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 2020 『가디언』 선정 올해의 책
* 2020 『이코노미스트』 선정 올해의 책
* 2020 『뉴스테이츠먼』 선정 올해의 책
* 2021 『더 타임스』 선정 최고의 논픽션
영국인이 독일을 극찬한다고?
믿기 힘들겠지만, 이 책은 자존심 센 영국인이 독일을 극찬하는 책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수도 런던이 공습당하고, 오늘날 정치와 경제는 물론 축구 경기에서까지 끊임없이 부딪치는 「독일」을 영국인이 칭찬한다니, 더구나 영국 현지에서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랐다니 좀처럼 믿기 힘들다. 하지만 저자가 20대부터 동서독을 오가며 특파원으로 활동한 베테랑이자,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언론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뼈아픈 과거에서 배운 교훈, 품위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 문화를 존중하고 시민의 안전한 생활을 책임지려는 리더십……. 캠프너는 전후 75년간 현대 독일의 놀라운 변화를 분석하며 한 미국 평론가의 말을 빌려 「오늘날의 독일은 세상이 봐왔던 최고의 독일」이라고 치켜세운다.
전범국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가, 심지어 동서독의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기억의 힘」을 통해 성숙한 국가로 나아가는 모습은 「기적」이란 표현이 과도하지 않다. 오늘날 전 세계가 포퓰리즘 정치에 시달리고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위기로 시름하는 와중에도 독일만큼은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전 부문에서 안정된 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다. 캠프너는 유럽을 넘어, 이제 세계의 모범국으로 떠오른 독일의 힘이 무엇인지 현대 독일의 정체성을 만든 네 번의 결정적인 시기(1949년 「기본법」 제정, 1968년 68혁명, 1989년 동서독 통일, 2015년 난민 수용 결정)를 들여다보며 그 비밀을 쫓는다. 특히 직접 체험한 독일에서의 삶과 독일인들(정치인, CEO, 예술가, 난민 문제 활동가와 평범한 사람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독일 사회의 경쟁력과 회복력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낸다.
목차
들어가며: 그들과 우리
1장 재건과 기억: 전후 시대의 아픔
2장 무티의 따뜻한 포옹: 메르켈과 동독의 유산
3장 물티쿨티: 이민과 정체성
4장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포퓰리즘 시대의 외교 정책
5장 기적: 경제 기적과 그 이후
6장 개는 개를 먹지 않는다: 함께 뭉치는 사회
7장 더 이상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없다: 기후 문제와 자동차
결론: 독일은 왜 잘하는가
감사의 말
주
찾아보기
저자
존 캠프너
출판사리뷰
규칙에 대한 강박
독일인에 대한 고정 관념으로 유독 강조되는 것이 〈규칙에 대한 강박〉이다. 이 책은 몇 가지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다. 한번은 저자가 새벽 4시에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경찰관에게 딱지를 떼인 일이 있었다. 그는 〈이 한적한 차로 에 앞으로 몇 시간은 차가 지나다닐 것 같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차가 다니든 안 다니든 〈규칙은 규칙이다.〉 또 다른 일화. 어느 화창한 일요일 점심시간, 저자는 아파트 발코니로 나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록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때 뉴스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독일인 여자 친구가 라디오를 꺼버렸다. 그 시간이 루헤차이트(독일에서 의무적으로 조용히 해야 하는 시간)이고, 이웃집 노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
저자는 독일인의 〈규칙에 대한 강박〉을 패전 후 잿더미(물질적·정신적으로 〈제로〉인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서 찾는다. 승전국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이 〈어제의 영광〉을 바탕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면, 패전국 독일은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준거점이 거의 없었다.〉 대신 그들은〈절차에 대해, 즉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하는 것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상징적인 작업이 1949년 임시 헌법(향후 통일 전까지)으로 만들어진, 〈세계적으로 위대한 헌법적 성취 중 하나〉로 평가받는 〈기본법〉이다.
독일은 〈전후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 정체성과 안정, 자기 가치를 전적으로 법의 지배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의 눈에 독일인의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기보다 〈헌법에 대한 애국심〉에 가깝다. 라이프치히에서 만났던 펑크족 뮤지션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준다. 그는 독일인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 영역에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 〈국가의 역할은 약자가 강자에 맞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균형을 새롭게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고. 반항적인 차림의 펑크족이 한 얘기치고는 너무나 뜻밖이다.
독일이 잘하는 5가지 이유
캠프너는 이 책에서 독일이 잘하는 5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 독일에서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불법 행위이고, 나치 상징을 착용하거나 관련 자료를 선전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심지어 학살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물이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정문과 의사당 가까운 곳에 들어섰다. 어떤 나라가 수도의 랜드마크 바로 옆에 자신들의 치부를 기념하는 구조물을 세울 수 있을까?
