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는 역사연구가 정형진이 단군조선의 기원부터 삼국시대로 접어드는 삼한까지의 고대사 전체를 ‘진인(辰人)’이라는 집단을 열쇠로 풀어낸 책이다. 주류사학계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고조선과 삼한 사이 천 년의 역사,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집단이 바로 진인이다. 우리 고대사 속의 한반도는 바로 진인의 땅이었고, 진인을 통하지 않고서는 고대사의 흐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목차
들어가는 글
I. 제5문명 요하문명과 한민족
01. 요하문명이 한반도와 중원으로 이주했다
02. 후기홍산문화는 중원 앙소문화와 교류한 산물
03. 홍산문화, 황제의 고향인가 웅녀의 땅인가
II. 진인의 눈으로 한국사를 보아야 한다
01. 박혁거세는 단군의 후예
02. 나정 주변에 남겨진 문화유산으로 혁거세 이해하기
03. 진한은 옛적 진국이다
04. 한국사 이해의 중심에 있는 진국은 어떤 나라인가
05. 거대한 탁자식 고인돌은 진인이 만들었다
06. 홍산문화인과 환웅의 만남으로 탄생한 단국숙신(쥬신)족
07. 기원전 2333년은 환웅이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시기
08. 환웅, 천신과 소통하며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다
09. 진한인의 편두 풍습은 홍산인의 문화
10. 한강 이남의 청동의기는 진국에 살던 진인의 문화
III. 단군숙신과 고조선을 구분해야 한다
01. 동이족, 한민족의 원류인가
02. 기자조선 문제는 단군숙신을 넣어야 해결된다
03. 하가점하층문화는 단군숙신의 문화
04. 진국과 진번을 알아야 고대사가 풀린다
05. ‘조선’의 의미와 기자조선
06. 조선은 요서에서 시작해 동으로 확장했다
07. 누가 후기고조선을 주도했는가
08. 한후의 후예가 대고조선을 이끌었다
09. 한씨조선은 요서에 있었다
10. 한씨조선의 동쪽인 요동에는 진번이 있었다
11. 비파형동검문화와 고인돌문화의 중심지가 다른 이유
12. 비파형동검은 요서에서 발생해 동쪽으로 확산되었다
IV. 삼한의 정립과 주도세력
01. 삼한일통의 개념은 동북공정에 악용되었다
02. 진한은 단군의 맥을 계승한 한민족공동체의 진정한 종가
03. 변한을 알아야 한국사가 보인다
04. 동북 지역에서 가장 강력했던 마한
맺는 글
주석 | 참고문헌 | 도판 출처 | 찾아보기
저자
정형진
출판사리뷰
주류사학이 침묵한 고대사의 열쇠, ‘진인’
고조선과 삼한 사이 설명되지 않는 우리 역사 천 년,
단군의 후예에서 신라왕이 된 진인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연구가 정형진이 새롭게 조명한 한국 고대사의 흐름!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는 역사연구가 정형진이 단군조선의 기원부터 삼국시대로 접어드는 삼한까지의 고대사 전체를 ‘진인(辰人)’이라는 집단을 열쇠로 풀어낸 책이다. 주류사학계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고조선과 삼한 사이 천 년의 역사,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집단이 바로 진인이다. 우리 고대사 속의 한반도는 바로 진인의 땅이었고, 진인을 통하지 않고서는 고대사의 흐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지금까지 고대사를 다룬 책들은 고조선이나 삼한 시대처럼 특정 시기에 대한 역사만을 서술하거나 논쟁적인 이슈만을 소재로 하는 등 부분적인 연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한민족의 고대사 전반에 대한 흐름을 알고자 하는 이들의 필요를 충족해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사 분야는 사료가 적고 전공하는 학자도 드물뿐더러 연구의 방법도 아직 식민사관 시대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학계는 아직도 우리 민족의 기원과 단군신화를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 명확한 연구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사의 전체 흐름을 짚어낸 저술은 이제까지 대중에게 선보인 적이 없었다.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는 지금까지의 단편적인 고대사 서술에서 벗어나 우리 고대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풀어냄으로써 고대사 이해의 큰 틀을 마련해준다. 역사논쟁이 민감한 화두로 떠오른 지금, 동북아시아의 역사 흐름 안에서 민족의 이주와 융합, 문화의 교류와 전파 경로를 추적해 초기 한국사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정리한 이 책은 우리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역작이다.
