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은 지리학자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가 춘천시 홍천강변 궁벽한 오지에 허름한 집 한 채를 마련해 주중에는 서울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과 방학에는 시골에서 직접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자연 속에 묻혀 지낸 20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이 안에 저자의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생명의 터전으로서 땅의 가르침,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문명비판,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웃과 소박한 삶에 대한 성찰 등을 담백하고 진솔하게 담아냈다.
이 책은 단순히 농사에 관한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어 버린 자연,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농촌의 이야기,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람들의 행동 등 오염되고 붕괴된 자연에 대한 책임이 우리들 자신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지리학자로서 그리고 농민으로서의 그의 시각은 자신의 편리함만을 생각하고 경제발전만을 고려하던 평소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목차
입출협기入出峽記 - 5
책머리에 부치는 말
1990~1992년 이상향을 찾아서 - 20
1993년 너희는 결코 가난뱅이 자식이 아니다 - 40
1994년 자연을 받들어야 한다 - 62
1995년 수확의 기쁨을 어디에 비할꼬 - 84
1996년 농사도 창작이다 - 118
1997년 제초제 쓰지 않으니 땅심이 살아난다 - 152
1998년 사람이 부른다고 봄이 오나 - 182
1999년 노동은 과연 신성한가 - 128
2000년 자연이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 - 266
2001년 농사의 길, 수신(修身)의 길 - 312
2002년 대지의 어머니 - 366
2003년 뻐꾸기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 424
2004년 어찌 하늘은 가난한 사람만 골라 재앙을 내리는가 - 452
2005년 도둑이 들어 사랑채 현판을 훔쳐갔다 - 476
2006년 국토의 난개발은 재앙을 부른다 - 500
2007년 10년 가꾼 산의 절반이 사라지다 - 544
2008년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 - 580
2009년 신음하는 대지 - 616
협곡생활 20년을 되돌아보면서 - 673
저자
최영준
출판사리뷰
“농토를 소유하려면 땅을 사랑해야 하고, 작물을 가꿀 체력이 있어야 하며 누구에게라도 배우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또 작물을 애정으로 지켜보는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산골생활 체험을 장황하게 끼적거렸으나 내 기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나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땅과 함께하는 생활을 계속할 것이며, 하루하루 진정한 촌사람으로 변해갈 것이다.”
소로의 『월든』에 버금가는 지리학자 최영준 교수의 ‘홍천강변에서 20년’의 기록
소로의 대표작 『월든』은 자연에 대한 예찬과 문명사회의 통렬한 비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전이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손수 짓고 땀 흘려 일한 정직한 노동으로 소박한 밥상을 차리며, 자연과 깊이 교감하고 느낀 숲 속 생활에 대한 감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빚어낸 책이다. 그러나 소로의 명성은 걸작 『월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든 것은 24년에 걸쳐 쓴 방대한 분량의 일기 때문이다. 『월든』조차 일기의 소산이었다. 소로에게 일기는 “달아나는 한때를 영원한 것으로 바꾸어놓는 수단”이었고, “추수가 끝난 들판의 이삭줍기”와 같았다. 즉 기록이 없다면 삶의 소중한 기억은 많은 부분 들판에 남아 썩어 없어질 이삭에 불과한 것이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일상을 섬세히 관찰하고 사고함으로써 삶을 풍성하게 만들며, 평범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지리학자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의 삶이 바로 그렇다. 소로처럼 그는 춘천시 홍천강변 궁벽한 오지에 허름한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주중에는 서울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과 방학에는 시골에서 직접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자연 속에 묻혀 지냈다. 또한 학자답게 농사를 짓는 외의 시간은 열심히 책 읽고 공부하고 부지런히 책도 썼다. 서울과 홍천을 오가는 20년간의 ‘남다른 이중생활’은 한마디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몸소 실천한 삶이었다. 또한 농사란 1년 주기가 있어, 단순히 농사지을 때 활용하기 위해 적어둔 기록이 자그마치 20년 분량의 일기로 남았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은 바로 이런 부지런한 최 교수가 체험한 20년 농촌생활의 생생한 기록이다. 원래 혼자만 간직하고 보는 것이 일기이지만, 그의 기록은 소로의 『월든』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생명의 터전으로서 땅의 가르침,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문명비판,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웃과 소박한 삶에 대한 성찰 등을 담박한 문장으로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인생의 행복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삶 속에 있다
그는 각박한 도시생활을 피해, 흔히 말하는 은퇴 이후의 삶으로 막연히 전원생활을 택한 것이 아니다. 특수작물 재배법을 개발하여 경제적 부가가치를 노린 영특한 귀농자도 아니다. 부유층들이 경관 좋은 곳에 휴식 공간을 만들 듯 별장으로 집을 마련한 것 역시 아니며, 또한 땅값이 오를 것에 대비해 부동산 투자로서 살지도 않을 집을 미리 사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물질이 넘쳐나는 시대에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겸손하게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마흔아홉 고비를 넘기던 해, 조상 가운데 자신의 나이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난 이후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 여기고 욕심을 버리고 책 읽고 공부하는 삶을 목표로 농촌행을 선택했다. 매주 시골을 오가는 차 안에서 나누는 아내와의 대화가 최고의 행복이었던 금슬 좋은 부부는 서로에게 다짐했다. “오늘 아내와 나는 앞으로 남과 다투지 말고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는 데 집착하지 말자고 했다. 또 내가 가진 것은 현명하게 지키고 부당하게 내 것을 빼앗으려는 자에게는 단호하게 지키되, 도움을 구하는 선한 이들에게는 망설임 없이 주자고 다짐하였다”(97. 12. 22).
