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깨달음의 나라, 인도
우리에게 인도는 불교의 나라, 요가의 나라로 인식된다. 동시에 인도는 브릭스로 일컬어지는 신흥 경제 대국 중 하나이며 IT 강국이다. 과연 인도는 어떤 나라일까. 『아름다운 파괴』는 인도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정신적 측면에서 인도를 조망한 책이다. 16개 언어가 공용어로 인정되며, 인력거와 벤츠가 나란히 거리를 누비고, 온갖 복장의 사람들 사이로 나행(裸行)수행자가 태연히 걸어가는 나라가 인도다.
저자는 그곳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겪었던 경험과, 지금 여기의 북적거리는 지하철이나 낙서가 있는 화장실 등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자잘한 일화에서 인도사상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인도인의 삶과 사유방식을 통해 인도에 대한 일차적인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섬세한 눈으로 발견한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사유하기의 묘미, 깨달음의 기쁨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목차
개정판을 내며| 아름다운 파괴는 생명이 거듭나는 비밀입니다
여는 글| 마음은 갈 수 있는 곳만 갑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
1. 종교 없는 종교, 힌두교
2. 다양성 속의 통일
3. 체념과 초월의 경계
4. 업과 윤회 그리고 운명
5. 깨달음에 이르는 길, 요가
6. 여자, 위험한 도구
7. 몸, 거룩함에 이르는 사다리
8. 접촉과 접속
9. 느림의 미학
10. 포기의 철학
닫는 글| 애프터를 신청하게 하는 인도
저자
이거룡
출판사리뷰
아름다운, 관념의 파괴
“관념 속에 안주하는 한 걸림 없는 자유는 없습니다.
가슴 떨리는 삶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긴 머리와 희끗한 수염, 헐렁한 옷차림, 세상사 초월한 듯한 자유인의 풍모를 지닌 인도철학자 이거룡. 그에게 십여 년 전 출간한 저서 『아름다운 파괴』는 말하자면 ‘명함’과도 같은 책이다. 왜 아름다운 ‘파괴’일까. 그는 생명이 끊임없는 파괴와 죽음을 통해 거듭 태어나며, 따라서 파괴는 생명이 거듭나는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파괴’는 곧 고정관념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뜻한다.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묻는 행위가 곧 철학이며, 사는 것 그 자체가 종교가 된다.
청년 시절 ‘마음에 내린 어둠’을 응시하는 가운데 자연히 인도와 가까워진 지은이는 마침내 남인도의 마드라스로 떠나 인도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돌아왔다. 이후 대학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해오는 틈틈이 대중 강연과 저술을 통해 지혜에 목마른 시대에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 최근에는 부산에 요가학교 리아슈람을 세워 본격적인 수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십여 년 전의 생각을 ‘지금 여기’의 생각으로 다듬고 보태어 다시 펴낸 이번 개정판에는 각 꼭지의 말미에 더 알고 싶은 인도라는 질의응답 형식의 부록을 실어 심원한 인도의 사상과 문화를 좀더 쉽고 생동감 있게 들려주고 있다.
일상의 삶을 향해 열려 있는 인도사상
“인도사상은 먼 나라 사람들의 오래 전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여행이기에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인도 하면 명상에 잠긴 요가 수행자 같은 신비주의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속의 욕망을 털어버리고 참된 자아를 만나기 위해 인도를 찾는다. 말하자면 인도는 초월과 명상, 요가와 신비주의로 대표되는 ‘구도자의 나라’다. 그러나 요가라든가 명상 같은 마음공부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정작 우리는 인도의 문화나 그 심층에 자리한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인도의 철학과 문화’라는 제목의 대학 교양 강좌를 바탕으로 씌어진 이 책은 인도인들의 다양한 문화와 그들의 심원한 정신세계를 알기 쉽게 소개한다. 지은이는 체념과 초월, 진리의 다양성, 업(業)과 윤회’ 등 인도사상의 핵심적인 개념 열 가지를 제시하면서, 인도 유학 시절 화장실이나 길거리, 기차역 같은 일상 공간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일화를 통해 인도인의 사유방식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이 풀어놓고자 하는 것은 사실 인도 이야기만이 아니다. 인도를 통해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인도사상은 내면으로 떠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내면으로의 침잠은 곧 우주의 확산이 되며, 인도사상에서 이러한 체험의 절정은 ‘범아일여’(梵我一如), 곧 대우주와 소우주가 하나 되는 체험이 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럿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 다양성 속의 통일을 보여주는 인도사상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이 책은 우선 인도인들의 종교관을 살펴본다. 이어 인도인의 사유방식을 푸는 중요한 열쇠인 체념과 초월, 업과 윤회,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 등을 설명해나간다. 그 밖에 명상의 참다운 의미, 몸과 욕망에 대한 긍정, 서구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 느림의 미학과 인도인의 시간관 등을 짚어가면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인도인의 사유방식을 통해 성찰한다.
인도인에게 종교는 곧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수많은 신들이 이들의 삶 속에 자리한다. 그런데 누구도 자신의 종교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포교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힌두교의 종교적 포용력과 유연성은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럿이다’라고 생각하는 인도인의 사고에 따른 것이다. 인도사상의 포용성은 세속과의 끈끈한 인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도사상만큼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상도 드물다. 세속을 무조건 부정하지도 않으며, 몸과 욕망을 긍정한다. 예컨대 탄트라 사상에서는 섹스를 한 인간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합일시키는 과정으로 본다. 지은이는 인도사상의 본질이 신비주의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결코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먹고 자고 똥 싸며 사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업과 윤회 또한 숙명론을 넘어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이 된다.
체념은 초월로 통한다
인도 사람들은 삶에 이상적인 네 단계가 있다고 본다. 금욕하는 학습기, 결혼과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가주기(家住期), 가업을 물려주고 숲에서 명상하는 임서기(林捿期), 그리고 탁발하며 세상을 떠도는 유행기(遊行期)를 지나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산야신’으로 마침내 거듭나길 바란다. 이들의 사유에 따르면 체념은 초월로 통하는 길목이다. 무조건적인 체념이 아니라 가능한 것을 포기하는 체념이어야 한다.
인도인의 인생관에서 삶을 통해 애써 쌓아올린 것들은 결국 버리기 위해 있다. 가져야만 버릴 수 있고, 버리지 않는 한 가진 것은 무의미하다. ‘체념의 철학자’ 이거룡은 그렇기에 우리 각자의 고통이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란 것도 결국 ‘포기하지 못하는 사회’의 고통이라고 덧붙인다. 탈속과 구도의 세계는 결국 세속 경험에 대한 체념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