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의 전통과 현대를 한곳에서 만나다
호남성에 깃들어 있는 중국 문화의 정수
한문학의 석학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와 함께하는 중국 여행기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역사가 깊고 인문학적 가치가 높은 중국의 명소들을 찾아 저자와 다산연구소가 2015년부터 꾸려온 중국 기행 프로그램의 결실이다. 이른바 ‘코로나 시대’가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해외여행은 먼 일처럼만 느껴지는 요즘, 중국 인문 전통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이 책의 출간이 반가울 따름이다. 저자는 50차례 이상 중국을 드나들면서 답사한 중국의 인문유산에 시와 술과 차 이야기를 곁들여 문향(文香) 짙은 기행서를 내놓았다. “술술 풀어놓은 답사기에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얹은 탁월한 기행서”라는 평을 받았던 전작들에 이어 이번에도 중국의 여러 인문유산들을 통해 수천년 중화문명의 진수를 꿰는 탁월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번 시리즈 3권은 중국 호남성의 명소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호남성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장가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천연경관 못지않게 풍성한 인문학적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는 중국 4대 서원의 하나인 악록서원과 한나라 초기의 유물이 발굴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마왕퇴 유적, 중국에서 손꼽히는 호수 동정호와 천하의 누각 악양루가 있고, ‘초사’의 창시자 굴원과 시성 두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오늘날 중국을 만든 모택동과 유소기 등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이 나고 자라 그야말로 전통과 현대의 중국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목차
책머리에
호남성 답사길에 오르며
천년 학부 악록서원
중국술 1 주귀주
상강 안의 아름다운 섬 귤자주
중국차 1 호남흑차
중국의 피카소 제백석
여성 혁명가 추근의 신혼집
모택동 사상의 요람, 호남제일사범학교
중국공산당의 비밀 아지트 청수당
중국공산당 창건을 선도한 신민학회
소산 마을의 모택동 생가
적수동의 모택동 별장
수정주의자로 몰린 사회주의자 유소기
천하의 누각 악양루
중국술 2 악양루주
동정호 안의 ‘사랑의 섬’ 군산
중국차 2 군산은침
멱라강에 몸을 던진 우국시인 굴원
시성(詩聖) 두보의 묘소를 찾아서
중국술 3 무릉주
장사의 상징 천심각
장사 제일의 샘 백사고정
중국술 4 백사액
변방으로 좌천된 천재 문학가 가의
천년 고찰 개복사
세계를 놀라게 한 마왕퇴 한묘(漢墓)
중국술 5 검남춘
인문 기행 동행기 / 김정남 ㆍ 황상민
저자
송재소
출판사리뷰
“이 누각에 오른다면 기쁨이 크게 넘실거릴 것이다”
호남성 기행의 백미, 동정호와 악양루
호남성은 고대 중국에서 ‘남만’으로 불리며 오랑캐가 사는 지역으로 폄훼되었지만, 한나라 이후로 점차 중국에 편입되어 문화와 역사에 굵은 자취를 남겼다. 특히 호남성을 대표하는 동정호와 동정호를 상징하는 악양루는 중국 삼국시대 이래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악양루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오나라 명장 주유가 병사를 지휘했던 곳에 그의 후임인 노숙이 군사적 목적으로 누각을 지은 것이 그 시작이다. 『삼국지』 최고의 명장면인 적벽대전의 긴박한 이야기가 이곳 악양루 주변에서 펼쳐졌다.
이후 동정호는 군사적 목적보다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명소로 자리 잡았고, 많은 문인과 정세가가 이곳을 다녀간 뒤 글귀를 남겨 명승지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범중엄이 쓴 「악양루기」는 천하의 명문으로 애송되어 악양루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백, 두보, 백거이, 유우석 등 중국 문학의 거인들 역시 직접 악양루에 올라 그 감상을 시문으로 남겼다. 누각 안에는 두보가 악양루에 대해 남긴 시를 모택동이 옮겨 적은 글씨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오늘날 악양루를 찾는 이들은 중국 문학과 역사의 진한 향기와 더불어 바다처럼 펼쳐진 거대한 동정호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이를 경계로 호남성과 호북성을 나눌 정도로 거대한 이 호수를 보고 시인 이백은 다음과 같은 명시를 악양루 주련에 남기며 경치를 찬탄했다. “물과 하늘이 온통 한 색깔이요 / 청풍명월 경치는 끝이 없도다”
저자는 이번 3권에서 특히 다양한 건축물들의 ‘주련’에 주목했다. 주련은 기둥에 새긴 문장을 말하는 것으로, 한자문화권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이다. 건물의 품격을 높이고 장식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여겨져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보편화되었다. 해당 건물의 특징, 역사적 의의, 지리적 환경, 주인의 인품 등을 나타내는 구절을 기존 유명 시문에서 따오거나 주인이 직접 창작해 건물의 얼굴로 내세웠다. 주련은 당대 문화와 서체를 연구하는 귀한 자료인 동시에 중국 정신을 함축적으로 느낄 수 있어 그 가치가 크다.