일기 곳곳에는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도 흐뭇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고추 모를 심을 구멍을 파고 아내는 고추 모를 구멍에 넣고 아들들은 물을 부은 후 북을 주었다. 우리 가족의 정성으로 금년에는 120주의 고추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이다”(97. 5. 9). 제자들을 위해 결혼 주례를 맡았을 때도 그는 농사에 대한 철학을 얘기한다. “만일 부부가 굳은 땅과 그 위에 고인 물처럼 화합하지 못하면 결코 튼실한 작물을 키울 수 없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부디 두 분은 부드러운 토양을 적시는 가랑비의 의미가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작은 진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94. 6. 4). 또 그에게 농사는 어디까지나 자급자족과 이웃과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무의 양이 너무 많아 R 교수와 K 교수에게 서너 단씩 나누어 주었다. 동치미감으로 적당한 크기이고 무가 달고 수분이 많다면서 R 교수는 내가 수준급의 농사꾼이 되었다고 추켜세운다”(93. 11. 7). “땅콩 두 가마를 ?확하였다. 이렇게 많은 땅콩을 말리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볕에 널어야 한다. 땅콩은 선물로도 인기가 있어 형제들, 그리고 세배를 오는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1년 동안 우리 가족의 좋은 군것질 감이 된다”(96. 9. 21)
농사야말로 가장 좋은 수신(修身)의 길이다
최 교수에게 농촌은 막연한 이상향이 아니었다. 몸을 낮추어 농사일을 하나하나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었다. 그는 도시 사람이 왔다며 경계하던 주민들의 눈총도 이겨내야 했고, 그들의 농사법을 일일이 눈으로 보고 따라 하고, 설명도 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그에게 처음 농사를 짓던 10년은 농사의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도시인의 세속적 경제관념을 버리고, 인심(人心)과 지심(地心)을 우선 헤아릴 줄 아는 참다운 시골 촌부가 되기까지 걸린 인내의 시간이었다. 손톱 사이의 검은 흙때가 영락없는 농사꾼임을 말해주는 지금도, “농부로서 나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50점을 주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겸손하다. 농촌은 몸을 놀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삶의 자세와 뿌린 만큼 열매를 거두는 땅의 정직한 진리를 한시라도 망각해서는 발붙일 수 없을 터, 섣불리 귀농을 준비하려는 이들에게 그는 애정 어린 조언을 전한다. “도시생활을 하던 사람이 농토를 소유하고자 한다면 우선 땅을 사랑해야 하고, 작물을 가꿀 체력이 있어야 하며, 누구에게나 농사일을 배울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작물의 싹이 터서 자라는 과정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농촌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TV시청이나 요란한 음율 등 도시적인 오락 없이도 무료하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은 무엇보다 농사의 참다운 의미와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저자의 깊은 성찰과 혜안이 잘 드러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신성하다고 말하면서 땀 흘려 일하기를 꺼린다. 상당수의 도시 사람들은 체육관에서 흘리는 땀은 귀하고 고급스럽지만 노동으로 흘리는 땀은 천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미움과 욕망과 고뇌를 잊을 수 있다. 노동을 통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노동은 신성하다”(99. 3. 19). “농사는 결코 선비가 해서는 안 될 일은 아니다. 전에도 어떤 사람에게서 ‘학자가 연구하지 않고 어찌 땅이나 파는 천한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농사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신(修身)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이틀 이상 농사일을 하는 동안 나는 잡념 없는 무의식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체력이 강하다는 말을 듣는다 …… 퇴계(退溪)와 반계(磻溪) 역시 농사를 지었다. 옛 선비들은, 체면치레를 하느라 굶주리는 자를 진정한 선비로 여기지 않았다”(2001. 4. 18).
