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방송극작가이자 번역가, 문필가로 널리 알려진 고 박이엽(본명:박은국)의 추모 5주기를 맞아 발간된 유작 산문집. 그가 생전에 남긴 산문과 서간문, 기독문, 번역문 등을 묶어둔 것이다. 고인의 삶만큼이나 아름답고 꺠끗한 정신이 녹아나 있다. 1980년대 초부터 인사동에서 이구영,민병산,천상병,신경림 등 많은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활발히 교류하며 이른바 인사동시대의 한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에세이들을 모은 제1부에는 1940년대부터 이어져내려온 책과의 인연을 서술한 산문 주쩨기의 헌책 행각등이 수록되었다. 저자의 방대한 독서 이력과 먼저 타계한 작가들에 대한 그리움, 가난한 이웃을 생각한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을 실어 두었다. 2부에서는 그가 쓴 서평과 옮긴이의 말등을 통해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3부 서간문,기도문에는 절대자 앞에 선 인간의 겸손과 간절함이 잘 느껴진다. 논어와 영문소설을 번역한 4부는 번역가로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단아하고 정갈한 문장이 돋보인다. 5부는 신경림, 강민, 구중관 등 문인들이 추모의 글을 통해 고인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는다.
목차
일러두기
제1부 | 산문
주쩨기의 헌책 행각
카와까미 하지메의 조선붕어
역사왜곡과 제국대학
마르게리타는 잘 있는가?
나뭇가지와 목발
관훈동 그 집
각박한 세상이라고
그 해프닝의 기억을 위하여
그 목발 교회의 기억
작은 공동체를 위하여
밥국
조끼, 즈봉, 구두, 기타
나무 한 그루도 두려워했는데
과객과 주인―인간 민병산 소묘
‘정일’과 ‘연곡’
현노 최규일의 일도일각
그는 여전히 말이 없고―나의 친구 이강복
아름다운 세상―천상병 시인을 추도하며
민병산 선생께―10주기에
채기엽 선생 비문
희곡작품에 나타난 기독교 저항정신
문화단상(文化斷想)
곁에서 지켜본 기독교방송
경동 삼대 이야기
아리송한 시(詩)와 같던
유고시
제2부 | 서평ㆍ옮긴이의 말
『여명 200년』 머리말
『여명 200년』 프롤로그―200년 그 앞의 200년
고전이자 신선한 충격―『다산문학선집』을 읽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을 읽고
『한나라 기행』을 옮기고 나서
『탐라 기행』을 옮기고 나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옮긴이의 말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옮긴이의 말
『에반젤린』 옮긴이의 말
제3부 | 서간문ㆍ기도문
버리고 싶었던 고향ㆍ집ㆍ부모 형제자매
권정생 선생님께
필드 선생께
현국아
김민형 선생께
박찬중 씨에게
그리운 이에게
병상 메모
세모의 기도
만백성이 다 한마음으로
당신과 함께 이 겨울을
자유와 사랑의 생명이 넘치도록
제4부 | 번역문
악사장과 공자의 눈
효(孝)를 묻다
얼룩송아지
돼지고기를 선물받은 공자
이문(異聞)을 탐색하다
크레디트 카드 삽화
제5부 | 추모의 글
박이엽 형을 생각한다ㆍ신경림
늘 남을 보살피던 자상한 사람ㆍ강민
늘 앞서가던 멋쟁이 박이엽ㆍ황명걸
그때 인사동에 박이엽이 있었다ㆍ구중관
필사본 노트 『예쎄닌 시집』 이야기ㆍ호영송
조용한, 그러나 신화적인 삶ㆍ배평모
헌팅캡 박이엽 선생ㆍ박구경
박이엽 선생님과 「씨칠리아 마부의 노래」ㆍ임계재
감사의 말ㆍ정인임
편집후기ㆍ박찬중
저자
박이엽
출판사리뷰
故 박이엽의 고결한 삶과 산문의 향기
방송극작가이자 번역가ㆍ문필가로 널리 알려진 故 박이엽 선생(본명 박은국, 2002년 11월 13일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타계)의 추모 5주기를 맞아 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고인은 1936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KBS 프로듀서, 『월간 음악』 편집장, 『TV가이드』 취재부장, 『주간시민』 문화부장, 한국방송작가협회 감사ㆍ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1년 MBC 단막극 공모에 「사랑이 익을 무렵」이 당선되어 방송작가로 데뷔한 뒤 「아차부인 재치부인」, CBS 실록 대하드라마 「여명 200년」(6년 6개월 연속방송) 등 다수의 방송프로그램을 집필했다. 1976년 한국 최초로 방송작가의 저작권 문제를 제기하여 4년간의 법정투쟁을 벌임으로써 방송작가의 권익 확보에 앞장섰고, 1983년 한국방송대상 작품상(라디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 『여명 200년』(전24권)을 남겼고, 단아한 문체의 번역가로도 명성을 떨쳐 『에반젤린』(H.W. 롱펠로우) 『나의 서양미술 순례』(서경식)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노마 필드)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1980년대 초부터 인사동에서 이구영 민병산(철학) 천상병 신경림 신동문 황명걸(시인) 등 많은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활발히 교류하며 이른바 ‘인사동시대’의 한 장을 열었다.