사실 패전 직후에는 독일 사회 역시 속죄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1968년 학생 운동을 거치고,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흐름과 대중문화의 영향(NBC 미니시리즈 「홀로코스트」)으로 독일 내부에서 반성의 기류가 거세졌다(〈아빠, 전쟁 때 무슨 일을 했어요?〉). 이제 독일의 성숙한 지도자들이 앞장섰다. 그들은 상징적인 행동과 발언을 통해 독일의 침략의 역사를 사죄했다. 국내 보수 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독일의 도덕적 나침반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70년 12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1985년 나치 항복 40주년을 기념하는 의회 연설에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1945년을 굴욕의 날이 아닌 〈자유의 날〉로 선언했다. 〈죄가 있든 없든, 젊은이든 나이 많은 사람이든……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편 2019년 12월,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과거 범죄를 기억하는 일을 두고 〈절대 끝나지 않을 의무〉이자, 그 책임을 인식하는 것을 〈국가의 정체성의 일부〉라고까지 했다. 오늘날 독일의 크고 작은 지역 사회에서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전시하는 기념관이 운용되고 있고, 학교에서는 〈시민의 용기Zivilcourage〉(국가의 불의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를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젊은이부터 중년까지 많은 독일인들이 그들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과거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교훈을 배웠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같은 전범국인 일본 사회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사뭇 대조적이다.
둘째, 이민 수용. 난민 위기가 한창이던 2015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2014년부터 2019년 7월까지 14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독일에서 망명 신청을 했고(유럽연합 전체의 절반에 해당한다), 독일은 백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난민을 받아들였다. 며칠 동안 수백 명의 지역 주민이 뮌헨 중앙역에 모여들어 난민을 환영했다. 그들은 집의 문을 열어 〈환영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병원은 환자를 돌봐 주었고, 학교는 아이들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독일이 보여 준 최고의 모습이었다.〉 그 결정은 〈독일 지도자가 아니라 유럽 지도자로서 메르켈이 내린 결정〉이었고, 세계에 새로운 독일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메르켈 본인은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며 정치적 희생을 치러야 했다.
셋째, 환경에 대한 관심. 기후 변화라는 세계적 현안에 맞물려 반세기 앞선 독일의 환경 정책은 종종 선견지명으로 회자된다. 에너지 전환 작업을 일찍 시작한 덕분에 독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재생 에너지 비율이 높고(현재 재생 에너지가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퍼센트를 넘고, 그 비중을 2030년까지 65퍼센트, 2050년까지 80퍼센트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원자력 발전소도 단계적으로 폐기할 계획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를 들여다보면 애초에 독일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최근 이슈인 기후 변화보다는 핵 공포(핵전쟁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독일은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는 냉전의 한가운데 있던 독일인들은 핵전쟁에 대한 심리적 공포감을 여전히 갖고 있다. 묀헨글라트바흐 시에서는 지금도 한 달에 한번 핵 경보 사이렌을 울려 진지하게 시민들의 대피 훈련을 감독한다. 특히 1986년 체르노빌 사건(당시 독일은 핵구름의 경로에 있던 자국의 모든 농작물을 불태우고, 학교 운동장의 모래도 바꿨다)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거듭 녹색 운동의 약진을 이끌었다. 이제 독일에서 녹색당은 새로운 주류로 떠오르고 있고, 통치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위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넷째, 외교 정책. 독일은 오랫동안 보호받는 아이로 머물러 있었다. 국방과 안보는 미국과 나토, 최근에는 유럽연합에 의존했고, 독일은 오로지 충직한 지원 팀으로서 정보를 공유하고 중요한 투표에서 동맹국 편에 서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통일 이후 독일은 점차 그들의 규모와 위력에 어울리는 역할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유럽연합의 통합과 협력을 확대하고, 보호 무역에 대항하는 중심 역할을 맡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그들의 전반적인 전후 재건과 재활 프로젝트가 유럽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두고 있고, 자신의 주권이 일부 침해되더라도 타협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도이치마르크는 전후 안정과 국가적 자존감을 뒷받침하는 촉매제였지만, 그럼에도 유럽 통합을 위해 독일은 자신들의 화폐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채택했다. 난민 사태에서의 솔선수범도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충격과 부담을 덜어 주려는 배려가 있었다. 미국의 정치인 키신저는 이렇게 물었다. 〈유럽과 이야기하려면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할까?〉 그 대답은 30년 동안 한결같이 독일이었다.
다섯째, 문화에 대한 지원. 독일인들은 문화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프랑스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공적 지식인의 존재에 대해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신문 평론은 여전히 수준이 높고, 예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베를린 예술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 내야 하지만, 일단 입학하면 모든 게 무료다(이러한 특전은 해외 유학생에게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중소 도시에는 유명한 박물관과 극장, 공연장이 많다. 문화 관련 기관과 중소기업들은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가령 인구가 300만 명에 불과한 작센 지방에서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이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다.