현대 중국의 아버지 모택동의 고향
중국공산당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신중국 성립의 기틀이 이곳에서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호남성의 가치는 더욱 두드러진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원한 지도자 모택동의 고향인 호남성에는 그가 출생해 중국 혁명을 꿈꾸고 활동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소산 마을의 생가, 신혼집으로 쓰였던 청수당 등에서 유년과 청년 시절의 모택동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모택동이 수학한 호남제일사범학교는 송나라 시절부터 이어져온 전통 있는 교육기관으로, 악록서원과 함께 ‘천년 학부’로 불린다. 초기 중국공산당의 주요 인물들인 채화삼, 하숙형 등이 이곳에서 모택동과 함께 혁명을 꿈꿨다. 이들은 혁명단체 신민학회를 조직하고 중국공산당에 깊숙이 참여해 점차 주요 인물로 성장했다.
여기서 조금 더 반경을 넓힌다면, 모택동과 함께 초기 중화인민공화국을 주도한 유소기, 중국 인민군의 핵심 팽덕회의 생가 역시 호남성에 있어 모택동 생가와 더불어 ‘홍삼각’을 이룬다. 저자는 유소기 생가를 방문해 말년에 문화대혁명으로 비참하게 숙청된 유소기의 일생을 떠올린다. 이들보다 조금 앞선 시대를 살았던 혁명가이자 여성해방 운동가 추근이 거주했던 집과 모택동이 말년에 거주하고자 지었던 별장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처럼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곳 호남성 답사의 큰 매력이다.
술과 차는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이자 정신
코로나 시대에 간접 체험하는 고품격 인문 기행
중국문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인 시와 술과 차를 기행의 핵심주제로 끌어올린 것은 이 시리즈만의 장점이다. 한평생 한문학을 공부한 한시 전문가이자 애주가, 다도가로 유명한 저자는 역사의 현장에 새겨진 옛이야기뿐 아니라 본인이 직접 맛보고 경험한 일화들을 담아 중국인들의 일상에 깃든 시·술·차의 정신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번 권 역시 호남성의 술과 차를 비롯한 7가지 음료를 소개하고 있어 중국술과 차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술① 주귀주: 우리말로 번역하면 ‘술 귀신’으로, ‘뛰어난 품질을 지닌 술’을 말한다. 다양한 향을 가지고 있어 ‘중국 백주의 집대성’이라고 불린다. 술병의 디자인도 뛰어나다.
중국술② 악양루주: 호남성의 명승 악양루, 동정호, 군산도의 정취를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술맛 또한 뛰어나다. 이백이 악양루에서 술을 마시며 불렀다는 절창을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술③ 무릉주: 상덕시의 옛 이름을 딴 술로, 송나라 때 크게 번창했다는 최씨주가에서 비롯되었다. 호남성 명주로 선정되어 전국적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중국술④ 백사액: 호남성을 대표하는 백주로, 장사의 유명한 백사고정의 물로 빚은 술이다. 모택동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중국 3대 명주의 반열에 올라 ‘호상모태’로 불리기도 했다.
중국술⑤ 검남춘: 사천성의 명주로, 이름은 당나라 때 행정구역인 검남도에서 유래했다. 이 지역의 깨끗한 물과 비옥한 농지에서 나는 질 좋은 곡식을 원료로 해 당나라 이래 명주로 널리 알려졌다.
중국차① 호남흑차: 예부터 보이차와 함께 차마고도를 통해 널리 퍼진 후발효 흑차로, ‘건강기능식품의 왕’이라 불린다.
중국차② 군산은침: 동정호 안의 섬 군산도에서 생산되는 황차 계열의 경발효차이다. 봉황이 진주를 떨어뜨린 바위틈에서 자란 차나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우리에게 언제 다시 중국 여행의 기회가 찾아올까? 매년 이어오던 저자의 기행 프로그램도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쉬어가게 되었다. 문화기행은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며 그곳 정신의 깊이를 오롯이 맛보는 흔치 않은 체험이라 요즘의 상황에 아쉬움이 큰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의 체험을 대신해 그곳 문화를 여실히 소개하는 책이 우리 곁에 있다면 문화기행이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좋은 해설사와 함께 여행지의 가치를 먼저 공부하는 것이 더 깊은 체험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 발을 묶어버린 야속한 코로나 시대에 대한 아쉬움을 이 책을 통해 시와 술, 차와 함께하는 인문 기행의 기회로 삼아보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