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시대에 간과할 수 없는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계절별로 한 편의 주제 에세이와 세 편의 단편소설을 엮는 소설잡지 『긋닛』. 4호는 ‘지역소멸’을 키워드로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주제 에세이와 김태용 서이제 손보미, 그리고 예소연 작가의 단편소설을 수록했다.
목차
나, 지역의 소멸론 | 조문영
말과 소음 | 김태용
진입/하기 | 서이제
자연의 이치 | 손보미
팜 | 예소연
저자
조문영, 김태용, 서이제, 손보미, 예소연 (지은이)
출판사리뷰
이야기는 타인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직접 알려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가 가지는 공감의 힘일 것입니다. 추상적인 논증은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일러줄 수 있지만, 이야기야말로 오히려 직접적이고 절실하게 핵심을 보여줍니다.
소설잡지 『긋닛』은 그런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와, 거기에 분명히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하는 세계를 연결해 보입니다. 『긋닛』은 우리 시대에 간과할 수 없는 특정한 주제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편의 주제 에세이와 세 편의 단편소설을 엮어 독자들에게 선보입니다.
『긋닛』은 매호 정해진 주제를 미리 공개하고 투고작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작품을 보내주셨음에도 지난 3호에는 아쉽게도 선정작을 선보이지 못했지만 4호에서는 예소연 작가의 「팜」을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지방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할지, 『긋닛』의 고민에 젊은 작가가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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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천 명의 학생들이 다녔다는 지방 대학교의 정문은 이제 굳게 닫혀 있습니다.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건물 지붕과 창문은 관리가 되지 않아 뜯겨 있고 운동장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만, 매각조차 되지 않아 규모가 큰 건물들은 흉물스럽기만 합니다. 2000년 이후 폐교된 전국의 대학교는 20개, 그중 19개 학교가 모두 지방의 대학입니다.
『긋닛』 4호는 ‘지역소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통계청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 228개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구) 중 118곳(51.8%)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지난해 소멸위험 시군구는 113곳으로, 올해 5곳 늘어나 처음으로 전체의 50%를 넘었으며, 읍면동 기준으로는 1951개가 소멸위험지역입니다. 지난해 1849곳에서 100여 곳 늘어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소멸고위험’ 지역은 2020년 23곳, 2021년 36곳, 2022년 45곳, 2023년 51곳으로, 그 속도는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젊은 인구는 블랙홀처럼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습니다. ‘명문대’와 ‘좋은 일자리’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소멸고위험’ 지역이 모두 농산어촌 군 지역이지만,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되면 지방 중소도시들도 차례로 소멸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지방의 존폐와 더불어 인구 집중으로 인해 수도권에서의 삶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지는 악순환 역시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긋닛』 4호는 더는 간과할 수 없는 지방 소멸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우리의 삶에 대한 문제적인 이야기 4편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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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사라지고 있는 지역에서 살아갈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을 다른 모든 ‘우리’에겐 더없이 다급한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준 작가는 조문영(주제 에세이), 김태용 서이제 손보미 예소연(단편소설)입니다.
조문영 연세대 인류학과 교수의 주제 에세이 「나, 지역의 소멸론」은 지역의 입을 빌려 위기에 처한 이곳들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간결하게 되짚습니다. 지방소멸위험지수의 개념에서부터 저출산, 지역의료의 부재, 현실과 겉도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들, 정작 지역민은 함께하지 못하는 여러 모색의 방법들 등, 매일같이 기사를 접하면서도 대충 눈으로 훑고만 지나가던 내용들이 길지 않은 지면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김태용의 소설 「말과 소음」은 작가 특유의 소설적 고민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원인은 비교적 분명하지만, 해결 방안은 찾기 힘든 사회적 문제 앞에서 소설적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역소멸에 대한 기사를 쓴 지방 도시의 신문기자 남편과 남편의 이야기에서 소설적 모티프를 얻은 소설가 아내의 심리적 특성을 전면에 두고, 작가는 지역소멸을 배경으로 우연과 상상을 겹쳐놓으며 불안과 답이 없는 이 문제를 소설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김태용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여전하면서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야기 아래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제의식이 작동하는 소설입니다.
서이제의 소설 「진입/하기」는 간간이 연락하고 지내는 고향 친구의 결혼식 때문에 오래전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게 된 ‘나’의 이야기입니다. 그토록 떠나오고 싶던 곳을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나’의 눈을 통해 우리는 과거와 달라진 우리 모두의 고향을 마주하게 됩니다. 얼핏 그대로인 듯 보였던 도시의 곳곳은 비어 있고, 한때 번화했던 중심가를 한참 걷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이제 그곳들―많은 우리의 고향들은 더 이상 “살 만한” 곳이 아닙니다. 작가는 “ 한 개인이 계층 이동을 욕망하는 동안, 한 사회에 진입하려고 애쓰는 동안 등을 지게 되었던 것들에 대해” 결국 이를 구분짓는 “언어”에 대해 고민합니다.
손보미의 소설 「자연의 이치」는 작가 특유의 드라마틱한 서사가 강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자동차공장이 망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한 지방의 어느 소도시, 다니던 초등학교까지 문을 닫아 삼십 분 넘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던 (이제는 열여덟이 된) 영유의 성장드라마 뒤로는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탄을 제외한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시공간이 펼쳐집니다. 한 편의 극영화를 보는 듯 생생한 캐릭터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토리라인 너머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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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긋닛』 4호에 보내주신 많은 작품들 중, 예소연 작가의 소설 「팜」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동할 때, 그냥 ‘오고 가지’ 않고 ‘내려’갑니다. 손쉽게 타인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세계에서 마음껏 ‘지방’과 수도권을 오가며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작가는 소설을 통해 묻습니다. 젊은 시절 민주주의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지방에서 기후위기를 고민하고 스스로 농법을 개발하며 지속가능한 세상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아빠 대진과, 생태도시 이름 공모에 당선되어 적지 않은 상금을 받게 된 딸 해나의 어느 하루에 많은 고민들이 녹아 있습니다