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적인 실크로드학과 문명교류학의 대가 정수일(鄭守一)의 새 저서가 출간되었다. 『우리 안의 실크로드』는 저자가 지난 11년간 국내외에서 개최된 실크로드 관련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 형식으로 발표한 논문 가운데 22편을 골라 엮은 것으로, 『문명교류사 연구』(2002)와 『문명담론과 문명교류』(2009)에 이은 세번째 논문집이다. 그동안 『신라ㆍ서역교류사』(1992) 『씰크로드학』(2001) 『고대문명교류사』(2001) 『실크로드 사전』(2013) 『해상실크로드 사전』(2014) 『실크로드 도록: 육로편』(2014) 『실크로드 도록: 해로편』(2014) 『실크로드 도록: 초원로편』(2019) 등 개설서와 전문서를 비롯해, 탐험기 『실크로드 문명기행: 오아시스로 편』(20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2010) 『문명의 보고 라틴아메리카를 가다』(2016)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2018) 등 여러 저서를 출간해온 저자는 이들 저술 외에 소정된 주제에 관해 심층적인 전문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술논문 역시 꾸준히 발표해온바, 이는 ‘학문의 진주는 논문에서 캐낸다’는 저자의 학문적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시의성(時宜性)에 부합하는 주제의 논문 집필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실천에 진력해온 결과물인 이 논문집은 다양하고 심원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그의 일생의 학문적 목표인 실크로드학 및 문명교류학과 관련된 글들을 각기 1부와 2부로 구성했으며, 중국어 논문 3편과 영어 논문 1편을 중국어와 영어 독자들과의 지식의 공유를 위해 3부 부록으로 함께 실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실크로드
1. 우리에게 실크로드란 무엇인가
2. 실크로드의 개념에 관한 동북아 3국의 인식
3. 실크로드와 ‘일대일로’
4. 해상실크로드의 환지구성 문제를 논함
: 중국의 ‘21세기 해상실크로드’ 예를 중심으로
5. 해상실크로드와 한반도
6. 북방 유라시아유목문명의 대동맥, 초원실크로드
7. 쿠르간과 초원실크로드의 복원
8. 희세의 풍운아 콜럼버스
9. 실크로드와 경주
10. 실크로드의 규범서, 『실크로드 사전』
제2부 문명교류
1. 문명교류의 전개약사
2. 동북아시아의 문명유대와 평화
3. 동북아 해로고
: 나당해로와 여송해로를 중심으로
4. 영산강과 동아시아의 문명교류, 그 이해와 평가
5. 알타이문화대와 한반도
6.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오래된 만남
7. 『지봉유설』 속 외국명 고증 문제
8. 『왕오천축국전』 연구의 회고와 전망
제3부 부록
1. The Silk Road and Gyeongju
2. 論海上絲綢之路的環球性問題
: 以中國所提‘21世紀海上絲綢之路’爲例
3. 海上絲綢之路與韓半島
4. 東北亞的文明紐帶與和平
주
수록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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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수일
출판사리뷰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역사적 위상
이 책의 총론 격인 「우리에게 실크로드란 무엇인가」에서는 초원실크로드, 오아시스실크로드, 해상실크로드 등 3대 간선 실크로드를 통해 내려진 한민족의 혈통적?역사문화적 뿌리와 실크로드 위에서 이어져온 한민족과 세계의 소통을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한국 속의 세계’와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을 확인한다. 우선 아프리카에서 동진해 한반도의 중심을 가로질러 라틴아메리카의 최남단 우수아야에까지 이른 고대 인디언들의 이동을 밝히는 한편, 1천여개의 동음동의어와 일치하는 어순을 공유하고 있는 남인도 타밀족 언어와 한국어의 상관성이 두 지역 간의 교류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해상실크로드와 한반도」도 함께 참조). 그리고 일본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요시미즈 쓰네오(由水常雄)가 로만글라스와 황금보검 등 신라의 로마 관련 유물들을 30년 동안 연구한 끝에 자신의 책의 제목을 『로마문화의 왕국, 신라』라고 할 정도로 파격적인 평정(評定)을 내렸다고 서술하면서, 신라와 로마 간에 활발히 이루어진 문화교류를 조명한다.
