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맑스주의 문학?문화이론가로 꼽히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단일한 근대성: 현재의 존재론에 관한 에세이』(A Singular Modernity: Essay on the Ontology of the Present)가 출간되었다. 근대성과 모더니즘은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며 여러 분야에서 가장 논쟁적으로 토론되는 주제다. 지금까지의 근대성 연구가 주로 근대성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데 반해, 제임슨은 근대성과 모더니즘 둘 다 서사범주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용어임을 분명히 하면서 맑시즘적인 ‘역사화’를 통해 근대성과 모더니즘이라는 범주의 탄생과 번성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들을 밝힌다.
목차
서문: 우리 시대의 퇴행
1부: 근대성에 관한 네가지 격언
이행양식들
2부: 이데올로기로서의 모더니즘
결론: “절대적으로 모던해져야 한다”
주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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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레드릭 제임슨
출판사리뷰
‘근대성’이라는 용어에 대판 비판과 해체
「1부: 근대성에 관한 네가지 격언」은 근대성 담론에 대한 제임슨식 (맑스주의적) ‘해체’를 통해 ‘근대성’이라는 단어/용어를 이데올로기적?형식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근대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에 핵심적으로 필요한 ‘방법론적 교정’이면서 논의가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사전 작업이다. 제임슨은 이러한 이데올로기 비판 또는 해체를 통해 추출한 구체적인 주의사항을 네가지 격언 형식으로 제시한다.
첫번째 격언은 시대구분의 불가피함에 대한 것이다. 제임슨은 낭만주의와 르네상스, ‘고대’와 ‘중세’의 탄생 등 과거와 현재, 미래가 관계 맺는 역사성에 주목하며 이를 “단절(break)과 시대(period)의 변증법”으로 풀어낸다. 이때 핵심은 이중적인 움직임으로, “한편에서는 연속성의 중시, 곧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음새 없는 이행에 대한 고집스럽고 확고한 강조가 서서히 근본적 단절에 대한 의식으로 바뀌고,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단절에 집중된 관심이 점차 그 단절을 하나의 자체적인 시대로 바꾼다.”(33면) 이를 통해 “ ‘근대’와 ‘근대성’이라는 용어는 (…) 언제나 일정한 형태의 시대구분 논리를 동반하기 마련”(38면)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어서 제임슨은 “‘근대성’이라는 비유가 늘 이전의 서사 패러다임들에 대한 이런저런 다시쓰기이며 강력한 치환”(46면)이라고 지적하며 ‘근대성’이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범주라는 두번째 격언을 제시한다. 또한 “미래 예측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 분석에서 근대성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몇몇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근대성 서사를 비판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며 “근대성에 관한 개념적 설명을 공들여 만들어내려는 헛된 시도를 그만”(52면)둘 것을 권고한다.
나아가 근대성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을 비판하는 다른 방법으로 근대성을 구성하는 주관/객관 분리의 창시자로서 데까르트와 ‘코기토’ 개념과 이 개념에 대한 하이데거의 견해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제임슨은 의식의 재현과 주체/객체, 자아, 존재 등의 중요한 개념적 분기점들을 다루며 하이데거의 근대성 서사를 해부하고 그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입증한다. 마침내 자유, 개인성, 자의식 또는 반영성으로 대표되는 주관성 개념들까지 조목조목 비판함으로써 “의식과 주관성은 재현 불가능”하고, “근대성의 서사는 주관성 범주들을 중심으로 구성될 수 없다”(71면)는 세번째 격언이 완성된다.
마지막 격언은 여러 근대성들을 ‘분리’해내는 개념으로서 베버의 ‘합리화’, 루카치의 ‘물화’, 루만의 ‘분화’ 개념을 통과하며 다듬어진다. 이 과정에서 제임슨은 다양한 근대성 담론에 연루된 각종 자가당착과 자기모순을 밝혀나가며 그 이데올로기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또한 “더 저변에 있는 개념적 문제점”으로서 “숱한 변화를 수반하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상황을 마주하고도 여전히 낡은 근대성 개념들을 고집하는 문제”(110~11면)를 언급하며 루만의 근대성 이론이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로 상황이 변화했고 이에 따라 새롭게 수정된 이론적 반응이 요구됨에도 이를 받아들이거나 분석하지 못하고 그럴 시도조차 없다는 점을 꼬집는다. 이를 통해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단절이라는 가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근대성 ‘이론’은 오늘날 성립할 수 없다”(111면)는 네번째 격언을 제시한다.
