주제를 가지고 꾸준히 연구해온 저자 최기숙 교수는 오늘 다시, 개인적이자 소박한 질문을 던진다. 너희 어린이는 누구이며, 어른인 내 속에 있는 어린이는 또 누구인가?라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어린이를 대상화하지 않고 어린이와 함께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 문화 속의 여러 어린이의 모습을 만나 보며 스스로 어린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에 함께 나서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 어린이의 자화상과 미래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도 그려 보고자 한다.
어린이와 어린이 문화의 탄생 -- 우리나라 근대 잡지 맛보기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는 근대 이후에 생겨난 개념이다. 조선시대에 어린이는 어리석은 자를 일컫는 의미였다. 그 시대 아이는 작은 어른과 같은 존재로, 그리 귀히 여겨지지 않았고 시대의 가치관, 즉 효(孝) 같은 유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아이들을 바람직한 아이 상으로 내세워 기록에 남겼을 뿐이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인물전, 묘지의 기록들을 두루 살피며 당시의 어린이상을 보여준다.
오늘날 같은 의미의 어린이가 태어난 시기는 1900년대. 최남선, 방정환 같은 근대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세대로서 소년 어린이에 기대를 걸며 문화운동을 활발히 전개한다.
흔히 방정환을 어린이라는 말의 창시자라고 하지만(그 말은 그 전부터 있었다.) 그 사실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른보다 열등한 작은 어른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했다는 것이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새로운 세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서의 소년이나 어린이에 거는 기대는 그들을 위한 활발한 문화운동, 잡지 출간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는 1908년 최남선이 주도하여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소년》과 최초의 어린이 신문 《붉은 저고리》(1913.1)), 잡지 《아이들보이》(1913. 9), 그리고 방정환이 창간한, 순수히 어린이만을 위한 잡지 《어린이》(1923. 3)의 탄생까지 어린이 문화의 태동과 흐름을 짚어 본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읽혔던 근대 잡지의 일면을 보는 의미와 재미는 각별하다.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오히려 풍성했음은 어린이, 즉 새로운 세대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음을 느끼게 한다.
근?현대 화가들이 그려 낸 어린이 얼굴, 어린이 마음--이중섭에서 피카소까지
그림에 담긴 어린이의 모습에는 어린이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관념 등 시대의 표정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고 화가들마다의 독특한 시선과 해석이 살아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그려진 아이들은 작은 어른의 모습으로 의젓하기만 하다. 신선도(神仙圖)같이 환상의 세계를 그린 그림에서도 어린이는 어른을 도우며 배우는 점잖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과 같은 근?현대 화가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어린이를 담아낸다. 아련한 추억의 빛깔(박수근), 아이와 어른이 닮아 있는 동화적 풍경(장욱진) 등은 익히 친숙한 작품 세계이지만, 흔히 천진난만한 어린이, 꿈꾸는 어린이로 연상되는 이중섭의 그림 한편에서 소년의 쓸쓸한 표정과도 새롭게 만나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그리고 뭉크, 피카소의 작품 속 어린이는 각각의 표정, 세상을 담고 있다. 모래 장난, 비눗방울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들의 무심한 표정이 있는가 하면, 병과 죽음을 대하는 표정, 전쟁의 그늘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어린이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매일 노는 것 같지만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어린이천국은 어른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환상이 아닐까요?
-- (본문〈시대의 표정, 어린이 얼굴〉중에서)
천진난만함으로 표현되는 어린이 마음, 동심 또한 어린이에 투영된 하나의 관념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함께 어린이의 순수한 얼굴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발견하는 화가들의 시선에서도 과연 어린이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되받게 된다.
어린이가 꿈꾸는 어린이 세계--해리포터를 읽는 아이들
전 세계 어린이를 하나로 묶은《해리포터》. 이 소설의 성공은 무엇보다 매혹적인 환상세계를 그려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 혹은 어른들은 왜 환상을 좋아할까?
저자는 현실과 무관한 세계로서의 판타지, 환상세계를 논하기보다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분석하면서, 어린이들이 즐기는 환상이 현실과 매우 닮아 있으며 어린이들의 고민을 풀어가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리포터》는 물론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던 동화들은 대부분 현실의 고민을 환상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환상 세계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도 책을 읽는 어린이가 접하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경험하고 헤쳐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리포터》라는 환상 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환상이 현실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지 만, 사실 두 세계는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환상 세계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오목거 울에 비춘 것처럼 낯설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실과 비슷한 것, 현실엔 없지만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현실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환상을 알면 현실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 (본문 〈환상이 보여 주는 현실〉중에서)
다시 생각하는 성장의 의미
어린이는 모두 성장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계속 자라나 언젠가는 어린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어린이로부터 벗어난 어른들은 어린시절을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는다.
《피터 팬》은 어린시절에 영원히 머물고 있는, 성장을 거부한 아이 피터에 대한 이야기다. 영원한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네버랜드에서 피터의 삶은 신나고 즐거운 일로만 가득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피터 역시 천사와 같은 어린이와는 거리가 멀다. 못되게 굴 때의 피터는 악당 후크 선장과 구별하기가 힘들 정도다. 후크 선장도 원래부터 악한 인간은 아니었다.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후크 선장을 악당으로 만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영원한 어린이가 된 피터처럼.
《피터 팬》의 어린이 천국 네버랜드는 환상적이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그 것은 네버랜드가 성장이 멈춘 세계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어린이에게는 두려움이기도 한다. 성장이란 말에 성장통이 뒤따라오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성장은 피할 수 없는 고통도 아니요, 어린이만의 것도 아니다. 황선미 작가의 동화《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꿈꾸는 자에게 성장은 계속된다"는,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새겨 본다.
새로운 어린이 문화의 주인공은 나
지난 시대에 비해 오늘날 어린이 문화와 인식은 현저히 발전한 게 사실이다. 어린이는 그 어느 때보다 존중받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는 보호와 교육의 대상이다.
어린이와 함께 지난 역사와 문화 속의 어린이의 모습을 만나온 저자는 이제 어린이 스스로 어른들의 관념이 빚어낸 어린이상이나 수동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어린이 문화의 주체로 설 것을 권한다.
그 시작은 스스로의 생각을 자신 있게 펼치는 데 있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글쓰기로, 자신과의 정직한 만남을 통해 세상과의 만남도 시작된다는 것이다. 어린이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찾고, 더 많이 생각하고 표현할수록 어린이의 삶, 문화도 움직이며 풍부해질 것이라는 소박한 결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