우리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 진인은 누구인가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역사의 시작인 단군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현재 중국 땅인 요서 지역의 홍산문화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번영을 누리던 단군왕검사회는 기원전 15세기에 갑작스런 기온의 변화로 위기를 맞게 되고 이후 기원전 13세기에 완전히 붕괴되는데, 이때 단군왕검사회의 지도층들은 요하를 건너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이 바로 저자가 지칭한 진인이다. 진인들은 고인돌 문화를 퍼뜨리며 요동 지역과 한반도 서북 지역으로 이동했고, 이후 한반도에 정착해 문명의 꽃을 피웠다. 진인은 숙신(肅愼) / 진번(眞番) / 진한(辰韓) / 변진(弁辰) / 진국(辰國) 등의 집단을 주도했고 한민족의 기틀이 되었는데, 이들 집단은 이름에 ‘辰’ 또는 ‘眞’자를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저자는 이들을 진인으로 명명한 것이다.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는 진인을 통해 그간 설명되지 않던 우리 고대사를 명확하게 밝혀낸다. 한반도로 이동한 진인들은 한강 이남 최초의 정치체인 진국을 세웠으며, 진국으로 이어진 진인의 맥은 삼한으로 나뉘었다가 진인과 위만조선 세력이 함께 세운 신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삼국 중 신라가 단군의 적통을 이은 한민족의 적자라는 것이다.
저자가 설명한 ‘진인’의 개념을 이해하면 대륙에 있었다던 고조선과 단군 세력이 어떻게 한반도로 이동한 것인지, 고인돌은 요동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데 왜 강화도와 황해도 구월산에 단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지, 삼한시대 이전 한반도에 있었다는 진국은 누구의 나라인지, 신라는 왜 왕의 성씨가 바뀌어도 국가가 유지되었는지 등 그간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우리 고대사의 의문들이 명쾌하게 풀린다.
이주와 융합, 문화의 교류와 전파 경로를 추적해
처음으로 밝혀낸 한민족 초기사의 현장!
1부 ‘제5문명 요하문명과 한민족’에서는 중국의 요하 상류와 대릉하 상류에서 발견된 요하문명과 우리나라 고대사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중국은 최근 요령성 서부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의 ‘홍산문화’가 발견되자 이들 지역의 문화를 ‘요하문명’이라 이름 붙이고 제5의 문명 발생지로 여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학계에서는 중화문명의 기원이 홍산문화에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홍산문화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맥이 닿아 있다. 우선 홍산문화 유적지에서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유물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유물이 다수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홍산문화의 중심지는 곰룡[熊龍]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땅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 견해이다. 이러한 사실은 웅녀를 단군의 어머니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기적으로도 기원전 24세기, 중국의 요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단군신화는 후기홍산문화를 계승한 하가점하층문화시기와 맞물린다. 이외에도 거북을 신성시하는 문화, 요하문명 지역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비슷한 옥기들, 빗살무늬토기 분포 등의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홍산문화 지역이 단군신화의 무대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대륙의 중원에서 황제와 격돌하며 중국의 동북방으로 이주한 공공족이 바로 환웅세력임을 밝힌 저자는 새로 발견된 사료와 유물을 전방위적으로 수용해 개연성 있는 가설로 엮어 논증한다. 그리고 홍산문화의 곰 부족과 공공족이 만나 단군신화를 탄생시켰음을 명확히 밝혀낸다.
2부 ‘진인의 눈으로 한국사를 보아야 한다’에서는 단군왕검사회의 태동 이전부터 삼한을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는 고대사의 흐름을 신라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짚어본다. 저자가 조명한 우리 고대사의 흐름은 진인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진인들은 고인돌을 만들며 동쪽으로 이주했고, 한반도에 진국을 세웠으며, 그 진국의 맥이 진한사로국과 신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연구 결과이다. 특히 저자는 위만조선에서 온 고조선 세력과 단군의 맥을 이은 진인이 함께 세운 신라가 단군의 맥을 이은 한민족의 적통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신라의 지도자로 옹립된 박혁거세가 바로 단군의 후예인 것이다.