이번 유작 산문집은 고인이 심혈을 기울여 써온 산문과 서간문 기도문 번역문 등을 묶은 것이다. 신경림 시인의 말대로 “그의 산문과 번역문은 한 편 한 편이 완성도 높은 시적 향기를 지닌다.”(‘추모의 글’) 고인의 삶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정신이 녹아들어가 있는 글들은 독자로 하여금 고결한 산문정신의 힘을 만끽하게 한다. 또한 그가 교류했던 인사들과의 일화는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문화사와 문화계 인사들의 여유와 풍류를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에쎄이들을 모은 제1부에서는 글 하나하나가 다채로운 힘으로 다가온다. 우선 1940년대부터 이어져내려온 책과의 인연을 서술한 산문(?주쩨기의 헌책 행각?)에서 저자의 방대한 독서 이력과 책의 소중함, 문필가로서의 겸손함 등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집착하고 놓지 않아서 더 큰 장애로 작용하는 이데올로기나 편견, 권력, 금력, 지식 등을 ‘불구의 목발’에 비유하고 꼬집는 글(?나뭇가지와 목발? ?그 목발 교회의 기억?)이나,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돋보이는 글(?조끼, 즈봉, 구두, 기타?) 역시 고인의 필력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역사청산과 잘못된 역사의식의 문제점을 비판하거나(?역사왜곡과 제국대학? ?문화단상?), 사람 사는 정과 가난한 이웃들의 풍경을 따뜻하게 그린 산문들(?관훈동 그 집? ?각박한 세상이라고? ?밥국? ?그는 여전히 말이 없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한 먼저 타계한 민병산 선생과 천상병 시인을 추억하고 추모하는 글(?과객과 주인? ?아름다운 세상?)에서는 애틋한 마음이 읽는이에게까지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밖에 제2부에 묶인 서평과 ‘옮긴이의 말’에선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고, 제3부의 서간문, 기도문에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애정과 절대자 앞에 선 인간의 겸손과 간절함이 담겨 있으며, 논어와 영문소설을 번역해 실은 제4부는 번역가로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단아하고 정갈한 문장이 빛을 발한다. 신경림 강민 황명걸 구중관 등 문인들의 추모의 글을 담은 제5부 또한 고인과의 아름다운 추억과 고인을 길이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문필가의 자세를 유지했던 저자가 삶의 크고 작은 깨달음을 전해주는 동시에 일상은 작은 부분에서도 소재를 이끌어내서 써낸 이 책은 그 어느 산문집과 소설 이상으로 인상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자꾸만 각박하고 험악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처럼 살다 간 저자는 말한다.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자르지 않았던 조상들에게서 배우라고, 베어내지 않으면 ‘저절로 아름다운’(?나무 한 그루도 두려워했는데?) 고목들처럼 살아가라고, 인위적으로 바꾸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라고…… 화려하고 감각적인 글들이 넘쳐나는 요즘 그의 글은 진정한 문필(文筆)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