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강대국 문명 중심의 역사관에서 배제된 ‘미지의 땅’
기록되지 않은 99.7%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고고학의 향연
‘세계 4대문명’이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 모두 역사 과목을 배울 때 당연시하며 암기해왔던 이 표현이 실은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을 담고 있다면? 강대국의 시각에서 서술되어온 고대사에서 배제된 기억을 복원하고 균형 잡힌 역사적 안목을 제안하는 고고학자 강인욱의 책 『테라 인코그니타: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는 ‘미지의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이민족과 괴물이 사는 이질적인 곳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돼왔다.
저자는 문명과 야만, 중심과 변방, 자아와 타자라는 이분법과 편견을 극복하고 다차원적이며 다자적인 새로운 역사관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최신 고고학 자료를 활용해 고대사의 쟁점들을 살펴본다. 인류 역사의 99.7%는 기록이 시작되기 전의 역사거나 문자 기록문화가 없던 지역의 역사이기 때문에 인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선 고고학 자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쉽게 야만으로 치부돼온 이 99.7%의 역사들이 실은 지금까지 인류를 만들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경제구조와 코로나19가 가져온 큰 변화로 선진국으로 꼽히던 나라들의 허술함이 드러나는 반면 중국과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전환의 시대에 편견과 폭력을 극복하고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일깨워줄 것이다.
목차
책을 시작하며 새로운 문명의 전환점 앞에서
프롤로그 미지의 땅을 향하여
1부 오랑캐로 치부된 사람들
구석기시대, 문명이 싹트다 / 아메리카 원주민은 어디에서 왔을까 / 전염병을 이겨낸 신석기시대 사람들 / 식인 풍습은 미개함의 상징인가 / ‘악마의 자손’이라 불리던 사람들 / 우리 역사 속의 서양인 / 일본열도의 진정한 주인
2부 우리 역사의 숨어 있는 진실, 그리고 오해
공자는 동이족인가 / 기자조선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 고대 중국인을 매혹시킨 고조선의 모피 / 상투를 튼 고조선 사람들 / 흉노가 애용한 우리의 온돌 / 신라인은 흉노의 후예인가 / 신라의 적석목곽분 미스터리
3부 상상의 나라를 찾아서
시베리아의 아틀란티스와 태양의 후예 / 겨울왕국은 어디에 있을까 / 외계인으로 오해받은 편두머리 귀족들 / 코로나를 쓴 샤먼 / 티베트고원의 숨겨진 나라 / 황금의 나라를 찾아서 / 냉전의 벽을 뛰어넘어 풀어낸 마야 문명의 비밀
4부 분쟁과 약탈의 고대사
인디애나 존스로 재탄생한 미국의 실크로드 약탈자 / 일본의 자기모순적 역사관과 기원 찾기 / 임나일본부, 일본이 만들어낸 모순된 역사 / 중국이 홍산문화에 열광하는 이유 / 극동의 변방에서 터키의 기원을 찾다 / 마약으로 쌓아올린 박물관
에필로그 영화 「기생충」의 오브제로 풀어보는 테라 인코그니타
글을 마치며 닫히는 빗장을 다시 여는 느낌으로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강인욱
출판사리뷰
근대 문명관에서 배제된 고대사의 주역들
우리 역사에도 있는 ‘미지의 땅’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미개인이나 야만인으로 치부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습관이지만 단순히 무지한 옛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탐험의 시대에 서구인들은 각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현지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놀림감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20세기 초반 유럽에는 각지의 사람들을 모아서 살게 한 ‘인간 동물원’(Human Zoo)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도 실은 제국주의 국가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가득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세기 전반 나치의 등장으로 인종주의가 절정에 달하면서 결국 끔찍한 대학살을 낳았는데, 그 기저에는 ‘아리안주의’라는 왜곡된 역사관이 있었다. 이처럼 역사의 편견을 바로잡는 것은 단지 과거를 알려주는 것을 넘어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인종주의의 근원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고대는 흔히 야만으로 치부되곤 한다. 또한 변경 지역일수록 이런 이미지가 더욱 강화된다. 오늘날 우리가 고대를 보는 관점은 실제로 19세기 제국주의 고고학이 제시한 ‘4대문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최신 고고학 자료들은 이들 4대문명만이 고대의 중심지였거나 특별한 ‘문명’이었다는 편견을 반박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흉노는 고대사의 주역이었으나 오늘날 과소평가된 대표적 사례다. 아메리카 곳곳에 고도의 문명을 꽃피운 원주민들은 서구인들이 아메리카를 점령하면서 몰락했지만 곳곳에 거대한 고분과 도시 등의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문명’은 유럽 등 소수 지역에만 존재했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백인 연구자들은 오늘날까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남긴 유적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을 꺼린다. 