3부 ‘단군숙신과 고조선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에서는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 대상 중 하나인 고조선의 건국 시기에 대해 정리한다. 『동국통감』이 전하는 기원전 2333년의 고조선(단군조선)과 『관자』나 『위략』에 등장하는 기원전 10세기 이후의 고조선(기자조선, 한씨조선)을 구별해야 고대사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그간 학계에서 두 문헌에 등장하는 고조선을 서로 같은 나라라고 인식했기에 고대사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밝혀낸 바에 의하면 기원전 2333년에 등장한 단군조선은 진인을 낳은 국가였고, 기원전 10세기 이후의 고조선은 단군조선이 은나라에 밀려 무너진 뒤 단군왕검사회의 후손들과 은나라 유민, 북경 남쪽에 있던 한국의 후예들이 힘을 합쳐 세운 국가였다. 저자는 고대 문헌에 ‘숙신’이라고 기록된 국가가 단군조선을 지칭하는 것임을 입증한 뒤,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등을 구별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단군숙신’으로 구별하여 부르자고 이야기한다.
4부 ‘삼한의 정립과 그 주도세력들’에서는 대한민국의 국호가 삼한의 정신을 잇고 있다는 점을 되새기면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내세웠던 삼한일통론의 의미에 대해 짚어본다. 또한 삼한은 어떤 세력들이 참여해 세운 정치체였는지 추적한다. 단군왕검계 진인들과 위만조선계 세력이 함께 세운 진한, 고깔모자를 썼던 부여족과 사카족이 세운 변한, 진인들과 고조선의 준왕 세력에 한씨조선인들과 진번 계통의 주민들이 합세한 마한 중 한민족 초기 구성원의 혈맥과 정신세계를 계승한 것은 진한이고, 그 혈맥이 신라왕족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저자는 명확한 근거로 설명한다.
설명되지 않던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낸 역사연구가 정형진!
저자 정형진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품고 고대사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대사 연구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계의 이론이 실제 유물이나 유적과 상당히 동떨어질뿐더러 연구자들 간 의견도 분분해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는커녕 어떤 가설이 설득력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직접 밝혀내는 수밖에 없었다. 국내외의 고대사 관련 유적지를 누비며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고, 다시 가설을 수정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다. 근거를 보완하기 위해 강가 절벽이나 매장 유물 등에 새겨진 문양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유전학, 언어학, 고대 종교, 문화사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의 연구 성과들도 적극 참고했다.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거나 연구 결과가 나오면 그 즉시 자신의 가설을 검토해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며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갔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특정 영토 안에서만 고대사를 바라보는 것이 전제부터 잘못된 일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고대에는 각 부족이 한곳에 머물러 생활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며 문화를 전파하고, 다른 집단과 융합하며 교류했기에 전체적인 이동의 흐름과 교류의 흔적을 파악해야 고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형진은 연구에 집중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새롭게 정리한 고대사의 흐름을 저술이나 강좌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여 소통형 콘텐츠로 만들어 가는 데에도 힘썼다.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연구서인 『고깔모자를 쓴 단군』, 신라 왕족의 원류를 밝힌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 왕족』, 한민족의 원류인 환웅족의 기원을 추적한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우리 내면에 흐르는 문화의식의 뿌리를 살피는 『바람 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 등의 책을 대중에 선보이며 시민강좌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뿌리에 대한 바람직한 역사 인식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는 저자가 천착한 그간의 고대사 연구가 집대성된 책이다. 저자는 우리의 뿌리를 온전하게 알기 위해, 그 뿌리를 토대로 바람직한 미래상을 만들기 위해 고대사에 대한 이해가 바로 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역사논쟁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앞으로 다가올 통일까지, 급격한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하는 전환기 대한민국이 공존의 역사로, 통합의 역사로 나아가는 데 자신의 연구 성과가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