또한 한국이 현존하는 세계의 고대 금관 유물 10점 중 7점(가야 1점, 신라 6점)을 점하고 있는 사실과 함께, 중세 아랍의 위대한 지리학자인 이드리씨(Ibn al-Idr?s?)의 언급을 비롯한 중세 아랍의 문헌기록에서 신라를 ‘이상향’ ‘황금의 나라’로 선망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이를 통해 기원을 전후한 시기 황금의 성산지(盛産地) 알타이를 중심으로 동서에 형성된 황금문화대의 동단에서 신라가 이 황금문화대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음을 역설한다. 이외에 블라지보스또끄 북방에 자리했던 발해의 한 고성인 노보고르데예프까성에서 8세기의 중앙아시아 소그드(현 우즈베끼스딴) 은화가 발견된 사실 등을 밝히는 등 독자로 하여금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역사적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실크로드학’의 학문적 정립의 완결
그간 저자는 ‘실크로드학’의 학문적 정립을 위해 근 20년 전 초유의 기본서인 『씰크로드학』을 간행한 것을 비롯해, 『실크로드 사전』(한?영)과 실크로드 3대 간선 도록(한?영 6권)을 집필함으로써 ‘해상실크로드의 환지구성’ 등 새로운 개념이 학계의 정설로 자리잡도록 힘써왔다. 이러한 노력은 이 책에도 담겨 있는바, 실크로드에 대한 기존 학계의 편견, 특히 중국의 중화중심주의적 시각의 오류를 논파한다. 그중 통념으로 굳어 있으면서 실크로드를 유라시아 구대륙에만 한정하는 국한론(局限論)에 대해서, 이는 인간의 인지도의 심화에 따라 중국-인도로 단계에서 형성된 이래 단선적(單線的)인 오아시스로 단계와 복선적(複線的)인 3대 간선 단계를 거쳐 환지구로(環地球路) 단계로 부단히 확대되어온 실크로드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환지구로 단계란 해상실크로드가 아메리카대륙으로까지 뻗은 단계, 즉 해상실크로드의 환지구성이 실현된 단계라고 주장하며 진부한 통념의 혁파에 앞장서는데(「해상실크로드의 환지구성 문제를 논함」), 이러한 저자의 연구업적을 통해 현재 학계에서는 ‘국한론’이 점차 수그러지고 ‘환지구론’이 승세를 굳혀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한반도 관련 글들(「우리에게 실크로드란 무엇인가」 「해상실크로드와 한반도」 「실크로드와 경주」 「동북아 해로고」 등)에서 한반도를 세계 문명교류 통로인 실크로드에서 소외시켜온 ‘문명중심주의론’자들의 부당한 편견을 날카롭게 반박하면서 실크로드의 ‘한반도 연장론’을 주장한다. 실크로드의 한반도 ‘소외론’은 실크로드 연구를 한국이 선도하면서 ‘한반도 연장론’으로 대체된 상황이며, 이는 「실크로드와 경주」가 지난해 제5회 세계실크로드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수상(관련 도판 415면)한 데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실크로드학의 학문적 정립이 완결로 치닫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나타난 편향에 대한 질정
실크로드의 ‘개척자’이자 ‘연구자’로 자임해온 중국은 근래 이른바 ‘일대일로’라는 전지구적 전략구상을 내놓으면서 수많은 대내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크로드의 환지구성이 몰각되는 등 여전히 진부한 구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그러한 ‘자임’에 위배되는 편향에 빠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최근 중국 학계에서 강세로 대두하고 있는 실크로드와 ‘일대일로’의 ‘상관성 부정론’인데, 그 주창자들은 이 두 현상의 시대적 배경과 포괄범위, 경제교류 방식, 교통수단 등에서의 ‘본질적인 부동(不同)’을 이유로 2천년 전의 퇴물인 실크로드와 오늘날의 ‘창신(創新)’인 ‘일대일로’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성도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실크로드와 ‘일대일로’」). 그러나 저자는 그같은 주장이 오늘날까지도 간단없이 변화 발전해오고 있는 동태적(動態的)인 실크로드의 면모를 외면한 정태적(靜態的)인 단순비교 논리라고 비판하면서, 전래의 통념화된 실크로드 국한론의 극복과 문명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에 대한 바른 이해를 중국 학계에 제언하고 있다.
‘술이작(述而作)’이라는 학문적 창의성의 본보기
저자가 보기에 겸양을 의미하는 동양의 전통적인 ‘술이부작(述而不作)’은 오늘날의 학문 연구자의 자세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선인의 것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새것을 창작하다’라는 뜻의 ‘술이작’이 학문의 발달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학구적 태도이다. 저자는 영산강문화의 생성요인에 관한 분석에서 이같은 ‘술이작’의 창의적 모본을 보여주고 있다(「영산강과 동아시아의 문명교류, 그 이해와 평가」). 지금까지는 영산강 양안의 넓은 평야지대와 그로 인해 생긴 생활환경의 ‘호조건(好條件)’이 영산강문화의 생성 요인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생존에 대한 일종의 도전인 불리한 환경에 인간이 적극 대응해 이를 극복할 때에만 문명은 생성될 수 있다는 토인비(A. J. Toynbee)의 이른바 문명 생성의 ‘도전과 응전의 법칙’에 의거해, 입지조건이나 자연환경으로 볼 때 영산강문화는 섭해성(涉海性)이 강하고 고온다습한 남방 해양문화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해양성 농경문화인 영산강문화의 수문환경과 자연지리환경에 관한 방대한 사료를 섭렵하고 연구한 끝에 영산강문화는 그 문화 주체들이 자신들에 대한 엄혹한 도전인 숱한 ‘악조건’(305~307면)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생성될 수 있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문화 생성의 ‘도전과 응전의 법칙’이 한반도에서 창의적으로 적용된 일례라 하겠다.
한국학의 연구지평 확대의 실천적 예시
저자가 소장으로 있는 한국문명교류연구소는 월 2회씩 ‘세계인식에 관한 한국고전 독해’라는 이름의 연구모임을 갖고 한국고전에 대한 독해와 발표 등 심층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지봉유설』 속 외국명 고증 문제」도 그 결과물 중 하나로, 이 글은 한국의 첫 백과전서 격인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속에 등장하는 87개 외국명의 고증을 통해 고전한국학 연구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역사?문화의 남?북방 뿌리, 한민족과 몽골족 그리고 인디언 간의 DNA 공유, 로마를 비롯한 다양한 외국 문명의 한반도 전래, 한글의 언어학적 계통과 친족어, 고대와 근현대의 한민족 해외이민사, 한반도 내에 산재한 숱한 외래 유물과 인물의 연혁 등등 한국학의 연구지평을 크게 확대해야만 해명 가능한 일련의 학술적 문제들을 예시하는바, 이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저자의 연구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