근대성의 근본적인 의미는 전세계적 자본주의 그 자체다
1부의 핵심은 근대성은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이자 서사범주이고 근대성 담론은 근대성이라는 비유가 투사된 서사이며 그것도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서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대성 담론에서] 근대라는 본질적으로 퇴행적인 개념은 있음 직한 체제적 변화들에 저항과 타성으로 맞서기 십상이다. 근대성은 주어진 역사적 순간에 주어진 체제 안에서 얻어진 것을 기술하므로 그 체제를 부정하는 것에 관한 신뢰할 만한 분석을 내놓으리라고 기대될 수 없다.”(108~9면)는 말이 이 책에서 근대성 담론의 이데올로기성을 가장 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90년대 이래의 근대성 담론들이 대체로 ‘전지구적 자유시장’ 논리를 배후로 삼고 있으며, 근대화론과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기묘한 결합이라고 밝힌다. 이는 “근대성의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의미론은 자본주의와의 연관에 있다”(20면)는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하여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임슨은 근대성과 ‘단일함’과 단수성을 강조하고, 각종 다중 근대성과 대안 근대성 논의에 확고하게 반대한다. 그런 담론들은 기존 근대성 담론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언뜻 보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듯 보이지만 이러한 각종 ‘다른’ 근대성이 자본주의와의 연관이라는 특별히 내실있는 의미장을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며, 나아가 근대성의 본질을 가리는 이데올로기적 책략이고 ‘문화주의적’인 담론이라는 한계를 지적한다.
“현재의 존재론은 과거의 예보가 아니라 미래의 고고학을 요구한다”
근대성/모더니즘 담론의 현재적 의미
1부의 근대성 논의가 마무리되면 남아 있는 유효한 범주인 미적 모더니즘에 대한 2부의 이데올로기 분석이 이어진다. 1부와 2부 사이에 있는 「이행양식들」은 제목처럼 근대성 비판에서 모더니즘 분석으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방법론적 사전작업에 해당하는데, 폴 드 만의 알레고리론에 관한 논평을 비롯하여 독자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담고 있다. 책 전반에 걸쳐 제임슨 스스로가 강조하는 ‘변증법적’ 사유방식과 그의 ‘역사화하라’는 권고의 모범 또한 만나볼 수 있다.
「2부: 이데올로기로서의 모더니즘」에서는 1부의 근대성과 마찬가지 방식의 사전작업이 전개된다.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하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기보다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단어를 어떤 것으로 다루어야 하는가를 먼저 정리한 것이다. 제임슨은 개별 텍스트들이 체현하는 모더니즘적 실천과 체계적으로 이론화된 모더니즘 담론(곧 이데올로기)을 구분하고, 다른 한편으로 본격 모더니즘과 후기 모더니즘의 구분, 실천과 담론의 구분 등 독특한 모더니즘론을 전개해나간다. 이에 따라 모더니즘은 대략 2차대전까지의 ‘고전적’ 내지 ‘본격’ 모더니즘과 전후 시대가 완전히 끝난 냉전 이래의 ‘후기’ 모더니즘으로 구분된다.
또한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는 후기 모더니즘 시대의 모더니스트들이 본격 모더니즘의 미학적 실천을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즉 실제 본격 모더니즘 작품들과는 조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론화한 것으로, 모더니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이론들이 사실상 모더니즘 이데올로기임을 밝힌다. 궁극적으로는 모더니즘 이론의 핵심은 ‘새로움’, ‘내면성’ 등이 아니라 문학/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정리된다.
마지막으로 제임슨은 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현재의 존재론이라는 기획은 지속하는 반면 근대성 담론을 재발명하려는 쓸모없는 시도는 폐기해야”(246면) 한다며 현재 시점의 근대성/모더니즘 논의가 ‘포스트모던’한 역사적 상황을 도외시한 채 낡은 주장들을 되풀이하는 것은 이론적인 해이라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라 불리는 욕망으로 근대성이라는 주제를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일”(247면)이라는 제임슨의 권고는 낡은 근대성의 언어가 재포장되어 회귀하는 ‘우리 시대의 퇴행’을 인지하고 이를 생산적인 논의로 이끌어나갈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