독일은 지적인 국가 리더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얼마나 많은 나라가 철학을 주제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한 국가 지도자를 선출할까? 동독 출신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서 2년 후 관용의 계몽적 가치와, 관용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를 다룬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랐다. 이 책은 17세기 종교전쟁으로부터 볼테르와 밀, 칸트, 괴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역사를 조망한다. 메르켈 역시 미술 애호가로,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가진 총리로서 존경받고 있다.
사회적 시장주의
독일 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놀랍다. 전쟁이 끝나고 채 20년이 지나지 않은 1968년, 서독의 경제 규모는 영국을 앞질렀다. 2003년 독일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이후 독일 정부는 지출을 늘리고 완전 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재정 흑자를 이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산성의 바탕엔 독일식 〈사회적 시장주의〉도 한몫했다.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독일의 〈사회적 시장〉은 널리 받아들여진 규칙과 관행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장기주의를 격려하고, 작업장에서 분쟁보다 협력을 강조하고, 근로자의 기술과 생산성에 투자하는 기업에 혜택을 제공한다. 그렇게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더 강력한 사회적 결속이라는 쌍둥이 목표를 추구한다.
기업 지배 구조의 핵심에는 공동 결정의 관행이 있다(1976년에 법으로 제정). 대기업은 감사 위원회 의석 중 절반을 일적으로 노동조합이 선출한 근로자 대표에게 주어야 한다(중소기업의 경우에 그 비중은 3분의 1). MIT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독일 고용 연구소가 최근에 내놓은 보고서는 독일 기업 중 근로자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비교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근로자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기업은 장기 고정자본 주식을 갖고 있었고, 그 규모는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40~50퍼센트가량 더 컸다. 곧 근로자를 이사회에 참여시킴으로써 훨씬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임금은 공동 경영을 하는 기업에서 더 많이 상승했고, 이는 근로자의 생산성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근로자들이 이사회 회의실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많은 독일 사장들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독일에서 파업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다. 보통은 타협으로 끝이 난다.〉 이사회 회의실에서 노사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합의를 추구하는 풍경은 인상적이다.
함께 뭉치는 사회
『빌트』는 한 인터뷰 기사에서 메르켈에게 독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다. 메르켈은 이렇게 답했다. 「완전히 밀폐된 창문이 떠오릅니다. 어떤 나라도 그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창문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겁니다.」 그녀의 발언은 〈신뢰가 최고의 자산으로 인정받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은유였다〉.
세계적인 혁신가들이 자신의 성취를 내세울 때, 오히려 독일은 개인의 성공보다는 공동체의 책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부와 재화를 창조하는 하나의 원칙으로서 자본주의는 독일에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독일인은 과시적인 소비를 좋아하지 않으며, 독일 갑부들은 대중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독일 사람들은 주식 시장에 다른 나라들처럼 열광하지 않으며, 〈저축하고 또 저축한다〉.
독일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케어보헤Kehrwoche〉이다. 청소 주간을 뜻하는 국가적인 제도로서,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과 비슷하다. 주민들은 마을의 힘든 일을 처리하기 위해 1년에 일주일 동안 협력한다. 각 가구는 그 기간에 쓰레기를 치우고, 낙엽을 쓸고, 혹은 눈이 올 때 모래를 뿌린다. 이러한 봉사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 또는 소속감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2천 곳에 달하는 독일의 마을과 도시 중에서 전문적인 소방 인력을 제대로 갖춘 곳은 100군데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자원봉사자에 의존한다. 무려 100만 명에 가까운 독일인이 소방 자원봉사자로 등록되어 훈련을 받고 있다. 또한 〈페라인Verein〉이라고 하는 사교 클럽은 독일인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모든 도시에 크고 작은 사교 클럽이 수십 개 있다. 부모들은 음악이나 핸드볼, 혹은 축제 준비를 위해 자녀를 여러 다양한 클럽에 보낸다. 독일 전체 인구의 44퍼센트가 하나 이상의 클럽에 가입해 있다. 오늘날 독일 사회를 지탱하는 밑바탕에는 〈함께 뭉치는 사회〉를 향한 공감대가 놓여 있다.
전후 독일의 국민 의식은 나치 유산에 대한 공포와 수치, 교훈에 기반을 두었다. 이러한 국민 의식 덕분에 독일은 지난 세월 숱한 위기(68혁명, 몇 차례의 경제 위기, 동서독의 통일)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새롭게 마주하는 난민 위기와 극우 세력의 부상 속에서도 캠프너는 다시 한번 독일의 미래를 낙관한다. 〈투명한 창문〉처럼 완벽을 추구하고, 절차를 지키고, 공동체와의 연대를 중시하는 독일의 힘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저자는 〈지금까지 등대와 같은 나라로 인정받던〉 영국과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세계의 리더 자격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독일의 역할에 주목한다. 독일이 새로운 리더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영국과 미국 두 나라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유기하고 있다. 누가 급속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유럽의 가치를 대변할 것인가? 누가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일어설 것인가? 누가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설 것인가? 독일만이 그럴 수 있다. 그것은 국가가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