최영준 교수의 ‘국토사랑 농촌사랑’에 대한 열정적인 연구
최 교수는 일찍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길의 역사를 연구한 『영남대로』로 잘 알려진 지리학자였지만, 이런 농사에 대한 철학을 신념 삼아 정년퇴임까지 학문에 전념함으로써 중요한 저서를 계속해서 써낸다. ‘남한강 수운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 우리 국토에 아로새겨진 역사의 구체적인 무늬를 그려낸 역작 『국토와 민족생활사』, ‘사라져가는 민속경관의 문화지리적 해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한국의 짚가리』는 그의 국토사랑과 농촌사랑을 잘 보여준다. “나의 두 번째 저서인 『국토와 민족생활사』 출간 소식을 들었다. 작년 가을부터 여름까지 시골집에서 밤마다 원고를 정리한 보람이 있다”(97. 9. 20). “지난 6월 출판사에 넘겼던 원고, 『한국의 짚가리』가 작고 아담한 책으로 엮이어 나왔다”(2002. 10. 15). 지금도 다음 책 집필로 그는 분주하다. 미시사적인 접근으로 ‘개화기(開化期) 경상남도의 가옥과 취락 연구’를 위해 답사여행과 방대한 양안(量案) 분석을 해오고 있다. “어제 밤늦게까지 개화기 경상남도의 양안 분석을 하였다. 합천군 ,산청군, 진남군 등 3개 군의 양안은 모두 80여 책인데 3개 군에서 가장 땅을 많이 소유한 지주가 약 10결(結) 정도이고 1결 이상의 지주는 10%에도 못 미쳤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대농(大農)의 규모가 1결 이상, 중농은 0.5~1결이었으며 대부분의 농민이 남의 토지를 임차한 소작농 내지 자작 겸 소작농이었다고 한다. 농경지를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눌 경우 1등전의 실면적은 약 3,000평에 해당되는바 농업인구의 비율이 9할 이상에 달했던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생활이 얼마나 곤궁했는지 짐작이 간다.”(2005. 10. 15) 또한 틈틈이 실크로드 답사여행을 다녀온다. 실크로드를 통한 농업문명의 전파를 한 권으로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에는 농사하고 공부하는 성실퇇 학자로서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홍천강변 주변 지형을 손수 그린 조감도나 다랑이논 구조와 농경 모습을 묘사한 본문의 삽화는 지리학자다운 날카로운 관찰력을 엿보게 한다.
환경보호, 인간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최 교수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꿈꾸며 가장 발전이 더디고 개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홍천강변에 터를 잡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이곳도 국토 난개발의 몸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가 직접 홍천강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린 조감도(16~17쪽)와 고속도로가 산 중간을 가로지르는 현재의 지도(644~645쪽)를 비교해보면 그간 우리 산천이 얼마나 개발되고 파괴되어갔는지 상징적으로 알 수 있다. 지리학자의 비판적 관찰력이 있기에 가능한 기록이다. “구릉지의 자연적인 기복과 강변의 아름다운 굴곡은 중장비에 의해 평탄화, 직선화되었다. 논골, 능골, 첫째골, 두째골 등 고래실이 들어앉았던 홍천강 주변의 골은 대형차들이 쏟아 부은 토석으로 옆 구릉과 비슷하게 높아졌다. 수천만 년 동안 조물주가 깎고 쌓고 다듬어온 자연경관이 서구적 가치관에 젖은 인간들에 의해 며칠 사이에 인공 단구로 개조된 것이다”(맺음말, 「협곡생활 20년을 되돌아보면서」).
한편 농민의 실정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도 문제다. 일례로 정부는 쌀이 남아도니 논을 밭으로 변경해 경작하면 혜택을 주겠다고 하는데, 최 교수는 이런 식의 임시변통의 정책을 비판한다. 모든 논을 밭으로 변경한다면 결국 쌀농사를 짓는 농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실 정부의 생각과 다르게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30%에 불과하다. 쌀 생산량이 소비량을 상회하는 것을 식량자급률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96. 5. 24). 쌀 생산량을 줄일 게 아니라 국민들의 쌀 소비를 독려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일기 곳곳에 농촌의 어려운 현실과 국토 난개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개발에 의해서만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다슬기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진 후 홍천강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 많던 다슬기는 멸종 위기에 처하고, 봄이면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놀러오던 오리도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냥꾼들의 총질에 모습을 감추었으며, 촘촘한 그물로 치어까지 모조리 잡아가는 것도 모자라 전기모터로 물속의 모든 물고기를 기절시켜가는 걷어가는 인간의 행태를 고발한다. “나는 환경파괴의 주범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깨끗한 곳을 골라 다니며 배설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또 동식물에 위해를 가한다. 물과 공기를 더럽히는 것도 인간이다.”(94. 11. 11)
환경파괴는 비단 홍천강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금 온 나라는 경기부양책과 일자리 창출, 관광지화를 외치면서 아파트 건설이니 4대강 사업이니 대단위 놀이시설이니 하면서 그야말로 개발지상주의 논리에 빠져 있다. 개발도 좋고 경제적 이익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생명의 근간이 되는 자연을 사려 깊게 살피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 당연한 말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묻게 한다.
최 교수는 농사를 짓는 데 있어 제초제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 하나도 자연보호의 커다란 실천이라 생각한다. 밭에서 억세게 자라는 잡초를 바라보며 그는 인간세상도 돌아본다. “잡초가 적당히 섞인 밭에서 자란 농작물이, 제초제를 사용하여 잡초를 몰살시킨 밭에서 농부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농작물보다 더 건강하고 맛이 있을 것이다”(97.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