유라시아 전역에서 각 문명의 교류를 실현하고 황금색 문화를 꽃피웠지만 중국을 괴롭혔던 오랑캐 이민족 정도로 동아시아에서 인식되는 흉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변 지역에 대한 무지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수도 위주, 국경 위주의 좁은 역사만 공부해온 한국에도 ‘테라 인코그니타’가 많다. ‘삼국시대’는 가야의 역사를 빼놓은 말이고, 강원도, 경상북도 북부 등 오늘날 인구가 적은 지역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무시된다. 북한 지역의 역사는 더욱더 미지의 영역이다.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과 고려의 수도인 개경만 간신히 기억할 뿐, 그밖의 지역은 알려진 것도 적고, 관심도 많지 않다. 함경도는 조선 개국의 요람이며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과 접경한 유라시아적인 의의가 있는 지역임에도 지금껏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거란, 여진 등 오랜 시간 우리와 교류해온 것이 분명한 이웃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선 관심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저자는 이러한 무지와 편견을 깨기 위해선 유라시아의 시야에서 교류의 역사를 증명하는 기존의 고고학 자료들을 재해석함으로써 한국 고대사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잊힌 여러 지역과 민족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동북공정 등을 통해 변경지역의 역사를 전유하고 자기 역사의 무게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역사관이나, 스스로를 추켜세우기 위해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일본의 역사관을 답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의 상상과 욕망을 투영하는 역사
약탈과 이데올로기 선전의 대상에서 인류 이해의 발판으로
고고학자는 인류가 막연하게 상상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비밀을 실제 발굴을 통해 찾아내기도 하고 오해를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이 책에는 이런 점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한다. 겨울왕국, 아틀란티스, 사제 요한의 왕국 등 신비로운 상상의 나라나 문명이 있다는 전설이 고고학 유물을 만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로 변모한다. 식인풍습이나 신석기시대 전염병 극복 이야기처럼 오늘날의 눈으로 보기에도 흥미진진한 주제도 있다.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황금 유물을 두고 벌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가망이 없어 보였던 마야 문자를 집념으로 해독해낸 유리 크노로조프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유라시아 고고학 전문가인 저자의 지식이 빛난다.
한편 고고학이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문화재를 강탈하면서 발달한 근대의 학문임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도 많다. 서구의 박물관에 넘치도록 진열되어 있는 약탈 문화재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후계자들이 여전히 그것을 전리품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폭력성이 이제는 점차 드러나고 있는데,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모델 랭던 워너는 실크로드의 불교 미술품들을 파괴하고 약탈한 주범으로 오늘날 지탄받고 있고, 아시아 유물을 대거 수집해 미국의 아시아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아서 새클러의 가문은 얼마 전 마약 스캔들로 오명을 얻어 각 기관들이 허겁지겁 그 이름을 지워내기도 했다.
제국주의 지배에서 탈피한 지역에서는 고고학이 신생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알리는 데 적극 활용되기도 한다. 네이멍구자치구의 훙산문화를 ‘중화문명’의 기원으로 소급하는 중국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영역에서 발견된 모든 유적들을 ‘중화’의 이름으로 빨아들이려는 움직임은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해가는 오늘날 더욱 문제시된다. 이 사례는 21세기에도 고대사와 고고학이 여전히 너무나 중요한 주제라는 사실 역시 환기하는데, 아직 연구가 크게 진척되지 않은 미지의 역사일수록 정치 이데올로기를 투영하고 선전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명의 전환점에서 다시 돌아보는 미지의 세계
저자는 이 책을 맺으며 미지의 땅과 역사는 ‘야만’도 ‘이상향’도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각자의 조건에 맞도록 살아온 터전이자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찬란하며 신비로운 옛이야기에 지나친 환상을 품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문화 속에 은근히 스며들어 있는 과거와 타자에 대한 편견 역시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임을 인정하되 객관적인 시각을 지향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예전처럼 지리적 한계를 넘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던 세계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인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고립되어 지냈다. 공교롭지만 장벽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고 갈망하며 살아왔던 과거 우리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도 할 수 있을까? 편견 없이 과거를 바라보았을 때 더욱 신선하고 흥미로운 역사 공부가 가능할 것이다. 세계가 바뀌는 만큼 우리의 눈도 더 밝아져야 한다. 앞으로도 힘차게 미지의 역사를 탐험해가고자 다짐하는 고고학자의 선언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